님비와 남비(6) / 이케하라 마모루
Author
박 영만
Date
11-17 11:03
Views
31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연구는 학자들의 몫이라고 한다면, 기자들은 최소한 사실 확인만이라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분명히 7년 전에 가동이 중단된 소각장이 2년 전까지 가동되었다는 기사가 국내 유수의 신문에 게재될 정도라면 할 말이 없어진다.
쓰레기 문제와 관련해서 다이옥신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흔히 ‘님비(Not In My Back Yard)’라고 표현하는 지역 이기주의다. 세계 어디서나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도가 심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선다고 하면 환영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매일같이 청소차가 집 앞에 들락거리면 지저분하기도 하고 냄새도 날 것이다. 그런 판국에 소각장 굴뚝에서 ‘무시무시한’ 다이옥신이 뭉글뭉글 쏟아져 나온다고 하니 소각장 반대 운동이 벌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소각장을 건설하지 않고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 된다. 농담이 아니라 전체 생활 쓰레기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음식 쓰레기를 모두 ‘먹어 치워’ 버리면 한국의 쓰레기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된다.
쓰레기를 먹으라는 것이 아니다. 음식 쓰레기는 버리고 나서나 쓰레기지 그 전까지는 엄연한 ‘음식’이니까 말이다. 굳이 아프리카 난민까지 들먹일 것도 없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코앞에서 굶주림으로 쓰러져 가는 북녘 동포가 있지 않은가.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지금보다 절반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면 서둘러 쓰레기 소각장을 짓지 않아도 되고 다이옥신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손이 너무 크다. 주부들이 음식을 너무 많이 만들고 반찬도 가짓수가 너무 많다. 이러니 음식 쓰레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음식 문화의 특성이 이러하면 음식 쓰레기를 처리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옳다. 진작부터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연구하여 국가에서 실행했다면 오늘날 쓰레기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음식 쓰레기를 먹어 치우겠다는 각오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쓰레기 소각장 건설을 반대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도 “왜 하필이면 우리 동네에 그런 혐오 시설을 짓느냐”며 핏대를 올리는 사람들, 그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다이옥신이 아니라 ‘땅값(혹은 집값) 하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땅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 쓰레기 소각장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성숙한 시민으로서 자격이 없다. 그들이 그토록 과감하게 소각장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차에다 쓰레기를 싣고 나와 다른 동네에 버리거나 전철역 쓰레기통에 가져다 놓으면 된다. 이런 사고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쓰레기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한국은 내일이 없다.
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서울시 노원구에는 쓰레기 400톤을 처리하는 소각로 두 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가동되지 않는다. 수백억 원이라는 돈을 들여서, 그것도 주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간신히 지어 놓은 소각로의 가동률이 왜 이처럼 떨어지는 것일까.
한국의 음식물 쓰레기는 80퍼센트가 수분이어서 아무리 발달된 소각 기술을 동원해도 완벽하게 태우기가 힘들다. 물을 태운다고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래서 신문지나 목재처럼 불에 잘 타는 쓰레기를 같이 태워야 효율이 높아진다.
그런데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를 따로 모으는 분리 수거가 정착되면서 폐지가 소각장으로 실려 오지 않아 젖은 쓰레기를 태우려면 기름을 사다 부어야 한다. 그만큼 비용이 높아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폐지를 소각 연료로 활용하면 연료비 200원을 절약할 수 있는데 100원에 팔아 넘기고 대신 기름을 사서 태우는 식이다. 그런데 폐지를 가져간 쪽에서는 재활용이 쉽지 않으니까 다른 쓰레기와 함께 그냥 땅에다 묻어 버린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일을 하느냐고 물어 보면 이유야 어찌 되었건 ‘위에서’ 정해 놓은 분리 수거 비율은 지켜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에서 나오는 목재나 폐지처럼 잘 타는 쓰레기를 가져와서 함께 태우는 것이 어떠냐고 하면 주민이 왜 남의 동네 쓰레기를 우리 동네에서 태우느냐고 반대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쓰레기 분리 수거가 정착한 것은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먼저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적어도 분리 수거만큼은 한국을 따라갈 수가 없다. 물론 한국에서는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를 버리려면 봉투를 따로 사야 하지만 일본에서는 돈을 더 내지 않아도 된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어찌 되었건 분리 수거가 완전히 정착한 것을 보면 영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시동을 걸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하자!’고 의기가 투합되면 물불 안 가리고 매진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니까.
앞에서 지적한 지역 이기주의는 시민 의식이 성숙됨에 따라 점차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면, 이제는 정부 당국도 쓰레기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여 강력한 행정력으로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계와 학계가 정확한 지식과 정보로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 대목을 생각하면 또 한숨이 나온다.
앞에서도 ‘보도’라기보다는 ‘선동’에 가까운 한국 언론의 태도를 지적했지만, 언론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연구는 학자들의 몫이라고 한다면, 기자들은 최소한 사실 확인만이라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분명히 7년 전에 가동이 중단된 소각장이 2년 전까지 가동되었다는 기사가 국내 유수의 일간 신문에 게재될 정도라면 할 말이 없어진다.
하루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어느 쓰레기 소각장이 일본에서 절름발이 기술을 도입하는 바람에 가동을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그 소각장은 분명히 내가 직접 개입해서 건설되었고, 제대로 가동이 되고 있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그 보도 기자가 방금 자기 입으로 가동이 중단되었다고 말한 바로 그 소각장에서 다이옥신이 배출되고 있다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가동도 되지 않는 소각장에서 어떻게 다이옥신이 나온단 말인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에라도 대한민국 학자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언론이 잘못된 보도를 하거나 정부가 엉뚱한 정책을 펼치려 하면 과감하게 아니라고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쓰레기 문제에 관한 한 그만한 학식과 권위를 갖춘 사람이 한국에 틀림없이 있는데, 실제로 그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원래 학자는 세상사에 초탈한 채 연구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어제까지 대학 교수로 있던 양반이 오늘 장관으로 입각하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데 말이다.
다이옥신 문제만 해도 아직 학문적으로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단적인 예로 환경부에서 발표한 각 소각장의 다이옥신 배출량도 100퍼센트 신뢰할 수 있다고 할 수 없다. 다이옥신을 검출하기 위해서는 고가 장비와 첨단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배출량 측정 작업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또한 똑같은 소각로가 할지라도 배출되는 다이옥신 양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굉장히 많다. 계절에 따라서, 태우는 쓰레기 성분에 따라서 다이옥신 배출량에는 큰 차이가 난다. 소각로가 일정한 시간 이상 꾸준히 가동되었는가 아니면 중단되었다가 가동된 지 얼마나 되었는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검사 직전에 쓰레기에다 소석회를 뿌려서 함께 태우면 다이옥신 양이 현격하게 줄어든다. 물론 그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계속 소석회를 태울 수는 없지만.
한국 정부의 다이옥신 관련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마치 체온이 40도를 넘으면 위험하다는 식으로 신문에 발표되는 다이옥신 양에 따라서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반 국민은 그런 사실을 모른다. 모르니까 신문에 우리동네 소각장에서 다이옥신이 규정치보다 몇 배 이상 검출되었다고 나오면 당장 방독면이라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해서 불안해 하는 것이 당연하다.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는 것은 학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상아탑 속에 갇혀서 사회 현안을 외면하거나 반대로 학자로서 본분을 망각하고 권력이나 부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것 모두 진정한 학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이렇게 한국의 쓰레기 문제, 특히 다이옥신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대한민국이 쓰레기 더미로 뒤덮이든 다이옥신으로 뒤덮이든 크게 상관할 바 없는 입장이다. 정말 심각한 사태가 벌어져서 숨쉬기조차 힘들어지면 이 땅을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내 아들이나 손자가 쓰레기 지옥 속에서 고생할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나는 처음 한국으로 건너온 20여 년 전부터 머지않아 한국은 쓰레기 문제로 큰 홍역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내가 무슨 점쟁이나 예언자라서 앞날을 내다본 것이 아니라 일본 역시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 걸 두 눈으로 뻔히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레기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일본과 한국의 사정을 비교해 보기도 했고, 다이옥신에 대해서도 내 딴에는 열심히 공부해 왔다.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이옥신에 대해서만큼은 누구하고 논쟁을 벌여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일본 학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세미나를 벌이기도 하고, 한국의 관련 공무원이나 환경 단체 사람들이 일본의 실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더러는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한국의 쓰레기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를 궁금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나 자신과 일본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보의 쓰레기 소각 관련 기술과 장비를 한국에 소개하려고 뛰어다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굳이 많은 돈을 모아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한국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면서까지 일본 기업이 돈을 벌도록 돕고 싶은 생각은 더 더욱 없다.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한국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유일한 바람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나를 따뜻하게 대접해 준 한국에 보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