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Page

한국어

Apple Salon

참 세상이 달라졌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컴퓨터를 키고 웹을 열어 글을 써서 올리고는 했는데 이제는 아이폰에 있는 메모지에 손가락을 움직여 키보드로 글자를 만들고 사진과 함께 게시판에 올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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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기예보도 Satelite에서 찍은 주위의 날씨사진을 아이폰으로 볼수있으니 말이다. 변해 가는 세상속에서 주님을 향한 믿음은 변하지 않아야겠지만 세상 사람들을 향해 보이는 우리의 모습은 다양하고 변화에 주저하지않아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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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는 한국의 지도를 찾아 40년전 살던 곳을 찾아가 보았다. 중구 2가 장충동 193의 179번지. 비슷한 곳을 찾았지만 달라져서 살던 곳이 아파트로 변한 것 같았다. 

얼마전 강촌에 식사하러 갔다가 들어가는 입구에서 낯익은 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한인교회에서 만났었다. 전공은 잊었지만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어리게 보인다고 젊었을때 수염을 키웠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단정하게 깍으면 좋을텐데 수염을 손질을 하지않아 좀 지저분하게 보였다. 
난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손에 쥐면 도사같이 보이겠다고 말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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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 한인교회에서 지교회로 몇년간 있다가 이제는 독립한 ‘와싱톤 사귐의 교회’에 오라고 말했다. 그곳에는 79년에 만나 사귀던 친구도 있었지만 김영봉목사에게 실망한 것이 몇가지 있어서 생각을 전혀하지 않았었다. 
집에 와서 전집사에게 전화를 하니 아직 살아있냐고 농담하면서 빨리 교회에 오라고 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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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사를 만난 것은 1979년도 워싱턴 한인침례교회애 다닐때 청년회를 동생과 같이 조직하고 그당시 워싱턴 지역에 있는 한인교회를 찾아 전화를 해서 청년회 리더들이 한곳에  모여 회의와 교제를 했을때였다. 그때 김원기목사의 동생 윤기가 와서 만나 후에 부흥회를 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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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에서 와싱톤 사귐의 교회를 찾으니 웹싸이트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전집사는 내가 권사로 기억해 장로가 되었냐고 물으니 김영봉목사가 교인들의 계급장?을 다 띄어서 전 교인이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제 교회 건물 찾아야겠네라고 말했더니 전혀 교회건물 지을 생각을 김목사는 하지않는다고 말했다. 
난 교회 이름이 바뀌기 전 그 교회에서 웹을 얼마간 만들어 운영했는데 찬양팀 멤버들을 하나씩 소개하는 글을 올려서 댓글이 많으면 150개가 넘고는 해서 그때가 재미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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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이름이 코이노니아이기에 90년대초 휄로쉽교회다닐때 만들었던 계간지가 생각났다. 

미국에 이민온 후 40년간 제일 오래 다녔던 교회들은 5년으로 워싱턴한인침례교회, 중앙장로교회, 90년대초의 휄로쉽교회였다. 그외 25년을 이 교회 저교회 다니면서 일을 했으니 아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도 사실이다. 큰 매형은 만날때마다 어느 교회에 다니냐고 물으면서 교회에서 일을 하면 오래 못 있는다고  말한다. 난 일을 시키는데 어떻게 하냐고 말하면서 나의 사명은 여러 교회에 가서 세우는 일을 돕는 것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어제는 열린문교회에 다니는 김집사부부를 만났고 내일은 커뮤니티교회에 다니는 김장로부부를 만나고 다음 주 목요일에는 신권사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내일부터 며칠간 다시 비가 온다고 하니 다시 더위로 마르기 시작하는 땅에 젖과 꿀이 되겠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