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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JAMES PAGE</title>
		<link>https://jamespage.org</link>
		<description>My WordPress Blog (박영만)</description>
		
				<item>
			<title><![CDATA[Thursdays are for Family /  Eric Stark]]></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504]]></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7/202610/6ae6195744dbb5123740.jpeg" alt="" />

"할아버지, 어디 가세요?" 다섯 살짜리 손녀딸이 목요일 오후에 내게 물었다.
소이어는 계단 아래에 서서 고피쉬 카드 한 벌을 꽉 쥐고 있었다.
"일 좀 해야겠어." 나는 아내 다이앤을 흘끗 보며 말했다. 아내는 방금 생후 8개월 된 손자 키튼을 낮잠 재웠다. "할머니가 너랑 놀아줄게."
소이어는 커다란 파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셋이서 하면 더 재밌어."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하지만 마무리해야 할 인용문들이 있었고, 기다려야 할 이메일들이 있었고,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금방 돌아올게."라고 내가 말하자
"그럼 고피쉬 같이 하자." 아내가 말했다.
나는 위층 내 책상으로 돌아갔다. 가족은 내게 전부였다. 그리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강한 직업윤리가 몸에 배어 있었다. 나는 여덟 남매 중 한 명이었는데,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셨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셨다. 우리는 늘 가난했다. 아버지의 노동조합이 파업을 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형제들과 나는 식료품을 사기 위해 잔디를 깎았다. 열심히 일해야만 우리 가족은 굶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군 복무 8년은 그러한 사고방식을 더욱 굳건히 해주었다. 제대 후 형의 제조 사업에 합류하여 회사를 직원 90명 규모로 성장시켰다. 자랑스러웠지만, 근무 시간은 길었고 재정은 빠듯했다. 때로는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나는 모든 직원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업을 확장하는 데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첫 번째 결혼이 끝났을 때, 나는 두 아이의 싱글 아빠가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후부터 내가 퇴근할 때까지, 보통 저녁 식사 시간을 훨씬 넘어서까지 내 곁에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많은 것을 놓쳤다. 결혼과 육아에서 진정한 반려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모니에서 나는 유치원 교사이자 두 아이의 싱글맘인 다이앤과 연결되었다. 첫 통화는 네 시간이나 이어졌다. 나는 그녀가 운명의 상대라고 확신했지만, 직장 때문에 첫 데이트에 한 시간이나 늦었을 때는 모든 걸 망쳐버린 줄 알았다. "이해해요." 다이앤이 말했다. "저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을 많이 하셨어요." 그 말은 마치 음악처럼 들렸다.
우리는 4개월 후에 결혼했다. 두 가정을 합치고 다섯 번째 아이인 아들을 낳았다.
다이앤은 교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그녀의 오랜 꿈이었으니까. 완벽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아이들과 집안일을 돌보고, 나는 우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했다.
결국 형과 나는 사업을 매각했고, 나는 예전 직장 동료와 함께 제트 엔진 부품을 만드는 소규모 제조 회사를 새로 시작했다. 매일 현장에 나가 있을 필요는 없었지만, 일주일에 60시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일했다.
"당신은 언제쯤 속도를 늦출 거야?" 다이앤이 물었다.
다섯째 아이는 이제 십 대가 되어 집에 남은 유일한 아이였다. 나머지 아이들은 결혼해서 손주를 낳아주고 있었다. "꼭 노력해 볼게."라고 나는 말했다.
정말 노력했다. 특히 첫 손주인 소이어가 태어난 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다이앤은 우리 큰딸이자 소여의 엄마인 사람이 일하는 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아이를 봐줬다. 그러다가 둘째 아들 키튼도 봐주기 시작했다. 나는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목요일을 재택근무하는 날로 정했다.
하지만 그 목요일 오후, 책상에 앉자마자 늘 그랬듯이 일이 나를 덮쳤다. 새 프로젝트 견적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다이앤은 "키튼이 낮잠에서 깼으니, 같이 시간 보내고 싶으면 같이 있어."라고 문자를 보냈다.
곧 내려갈게, 라고 대답하고 다시 계산에 몰두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들이 키튼을 데리러 차를 몰고 집 앞 진입로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나? 나는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다이앤은 키튼을 카시트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매주고 있었다. "미안해." 내가 말했다.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소이어는 이미 집에 갔어." 그녀가 말했다. "네가 약속했던 대로 고피쉬 게임을 같이 안 해줘서 너무 실망했거든."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앞으로는 키튼이 낮잠 잘 때만 일할 거야."라고 말했다. "키튼이 깨어나자마자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올게."
다이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누가 그녀를 탓할 수 있겠는가?
나는 더 잘해야 했다. 다음 목요일, 나는 토스터에서 소여의 팝타르트를 꺼내며 "고피쉬 할래?"라고 물었다. 소여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카드를 나눠주는 동안 다이앤은 키튼을 유아용 의자에 앉혔다. 소이어는 신나서 춤을 췄다. 고피쉬 게임을 세 판 하고 ​​나니 키튼은 칭얼거리며 낮잠 잘 준비가 되었다. "키튼을 재우고 나서 업무 이메일 좀 확인하러 갈게." 내가 다이앤에게 말했다. "키튼이 깨면 문자 줘. 바로 내려가서 도와줄게." 키튼을 재우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커피를 깜빡 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커피를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다이앤이 소이어의 어린이 성경책을 읽어주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은 정말 엄마보다 저를 더 사랑하시는 걸까요?" 소여가 물었다.
"그래, 그분은 너희를 너무나 사랑해.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가 살아갈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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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이 소이어에게 "그리고 그는 우리 모두를 구하기 위해 아들을 보냈어요..."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정말 아름답고 의미 있는 대화였다.
나는 이메일에 답장해야 해서 같이 있지 못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중독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순간들을 너무 많이 놓쳤는데, 또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왜 나는 아직도 먹을 것이 부족할까 봐 두려워하는 옛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내게 손주들을 주셨는데, 그걸 미루라고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손주들을 데리러 간 후, 나는 다이앤에게 "내가 우선순위를 잘못 생각했어. 이제부터 목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날이야. 일은 절대 안 해. 절대로."라고 말했다.
"네가 자랑스럽다," 그녀는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나는 다음 주 목요일에 그 약속을 꼭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침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사업 파트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회사의 가장 소중한 고객 중 한 분이 큰 프로젝트에 대한 최신 견적서를 요청했는데, 당장 필요하다고 했다. 오늘 당장 말이다. 하느님, 어떡해야 하지?
소이어가 불쑥 말했다. "할아버지, 숨바꼭질해요! 할아버지가 숫자를 세시면 할머니랑 키튼, 그리고 제가 숨을게요." 다이앤은 소이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나도 같이 놀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잠시 사무실에 가셔야 할지도 몰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여기 있을 거야." 나는 소이어를 보며 씩 웃었다. "뛰어서 숨어!"
다이앤과 손주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이제 제가 숨을 차례였죠. 식탁 밑에 자리를 잡았어요.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고객에게서 온 문자였거든요. "견적은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심호흡을 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되새겼다. "내일 아침 괜찮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의 답장은 즉각적이었다. "좀 더 빨리 해주실 수 있나요? 오늘 정말 필요해요."
나는 망설였다. 우리는 그 일이 필요했지만, 약속을 했었으니까. "미안해요. 오늘 다른 약속이 있어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9시 정각에 꼭 보내줄께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하면 될 것 같네요.”라고 그가 답장을 보냈다.
내가 막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 의자 다리 사이로 밝은 파란 눈동자가 나를 엿보고 있는 게 보였다. "할아버지, 찾았어요!" 소이어가 소리쳤다.
나는 테이블 밑에서 기어 나왔고, 우리 넷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깔깔거렸다.
수년 동안 나는 모든 것이 내게 달려 있다고 믿어왔다. 새로운 사업, 직원, 급여, 마감일, 가족까지 말이다. 하지만 아내와 손주들과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내니 마음속 무언가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지탱하는 건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나는 다이앤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Sat, 31 Oct 2026 16:38:5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7"><![CDATA[자료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Whether one eats well or poorly, the body and the soul will one day be separated.]]></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503]]></link>
			<description><![CDATA[아침에 아내가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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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채소와 검증된 영양가있는 음식들과 커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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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는 냉면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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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저녁때 밥에 오이 쥐포 김치 그리고 salmon을 주었다. 한국에는 주말이나 연휴에 집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가고 "아침 뭐 먹어? 점심 뭐 먹어? 저녁 뭐 먹어?"라며 삼시세끼 밥을 찾는 남편이나 자녀를 엄마들이 “우리 집엔 삼시세끼 삼새끼를 챙겨 먹는 삼새끼가 살고 있다.“는 농담이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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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차려준 음식먹는 것이 미안해서 전에 아내가 일할 때는 내가 밥을 만들고 설것이도 했는데 이제는 잡곡밥을 만든다고 자기가 하겠다고 하고 설것이는 내가 잘 못한다고 자기가 하겠다고 한다. 어느 한국가정은 아내가 집에 있는 남편 식사준비하는데 지쳐서 이혼하자고 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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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내에게 예수의 말씀을 듣는데 전념하는 마리아와 음식차리는데 분주했던 마르다를 얘기하면서 마리아처럼 살라고 말한다. 난 밥에 김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면서 음식만드는데 너무 시간을 많이 들이지 말라고 말이다. 지난 수요일에는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여자들 성경공부가 있다고 해서 가도록 했다.
그녀는 갔다와서는 범교회적으로 모이는 성경공부에 한 100여명정도가 참석했다고 하면서 진지하게 성경을 배우는 미국여자들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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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빠지지않고 먹어야되는 음식이나 음료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살면서 많이 배우게 된다.
가끔 Costco에 가서 사람들을 보면 거의 50%가 훨씬 넘는 사람들이 비만이다. 그들은 음식을 잘 가려 먹지 못한 것 같다. 설탕과 소금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나이들어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Lord’s Pantry에서 봉사하는 여자들도 보면 비만은 아니더라도 몸이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아마 음식탓일 것이다. 한국사람이 채소를 많이 먹는 것에 비해 미국인들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많이 먹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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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먹는 음식은 아내가 잘 선택해서 괜찮은 재료로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밖에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조절할 수가 없다.
오래전 한국에서 고등학교 동창 4명이 내가 사는 곳에 방문해 내가 그들을 Washington DC 구경하게 해 준적이 있었다. 그들은 다 괜찮게 잘사는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60대에 2명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마 그들이 가정중심으로 살고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날 모임이 별로없는 미국에 살았다면 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친구들과 술마시고 기름진 삼겹살먹고 라면먹고…몸이 감당하지 못해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미국에 산다고 음식문화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 주위에 생활이 안정이 되었지만 당뇨로 콜레스트롤이 높아 약을 먹으면서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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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는 아내에게 ‘죽는것’이 무엇이니?라고 물어 보았다. 죽는 것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God은 인간의 죽음을 사람들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지않는 것 같다. 예수의 제자들이 다 참혹하게 죽었고 예수가 태어날때 헤롯이 두살밑의 애들을 다 죽게 했으니 말이다. 난 한동안 왜 천사가 헤롯왕에게 나타나 죄없는 애들을 살릴 수 없었나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음식을 잘 가려먹으나 그렇지않으나 분명한 사실은 제한된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해서 인간이기에 가까운 누가 세상을 떠났을때 슬퍼하지만 최대한 그 감정이 오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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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는 행복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혼에 속한 것이다. 그러기에 Elon Musk나 나나 높 낮음이 없이 찾을 수 있는 행복은 동등하다. 단지 우리가 할 것은 인간을 향한 눈을 감고 God을 만나면 된다. 그러고는 세상을 향해 받은 소명을 실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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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며칠전 아들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아들은 컴 스크린앞에서 일하는 App developer로 괜찮은 직장에서 일했는데 AI가 등장하면서 문제가 되어 이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을 관리하는 직업으로 바꾸는 중이다.

Good morning, Dave.
This morning, I watched the NFL game from yesterday. The Bucs, who had a 1-5 record, defeated the Panthers 43–13, and the previously 5-0 Chiefs suffered a loss.
When I watch football, I see reflections of life itself. To win, you must suppress and process your emotions; there’s no time to dwell on past mistakes or successes, nor is there time to fixate on the strengths or weaknesses of your teammates. You simply have to look straight ahead and play as hard as you can, relying on your training and everything you’ve learned. I bring this up because, in life, human relationships are simultaneously the simplest and the most difficult things to navi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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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내가 일갔다. 내 점심을 차려놓고 갔다고 해서 보니 김밥이었다. 사실 나는 20대때 결혼할 사람으로 나와 함께 크리스챤 문서를 편집할 수 있는 여자를 찾았었다. 결국 전혀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게 되었지만 후회는 없다. 나와 비슷한 여자를 만나 살면 매일 김치와 밥을 먹고 살았을테니 말이다. God이 나보다 더 나에게 필요한 사람을 선택해 준 것 같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Fri, 30 Oct 2026 14:14:0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Do not let up]]></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502]]></link>
			<description><![CDATA[<span>Do Not Let Up" means </span>to keep going, stay strong, and not stop or reduce your effort during a difficult task or persistent situation.]]></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hu, 29 Oct 2026 19:49:0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6"><![CDATA[오늘 배운 영어문장]]></category>
		</item>
				<item>
			<title><![CDATA[‘The Marble Track’ by Julie Lavender]]></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501]]></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7/202610/6ae1fb5cbd0d09036401.jpeg" alt="" />

불행은 세 번씩 찾아온다고들 한다.
내가 너무 과장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스트레스가 심했다. 남편 데이비드가 최근 회사에서 새로운 업무들을 많이 맡게 되었고 매일 저녁 집에 올 때마다 긴장하고 정신이 산만해 보였다.
그러던 중 네 자녀 중 유일하게 우리 집에 남아 있던 셋째 아이가 집을 나갔다. 석사 학위를 마치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에서 좋은 직장을 얻었기 때문이다. 큰아이 둘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독립해서 살고 있었고, 막내는 대학 4학년이었다.
25년 동안 행복하게 홈스쿨링을 한 후, 나는 더 이상 적극적인 육아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육아를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외롭고 상실감에 휩싸였다. 육아와 홈스쿨링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었는데, 이제 그것들이 사라졌다.
데이비드에게 내 감정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일을 겪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하필 그 주에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탄산음료를 꺼내려고 손을 넣었을 때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차가운 다이어트 콜라가 없었다. 이건 정말 비상사태였다. 곧 수리공을 부르고 치즈, 고기, 우유, 양념들을 차고에 있는 냉장고로 옮겨 놨다.
수리공이 도착해서 냉장고를 벽에서 떼어낸 다음 고개를 저었다. "이 낡은 건 어떻게 해도 살릴 수 없어요." 그가 말했다. "새 걸로 새로 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이 냉장고가 우리 가족의 일부라는 걸 몰랐던 건가? 타일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았던 건가? 내가 인생의 모든 변화에 지쳐서 모든 게 그대로이길 바랐던 건가?
이 냉장고는 대학 졸업반 딸 제시카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됐다. 십 대 자녀들과 늘 배고픈 그들의 친구들을 포함한 우리 가족의 음식을 거의 20년 동안 책임져 왔다.
그 냉장고벽은 말 그대로 추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석, 휴가 엽서, 아기 사진, 졸업 사진, 모르는 전화번호, 아이들 그림 등등.
그리고 물론, 구슬 트랙도 있었다.
제시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90년대 몇 년 동안, 우리 가족은 신제품 장난감 리뷰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제조업체에서 장난감을 보내주었고, 아이들은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으며, 우리는 의견을 적은 양식을 다시 우편으로 보냈다.
그 장난감들 중 최고는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구슬 트랙이었는데, 다양한 조합으로 배열하여 구슬이 냉장고 옆면을 따라 레일, 움푹 들어간 곳, 흔들리는 양동이, 작은 관람차, 회오리 모양의 깔때기를 통과하도록 유도하는 장난감이었다.
우리 집에 오는 아이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구슬 트랙에 달려들곤 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장난감이었다. 온 ​​가족이 다 좋아했다. 그것마저도 떠나보내야 하는 걸까?
며칠 후, 나는 냉장고를 멍하니 바라보며 새 냉장고를 싣고 올 배송 트럭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부는 깨끗이 청소했지만, 외부는 차마 벗겨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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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부엌 바닥에 앉아 냉장고 문에 색색의 자석 글자를 붙이던 기억이 떠올랐다. 크레파스 그림, 손가락으로 그린 ​​걸작들, 주일학교 학습지, 그리고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쓴 쪽지들을 거기에 붙여 놓았던 것도 생각났다.
우리는 2003년에 집을 지을 때 이 냉장고를 샀다. 그 전에는 데이비드가 해군에서 20년 동안 의학 곤충학자로 복무했다. 우리는 여기저기 많이 이사를 다녔다. 이 집과 이 냉장고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상징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냉장고 앞에 쓰레기통을 툭 던져 놓고 문과 옆면을 치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버릴 것은 구슬 트랙이었다. 나는 그것을 조각조각 쓰레기통에 담았다.
텅 빈 냉장고는 집 안의 빈 방 네 개만큼이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내 삶에 큰 의미를 주었는데. "이제 뭘 해야 하지?"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나님은 유머 감각이 있으시다. 바로 그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벌목꾼처럼 보이는 두 남자가 새 냉장고를 내리고, 급수관과 제빙기를 연결한 후 보호용 비닐 포장을 벗겼다. 새하얀 문짝이 반짝거렸다. 냉장고는 윙윙거리며 냉각을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 봐."라고 힘센 남자 한명이 말했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내가 새 제빙기 작동법을 모른다고 하자 두 번째 건장한 남자가 말했다. 이 사람들은 내가 새 제빙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에 적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내가 차고에서 차가운 물건들을 다시 꺼내놓는 일을 막 끝냈을 때 제시카가 느긋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지금 빨래 좀 돌리고 있어요." 그녀는 인사도 없이 불렀다. 부엌에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빨래 다 될 때까지 여기서 논문 좀 쓸게요. 나중에 캠퍼스에서 회의가 있거든요."
그녀는 새 냉장고를 발견했다.
"멋지네요." 그녀가 말했다. "자석은 언제 다시 붙일 거예요?"
"너희들이 다 이사 갔으니까 이제 필요 없겠지," 나는 목소리에 담긴 의도를 애써 감추며 말했다. "아무도 신경 안 쓸 거라고 생각했어."
"엄마!" 제시카가 소리쳤다. "구슬 트랙을 제자리에 다시 붙여야 해요. 냉장고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저보다 나이가 더 많다고요!"

제시카는 무대를 사랑하는 무용수이자 커뮤니케이션 전공생이었다. 또한 우리 아이들 중 가장 감성적인 아이이기도 했다.
"정말?" 내가 말했다.
그녀는 눈을 굴리며 배낭을 내려놓고 자석이 든 쓰레통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저 구슬 트랙은 우리 어린 시절의 추억인데, 어떻게 그걸 버릴 생각을 할 수 있어?" 그녀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구슬 트랙 조각들을 꺼내 냉장고에 가지런히 붙였다.

나는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곧 냉장고 옆면을 따라 구슬이 굴러떨어지며 쿵쿵거리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가끔씩 구슬이 궤도를 벗어나면 제시카는 구슬이 무언가 밑으로 굴러 들어가기 전에 잡으려고 부엌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휴!" 그녀가 말했다. "다 됐어. 예전에 만들어 놓았던 경로가 기억이 안 나서 새 경로를 만들었어. 그래도 잘 작동해."
그녀는 배낭을 챙겨 옷이 마르는 동안 과제를 마저 하려고 예전 방으로 향했다. 나는 더 이상 깨끗하지 않은 반짝이는 표면을 가진 냉장고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길. 그래, 내 인생은 이제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는 기존의 길이 사라졌거나 더 이상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때에 옛것은 새것이 되고, 새것은 옛것이 된다. 모든 것은 펼쳐지는 이야기의 일부이다.
하나님께서는 준비가 되시면 내게 새로운 목적을 보여주실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지나온 것과 앞으로 다가올 것에 감사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냉장고를 열고 치즈와 버터를 꺼냈다. 제시카가 과제를 끝내면 배고플 것 같았다. 캠퍼스 회의 전에 모녀가 함께 구운 치즈 샌드위치를 ​​먹으면 딱 좋을 것 같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Wed, 28 Oct 2026 13:41:3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7"><![CDATA[자료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Meme]]></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99]]></link>
			<description><![CDATA[A meme is an idea, behavior, style, or piece of media (such as a funny image, video, or text) that spreads rapidly from person to person within a culture, often with slight variations or remixes along the way]]></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Fri, 23 Oct 2026 13:34:0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6"><![CDATA[오늘 배운 영어문장]]></category>
		</item>
				<item>
			<title><![CDATA[I told my wife that if we were to meet him again, we should say “sayōnara” when we part ways.]]></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98]]></link>
			<description><![CDATA[지금 밖은 50도로 섭씨로는 10도이다. 앞으로 11월 중순되기 전에 집주위의 잔디를 금년 마지막으로 깎아주고 sprinkler와 RV의 winterizing을 해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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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캠핑을 가서 이틀간 지내다가 집에 왔다. 캠핑하면서 내 RV옆의 이웃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나를 보면서 “It is honor to meet you!“라고 말했다. 난 그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몰랐다. Arkansas에서 왔다는 그는 몇 주를 거쳐 버지니아에 왔다면서 60이 넘었는데 독신으로 살아 조금 후회한다는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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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본에 관심이 있었는지 Pearl Harbor에 가라앉은 배에 대해 말하고는 어느 섬인가 한 일본군이 전쟁이 끝났는지 모르고 30년을 굴속에서 살았다는 말을 해서 내가 그에 대해 아는 얘기를 해 주었다.
“그는 전쟁때 입었던 군복을 그대로 입었었고 그를 만난 주위의 사람들이 전쟁이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고 말했지만 믿지않았다. 결국 전쟁당시 그의 상관이었던 군인을 불러 그에게 종전을 말해 그가 알고 눈물을 흘리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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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투표한 우리는 그에게 투표를 했냐고 물으니 여행을 끝내고 Arkansas로 돌아가면 투표하겠다고 하면서 자기는 크리스챤이라고 말해 여러 말을 서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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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예배때 Pastor. Josh는 두번째 교인들에게 11월 3일 선거에 참여할 것을 말했다. 결혼에 대해 낙태에 대해 크리스쳔의 입장을 다시 밝혔다. 그는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는 것을 염려하면서 기도했다. 내가 좋아하는 Cornerstone Chapel에서는 아예 Voter registration을 교회에서 하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성경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소금과 빛이라 했다. 썩어가고 칠흙같이 어두운 세상을 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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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않게 독일의 나치가 부상할때 독일의 교회들은 대부분 히틀러를 칭찬하고 그를 지지했다. 6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을 보면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단지 Dietrich Bonhoeffer와 소수의 종교지도자들이 confessing church (Bekennende Kirche)를 1930년대 독일의 개신교 운동으로, 나치 정권이 국가사회주의 이념에 맞춰 교회를 통제, 조정, 이념적으로 연계하려는 시도에 반대했다. 주로 신학자 칼 바르트가 작성한 이 근본적인 문서는 교회의 궁극적인 권위는 아돌프 히틀러나 국가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기독교 교리를 국가 정치와 결합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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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앞으로 미국 정치를 요새 부상하는 민주당 사회주의자들이 장악하게 되면 교회에 대한 핍박이 시작될 지 모른다. 아마 그렇게 되면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해 11월의 선거에 대해 입을 다무는 한인교회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게 안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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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매일 아내와 저녁때 예배를 드린다. 기도도 잘 못하지만 영어로 한다. 영어로 된 praise song들도 골라 기타에 맞추어 부른다. 쎌폰을 이층으로 가져가지 않는 것도 지켜지고 있다. 내 의지로만은 할 수 없는 것인데 God의 도움을 받고 지켜지는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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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모레 토요일에는 3개월만에 아들부부가 집에 오기로 해서 만나게 될 것 같다. 일에 매여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간신히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주일에는 2부예배후 membership class에 들어가 두시간동안 교회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리고는 그 다음 주부터 8주간 성경공부반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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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는 NFL의 game을 하나 보았는데 Bengals의 88 이름이 재미있어서 많이 웃었다. 그의 이름이 GESICKI인데 “게시키”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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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에서 만난 Robert는 전화번호를 나누자고 했다. 언젠가 Arkansas로 내려오게 되면 연락해 달라고도 말했다. 난 아내에게 왜 그가 나를 만난 것을 honor라고 했는지 생각한후 그가 우리를 일본인으로 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잠시 일본인들이 부러웠다.
난 집으로 떠날때 그를 다시 만나면 “さようなら(샤요나라)”라고 말하자고 아내에게 말했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hu, 22 Oct 2026 14:49:4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On the mend]]></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97]]></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n6owBd awi2gc">Glad to hear you are recovering! "On the mend" is an informal English idiom meaning you are getting better, healing, or gaining your strength back after an illness or injury.</div>]]></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Wed, 21 Oct 2026 22:43:5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6"><![CDATA[오늘 배운 영어문장]]></category>
		</item>
				<item>
			<title><![CDATA[6 Illegal Acts by I-95 Drivers  enforced]]></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95]]></link>
			<description><![CDATA[I-95 고속도로의 6번의 변경 전국의 모든 주요 도로로 확산되고 있다. 여러 주에 걸친 단속, 그리고 설명할 필요도 없이 차량 번호판을 기록하는 시스템까지 때로는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편함으로 안내문을 보내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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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첫 번째 변화</strong>: I-95 고속도로의 과속 단속 카메라는 더 이상 델라웨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I-95 고속도로 전체에 적용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여러 주에서 동시에 경고 기간이 종료되었다.

I-95는 미국 동부의 척추와 같은 도로이다. 메인 주에서 마이애미까지 1,926마일(약 3,100km)에 걸쳐 15개 주를 관통하며 하루 30만 대의 차량이 통행된다. 미국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고속도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2026년에 도입될 모든 새로운 단속 기술의 시험 무대이기도 하다. I-95에서 시험된 기술은 다른 모든 지역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델라웨어 주가 최초로 이 기술을 실전 적용했다.

윌밍턴 인근 북쪽 방향 I-95의 처치맨스 마쉬 공사 구간(2027년 중반까지 진행되는 교량 공사)에서 과태료가 부과되기 시작했다. 과태료는 기본 20달러에 시속 55마일(약 88km/h) 제한 속도를 초과할 때마다 1마일(약 1.6km/h)씩 추가된다. 따라서 시속 66마일(약 106km/h)로 주행한 운전자는 118달러의 과태료 고지서를 받게 된다. 시행 후 72시간 만에 1만 건이 넘는 과태료가 부과되었다.

코네티컷주는 2026년 7월에 뒤따라 I-95와 2번 국도의 공사 구간에 설치된 카메라를 시험 가동한 후 정식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시험 기간 동안 운전자 8명 중 1명이 제한 속도를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시험 기간 동안에만 150명 이상의 운전자가 시속 100마일(약 160km)을 넘는 속도로 운전한 것으로 적발되었다. 현재 벌금이 부과되고 있다. 메릴랜드주는 가장 최근에 확대 시행에 나섰다. 남쪽 방향 I-95와 MD 100 인근에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하포드 카운티의 52번 구역에서는 10월 10일부터 과태료 부과가 시작되었다. 불과 11일 전이다. 위반 건당 벌금은 40달러이며, 경고 기간은 없다. 같은 도로망에 있는 세 개 주에서 모두 현재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뉴저지 주는 유사한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거나 시행 중이다. 모든 주에서 방식은 동일하다. 경찰관도 없고, 교통 통제도 필요 없다.

카메라가 차량 번호판을 인식하고, 담당자가 위반 사항을 확인하면, 등록된 차량 소유주에게 벌금 고지서가 발송된다. 실제로 누가 운전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그날 다른 사람에게 차를 빌려줬다면, 벌금 고지서는 당신에게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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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두 번째 변화</strong>: 펜실베이니아주는 6월 5일부터 운전 중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주요 위반 행위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 규칙은 대부분의 운전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격하다.
펜실베이니아주 폴밀러 법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행위는 이제 주요 위반 사항이며, 경찰관은 다른 위반 사항이 없더라도 오직 휴대전화 사용만으로도 차량을 정지시킬 수 있다. 벌금은 50달러에 법정 비용이 추가된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은,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도 이 법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I-95 고속도로에서 정체 중에 문자를 확인하는 것도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

휴대용 기기 사용 금지 조치가 우선적으로 시행된다. 뉴욕에서는 초범 시 벌금 200달러와 벌점 5점이 부과된다. 또한 보험료 인상 외에도 DMV 추가 요금이 의무적으로 부과되며, 두 가지 모두 3년간 지속된다. 이제 I-95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주에서 이 조치가 우선적으로 시행된다.

<strong>세 번째 변경 사항</strong>은 비상등을 켜고 있는 모든 차량에 대해 차선 변경 의무가 적용되며, 필요한 속도 감소량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운전자는 기본적인 차선 변경 규칙을 알고 있다. 긴급 차량이 있으면 차선을 변경하거나 속도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네소타, 캘리포니아 등 여러 주에서는 비상등을 켜고 있는 모든 차량이 이 법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고장 난 차, 배달 트럭, 길가에 멈춰선 운전자 등 비상등이 켜져 있으면 말이다.

차선 변경 의무가 적용된다. 기준은 명확하다. 안전하게 차선을 변경할 수 없는 경우, 제한 속도보다 시속 20마일(약 32km/h) 낮춰야 하며, 제한 속도 45마일(약 72km/h) 구역에서는 시속 25마일(약 40km/h)까지 낮춰야 한다.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 시속 5마일(약 8km/h) 정도만 줄이는 것은 법규를 준수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I-95 구간에서 차선 변경 의무 위반 시 벌금이 부과된다.
주마다 초범의 벌금은 150달러에서 500달러까지 다양하다. 몇몇 주에서는 위반으로 인해 인명 피해나 재산 피해가 발생할 경우 면허 정지가 의무화된다.

<strong>네 번째 변화</strong>: 이번 가을부터 더 많은 주에서 좌측 차선 위반이 주요 단속 대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이것이 자신에게 적용되는지 모른다. 좌측 차선에서 장시간 머무르는 행위는 엄밀히 말하면 이미 오래전부터 불법이었다.

조지아, 테네시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 이를 주요 위반 행위로 격상시켰다. 이제 경찰관은 추월을 하지 않고 좌측 차선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차량을 정지시킬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좌측 차선은 추월 전용 차선이다. 좌측 차선에 있지만 추월을 하지 않는 경우, 단속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주에서 초범의 경우 벌금은 50달러에서 100달러 사이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결과는 차선 정지 자체가 추가적인 위반 딱지를 발부할 기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사용, 안전벨트 미착용, 기타 눈에 띄는 문제 등. 차선 정지가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strong>다섯 번째 변화</strong>: 평균 속도 단속은 노련한 과속 운전자들이 수십 년 동안 의존해 온 전략을 없애고 있다. 평균 속도 단속은 카메라를 특정 위치에 설치하는 것이다.
구간 진입 및 진출 시 차량 번호판이 각 지점을 통과하는 시간을 기록한다. 시스템은 전체 구간의 평균 속도를 계산하고, 제한 속도를 초과하면 자동으로 과태료 고지서가 발부된다. 중간에 속도를 줄여야 하는 카메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버지니아주는 I-95 구간에서 이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뉴욕, 뉴저지, 메릴랜드주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시범 또는 시행하고 있다.

<strong>여섯 번째 변화</strong>: 금전적 결과는 누가 당신을 적발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그 차이를 모른다. 중요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델라웨어, 메릴랜드, 코네티컷 주에서는 자동 카메라 단속이 주법상 교통 위반이 아닌 민사 벌금으로 분류된다. 즉, 운전면허증에 벌점이 부과되지 않고, 기록도 남지 않는다.

보험 회사에 신고하면 DMV 운전 기록에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는다. 벌금만 내면 되는데, 델라웨어에서는 118달러, 메릴랜드에서는 40달러이다. 법적으로는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경찰관이 정지시키는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차선 변경 위반, 좌회전, 주차,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경찰관이 발부하는 딱지는 교통 위반에 해당하며, 즉시 운전 기록에 남는다.

운전면허증에 벌점이 부과되고, 이 벌점은 3년간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경찰이 발부하는 교통 위반 딱지 하나만으로도 자동차 보험료가 보험사와 주에 따라 15%에서 30%까지 인상될 수 있으며, 이 인상분은 위반일로부터 3년간 유지된다. 뉴욕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으로 벌점 5점을 받으면 의무적으로 300달러의 DMV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

3년 동안,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보험사가 별도로 부과하는 금액 외에도, 경찰로부터 휴대전화 사용 위반 딱지 한 장, 차선 변경 위반 딱지 한 장, 그리고 좌측 차선 위반 딱지 한 장을 받은 운전자는 연간 보험료가 400달러에서 800달러 이상 인상될 수 있다. 3년 동안 복리로 계산되는 이 금액은, 이전에는 단순한 벌금형으로 끝났을 수도 있는 세 번의 경찰 단속으로 인한 총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이제 경고만으로도 보험료 인상 기간 동안 수천 달러의 벌금이 발생할 수 있다. 카메라 벌금은 한 번이면 괜찮지만, 경찰 딱지는 3년 동안 따라다인다. 바로 그 차이이다. 그리고 I-95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이미 기록에 남을 때까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뉴욕, 뉴저지 등 여러 주에서는 이제 보험사가 보험 적용 상태를 실시간으로 주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납부 기한 만료, 갱신 실패 등은 모든 단속 과정에서 적발될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은 단속 당일뿐 아니라 이후 수년간 갱신 시마다 영향을 미친다. 현재 델라웨어, 코네티컷, 메릴랜드의 I-95 고속도로에서 속도위반 단속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과태료는 벌점이나 보험료 인상, 차량등록국 기록에 남지 않는 민사 처벌이다.
<p class="p1"><span class="s1">펜실베이니아주의 휴대전화 휴대 금지법은 신호등 정차 중에도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을 주요 경찰 단속 위반 행위로 규정했다. 차선 변경 의무화 법규는 비상등을 켜고 정차한 모든 차량에 적용되며, 단순히 브레이크를 살짝 밟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특정 속도 감소를 요구한다. 좌측 차선 위반 단속은 올가을 여러 주에서 주요 경찰 단속 위반 행위로 지정했다. 평균 속도 단속은 속도를 측정함으로써 속도 감속 전략을 무력화하였다.</span></p>
고속도로 구간 전체에 과속 단속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경찰이 발부하는 모든 교통 위반 기록에는 3년간 보험료 인상이 따르며, 이는 벌금 액수보다 훨씬 더 큰 실제 비용을 초래한다. 이러한 변화들이 당신에게 생소하게 느껴졌다면, 수백만 명의 다른 운전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들은 정작 단속에 걸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을 위한 공식적인 발표 없이 이루어졌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Wed, 21 Oct 2026 19:23:3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It was ever thus]]></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94]]></link>
			<description><![CDATA[<p class="p1"><span class="s1">The phrase "</span><span class="s2">It was ever thus</span><span class="s1">" (or its poetic variant "</span><span class="s2">'twas ever thus</span><span class="s1">") means that a situation, human behavior, or societal pattern has always been this way and remains unchanged. </span></p>]]></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ue, 20 Oct 2026 13:51:1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6"><![CDATA[오늘 배운 영어문장]]></category>
		</item>
				<item>
			<title><![CDATA[Let up]]></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93]]></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n6owBd awi2gc"><strong class="rQesXe MPyX">"Let up"</strong> is an English phrasal verb (or noun, <strong class="rQesXe MPyX">let-up</strong>) that means to become less intense, slow down, or stop—usually referring to bad weather, pain, or an unpleasant situation.</div>
<div class="yhAwj"></div>
<div>
<div class="ZLzG0d ncoeY E8xBUb">Primary Meanings &amp; Usage</div>
</div>
<div>
<ul class="XSq4R KI3fJ">
 	<li class="Z1qcYe"><span class="iNqyIf"><strong class="rQesXe MPyX">To diminish or stop (weather, pain, or events):</strong></span>
<ul class="XSq4R KI3fJ">
 	<li class="Z1qcYe"><span class="iNqyIf"><em class="zhvwWe">Example:</em> "The heavy rain finally <strong class="rQesXe MPyX">let up</strong> in the afternoon".</span></li>
 	<li class="Z1qcYe"><span class="iNqyIf"><em class="zhvwWe">Example:</em> "If your headache doesn't <strong class="rQesXe MPyX">let up</strong>, you should rest."</span> [<a href="https://vdict.com/let%20up,7,0,0.html?lang=en">1</a>]</li>
</ul>
</li>
</ul>
</div>]]></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Sat, 17 Oct 2026 14:16:1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6"><![CDATA[오늘 배운 영어문장]]></category>
		</item>
				<item>
			<title><![CDATA[If the desire to obtain or enjoy something becomes excessive,]]></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92]]></link>
			<description><![CDATA[아내는 일주에 하루 일하기에 나에게는 그녀가 몇시간 어디 가 있다가 오는 정도로 생각이 든다. 난 집에서 아침명상을 끝내고 오후에는 잔디를 깎을 생각이다. 이것 저것 하다보면 저녁때 아내가 온다. 오늘 나의 점심을 그녀가 냉면으로 준비했다는데 제대로 면을 삶아 먹게 될지 모르겠다.

난 직장을 가지고 전과 같이 일을 하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많이 없다. 일할 때 가장 큰 스트레스는 crown and bridge 이빨을 만들어 치과의사에게 보냈는데 환자가 이빨 색깔이 맞지않다고 해서 의사가 환자를 직장으로 보내 내가 환자앞에서 색깔을 맞추어 줄때이다. 환자가 직장에 오면 난 다른 일은 접어두고 환자가 만족하게 이빨의 색깔을 맞추어 주어야 했다.

<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610/6ad2469632d923540779.jpeg" alt="" />

이제는 내가 알아서 만들어 일을 해야한다. 수입도 전과 다르게 적으니 더 큰 집을 사거나 이사하거나 차를 사는 등 큰돈을 쓰는 것은 생각을 못하고 밖에 나가서 음식을 먹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난 살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이 재정적인 그물에 갇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싫은 것은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하는 잦대에 맞추어 사는 것이다.
어제 아내에게 언젠가 큰누나에게서 이름이 있는 핸드백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 ”그 핸드백 들고 사람들 만나니?“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창피해서 그 핸드백 들고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친구들 만날때 돈이 없어도 크레딧카드로 사서 보이려고 핸드백을 사는 여자가 있다고 들었는데…그녀는 아니었다.

<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610/6ad246963ac4e9917353.png" alt="" />

사람중에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보이는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도 Jaguar니 Benz니 타고 다니고 큰집을 사서 산다.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은 그런 차를 타고 큰집에 살면 별로 할 말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데 욕심이 없을 수없다. 더 나은 삶을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때로 좀 지나치지않나? 생각할 때가 있다.
<h1>欲 心</h1>
사전에 나오는 욕심은 바랄 욕(欲 또는 慾)과 마음 심(心)이 합쳐진 말로, 무언가를 얻거나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뜻한다. 우리에게 적절한 수준의 욕심은 삶의 활력과 자기계발, 목표 달성을 위한 건강한 원동력이 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한계를 넘어서면 탐욕이 되며 자신과 타인에게 갈등이나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에 이민와서 처음 살때는 버는 돈이 적어 아파트에 살다가 조금 형편이 나이지면 콘도나 타운 하우스를 사서 옮겨 살았다. 그리고 생활에 안정이 되면서 single house을 사서 살게 된다. 하지만 그 후에도 부모와 같이 부담이 되는 더 큰 집을 사서 이사가 살며 재정적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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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영어로 찾아보니 Greed라고 나와있다. Greed는 탐욕에 가까운 단어로 부나 물질적 이득을 얻으려는 끝없는 욕구로 표현된다.

탐욕의 유형으로
*재정적 탐욕: 단순히 부를 쫓는 것을 목표로 삼아 끝없는 부를 추구하는 것.
*물질적 탐욕: 만족을 주지 못하는 물질적 재화를 축적하는 것.
*권력 탐욕: 실질적인 필요성을 넘어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것.
*관계적 탐욕: 깊은 유대감 대신 피상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것.

성경에 <strong>“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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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국가를 생각해 보았다. 만약 일본이 한국을 1910년에 합병한후 만주와 중국의 일부를 차지하고는 더이상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영토를 확장하지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했다. 아마 미국과의 전쟁이 없이 한국은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든다. 일본은 영토확장 욕심을 가졌기에 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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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치 독일이 유럽의 프랑스와 주위 나라를 점령한 후 러시아를 치지않고 그냥 만족해서 주저않았다면 아마 프랑스는 없어졌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세계 여러 나라들 중에 super power 인 미국만이 영국과 다르게 자신의 욕심을 제어할 수 있었다. 항복한 일본을 식민지로 지배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않았고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이겼지만 물러가고 돈을 주고 영토를 산 것으로 그만 두었다. 더 큰 욕심을 부리지않고 미국은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면서 아직까지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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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아내는 욕심을 가지지않으니 생활이 안정되고 재정적으로 염려가 없으니 더 많은 시간을 나자신의 개발과 국가 교회를 생각하고 또 이웃 돕는데 시간을 쓸 수가 있다.

어제는 Lord’s Pantry에 가서 많은 불쌍한 이웃들에게 옷을 주는 일을 도왔는데 미국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 잘 하는 일이 있다. 나와 아내도 기회가 되면 하는데 식당에 군인이나 불쌍한 사람들이 들어와 식사하면 그들의 식사비를 내주는 일이다. 식사비를 내주면 대부분 받은 사람은 고맙다고 와서 악수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좀 다른 경우의 일을 겪은 Becky Alexander라는 한 여자의 명상을 어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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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리스 카페(Harry's Café)'의 유리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맨 위 칸에 놓인 파이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바삭하고 깊은 파이 틀 위로 바나나 크림이 넘칠 듯 담겨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황금빛 머랭이 두툼하게 소용돌이치며 얹혀 있었다. 나는 주문을 마치고 바 의자에 앉았다.
세 자리 떨어진 곳에는 헝클어진 회색 머리의 한 여성이 치즈버거의 마지막 한 입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얼룩진 재킷을 걸치고 구멍 난 모자를 쓴 채, 구겨진 지폐 몇 장을 손에 쥐고 계산대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나는 종업원에게 눈짓을 보내며 속삭였다. "저분 식사값까지 제가 낼게요. 제 계산서에 포함해 주시겠어요?" 종업원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대에 다가온 여성에게 종업원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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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계산하실 건 없어요. 누군가 이미 식사값을 지불하셨거든요."
"난 누가 내 밥값을 대신 내주는 거 딱 질색이야!" 여성은 한참 동안이나 종업원을 쏘아보았다. 내 호의를 받은 그 여성이 씩씩거리며 문밖으로 성큼성큼 나가버리자,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해리스 카페를 방문했던 기억 속에는 두 가지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바나나 크림 파이, 그리고 '선행을 베풀려다(pay it forward)'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경험이다. 어쩌면 그 여성은 내 행동을 통해 자신이 판단받고 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날 예수님께서 내게 그녀의 식사값을 대신 내라고 마음을 움직이셨다고 믿는다. 그녀가 훗날 그 일을 되돌아볼 때, 예수님께서 원래 전해지길 바랐던 그 사랑으로 그녀를 위로해 주시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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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고 기온이 80도로 올라가는데 내일은 60도로 춥다고 말한다. 밖의 잔디의 녹색이 더 진해 진 것 같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Fri, 16 Oct 2026 15:50:4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Are you ready to meet Jesus?”]]></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91]]></link>
			<description><![CDATA[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언어를 익히는 것은 하루에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부모와 형제 자매들과 주고받는 한단어 한문장을 듣고 따라 하며 결국 말을 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나의 모습이 그런 것 같다. 하루 하루 단어를 읽고 또 문장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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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내도 모르는 straw bale이 뭔지 알았다. Halloween때 호박옆에 놓아두는 짚단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한 언어를 새로 익히는 과정에서 때로 무시당하기도 하고 또 왕따당하는 일도 체험한다. 그렇다고 배우는 것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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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부터 다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모임에 참석해 찬양을 할때 연주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이다. 손가락끝이 굳어야 하는데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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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침에 Cornerstone Chapel의 예배도 online으로 드렸다. Pastor. Gary는 “그리스도의 재림: 휴거를 위한 준비"를 5R로 설교하였다.

<strong>“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strong>

<strong>1) REASSURED of life after death</strong>
<strong>2) RESURRECTED bodies (부활한 몸)</strong>
<strong>3) REUNITED with loved ones (사랑하는 이들과의 재회)</strong>
<strong>4) RESCUED from wrath (진노로부터의 구원)</strong>
<strong>5) REWARDED with eternity (영원한 보상)</strong>

전에 아는 목사에게서 들었다. 그는 요한계시록을 몇주 계속 설교하고 마지막설교에는 나팔소리가 나면서 공중에서 예수가 다시 재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교인들 모르게 예배당 여러곳에 준비한 악기들을 일제히 불게 했는데 그 큰소리를 듣고 놀란 교인들이 “할렐루야”라고 외칠줄 알았는데 거의 다 의자밑으로 숨었다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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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더욱 많은 자연재해 기근 홍수 지진이 나고 전쟁이 있는 것을 보면 말세가 가까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소돔과 고모라와 덜하지않게 사람들이 타락한 세상을 보면 더욱 그렇다.
실지로 말세가 되기전에도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않든 갈때 가게 된다. 사람이 죽으면 땅속에 있는 하데스(지옥)로 가든지 paradise로 혼이 간다. Paradise는 하데스와 같이 땅속에 있었다가 예수부활이후 third heaven으로 올라갔다. ‘성경에 묘사된 낙원‘은 밑의 글에 상세히 적혀있다.

<a href="https://jamespage.org/makeusthink/?mod=document&amp;uid=372">https://jamespage.org/makeusthink/?mod=document&amp;uid=372</a>

며칠전에는 꿈에 나타나지않던 막내동생이 나타났다. 그는 16년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거의 내꿈에 나타나지 않았었기에 반가웠다. 그는 살아있을때 교회에 나가지 않았는데 하데스로 가지는 않은 것 같다.
꿈속에서는 내가 난지 알지만 내 몸은 보이지않는다. 상대방이 누군지 알지만 또 몸을 본 기억이 없다. 난 꿈속에서 나의 상태가 육체를 벗어난 영혼의 상태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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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얘기가 생각난다. 부자는 하데스에 내려갔고 나사로는 낙원에 갔다. 부자는 고통속에서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다섯 형제에게 보내어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자”,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구약성경)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 것이니라"라고 답했다. 부자가 죽은 자가 부활하여 가면 회개할 것이라 하자,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권함을 받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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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부자가 생각난다.
한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하자,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어 더 큰 곳간을 짓고 스스로에게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하니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20)…

<strong>"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10:28)</strong>

요새 교회에서는 Pastor. Josh가 Acts 강해를 한다. 사도들이 예수가 부활한 후 성령을 체험하고 그의 사역에 동참함으로 그들은 다 죽음을 맞이하였다. 요한은 boiling water속에 던져졌지만 죽지않아 유배되어 요한계시록을 썼다.
죽는것은 육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원치않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영혼이 사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다.
Pastor. Josh 외쳤다. <strong>“Are you ready to meet Jesus?”</strong>]]></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Mon, 12 Oct 2026 20:44:4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Since Americans are rational, my wife and I will likely be able to adjust to the church.]]></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90]]></link>
			<description><![CDATA[오늘은 월요일 밖의 기온은 62도로 섭씨로는 22도이다. 아마 일년중에 가스비나 전기 쓰는 값이 가장 적게 드는 달이 9월 10월이 되는 것 같다. 에어콘이나 히터를 쓰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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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Mornings with Jesus”책을 읽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용서에 관해 에리카 로인스라는 여자가 썼다.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라면 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식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제가 정말 싫어하는 상황 중 하나는 악당이 영웅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도, 영웅이 그저 참고 넘어가기를 오만하게 기대하는 것입니다. 영웅이 반격하면 악당은 뻔뻔하게도 복수를 하려 듭니다. 그런 갈등이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속으로는(그리 숨기지 않고도) 언제나 영웅이 복수하기를 바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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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마땅한 대가를 치르기를 응원할지 몰라도, 예수님께서 제게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참 감사합니다. 만약 그러셨다면 저는 분명 한쪽 눈이 멀고 이빨이 다 빠진 여자가 되었을 테니까요!“
그녀의 글을 읽고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모습을 가지는지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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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지지난 주일과 같이 10시전에 교회에 도착해 fellowship group에 들어갔었고 3부예배에 참석을 했다. 미국교회에 다니니 미국인들에게 나는 알일이 전혀 없는 아시아인이기에 strangers로 미국에 처음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두달이상 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이제 몇 사람을 알게 되어 그들과 얘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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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원래 동물과 같이 감성적이다. 하지만 이성적인 면이 있기에 인종을 뛰어넘을 수 있고 또 성경에 나온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이방인에게 같이 크리스챤이 되어 반길 수 있는 것일 것이다.
두주전에 장례식이 전에 다니던 한인교회에 있어서 갔었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속에서 대화를 하고 반가움을 표시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속에 있는 지금의 나와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그들은 나에게 다시 한인교회에 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게 감성적인 내가 이성적인 나를 초월한다면 한인교회를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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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을 진행할때 목사가 주일 예배때 입는 가운을 입고 조명등이 마치 stage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게 초점을 맞추어 비추는 것이 내가 다니는 교회의 예배분위기와 달랐다.
그는 세상을 떠난 장로부인이 누구나 그리는 고향에 간것을 얘기하면서 미국에 이민와서 살던 한국인들이 한국으로 많이 되돌아 간다고 말했다. 실지로 한국 법무부 자료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역이민' 한인(미국 시민권자 포함)의 수는 약 47,406명으로 추산되고 이는 2010년 당시 35,501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4년 만에 약 34% 증가한 수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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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인들이 미국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많은 한인들이 미국에 살지만 실지로 미국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우리나라’는 영원히 한국이고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얼마전 아내에게 여행하고 싶은 나라가 있냐고 물어 보았다. 그녀는 전과 같이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말할텐데 이제는 유럽의 스위스나 덴마크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살던 한 미국인의 한 YouTube영상에 대한 댓글을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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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의 대기업 몇 곳에서 IT 컨설턴트로 일하며 한국에 수년간 거주했던 미국인입니다. 저는 이 영상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직접 목격하고 보증할 수 있습니다. 만연한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터무니없는 미의 기준, 통제 불능 수준의 술자리 문화, 소셜 미디어상에서의 잔혹한 괴롭힘, 그리고 부모나 회사 경영진의 압박으로 인해 과로사할 지경으로 내몰리는 학생과 직장인들의 현실 말이죠.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불쾌하게 느꼈던 점은 상류층이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마치 쓰레기처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성적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한국을 떠날 예정이었기에, 우리 가족에게는 성적에 대한 그 광적인 집착이 해당 사항이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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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썼다.
”작은 아파트 하나 빌리는 데 수십만 달러를 내고 집주인이 돈을 들고 도망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한다니... 이게 바로 한국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죠. 도대체 누가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혹은 얼마나 어리석어야 평생 ​​모은 돈을 거의 전부 털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건네겠습니까? 설상가상으로 은행 대출금까지 갚아야 하니 결국 이중으로 사기를 당하는 꼴이 되는 거죠. 이게 어처구니없고 미친 짓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정부와 부유층이 서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겁니다... 정말이지 개탄스럽기 짝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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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려고 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살은 한달은 정말 좋았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 다음에 후회한다는 글이 올려져 있는 것도 보았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과 자란 것 그리고 분명 한국인들과 얼굴과 모습은 같지만 이제는 생각과 culture가 다르다.

얼마전에 나는 AI로 한 어린 애를 안고 있는 젊은 한국인 엄마의 사진으로 엄마가 애에게 “I love you!”라고 말하는 영상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지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살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 나도 한국에 있을때 명동을 걷고 있을때 내 옷에 붙인 학교 뱃지를 보았는지 한 외국인이 영어로 장소를 물었는데 아무 말없이 외면하고 걷던 길을 계속 갔던 기억이 난다. 그 외국인은 얼마나 무안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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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을 여행하는 것과 살러가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만 미국에서 거의 50년을 살게 되는 나에게 한국이나 미국속에 사는 한인들에게 전혀 어떤 자긍심을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이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일본인 가정은 매년 자기 자녀를 일본에 여행시키도록 한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만약 미국인들이 한국인들과 같이 동물과 다르지않은 감성적인 면이 이성적인 면보다 많다면 절대 나나 아내가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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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참석한 Lord’s Pantry의 여자들과 이제는 조금 더 친해져서 Ann이 점심을 같이 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아들이 First Watch restaurant의 부사장이라고 말하며 free meal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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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영어로 쓰인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를 따로 적었다. 시간이 될때 외우려고 한다. 언젠가 언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오늘을 살 수 있는 것이 주님께 감사하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Mon, 05 Oct 2026 15:00:2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Indian Pilot Saved an Israeli Flight(174 passengers) From Crashing.]]></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88]]></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610/6ac02a7bd6f8c4601638.jpeg" alt="" />

두바이발 텔아비브행 항공기에는 174명의 승객이 탑승해 있었는데, 중동 상공을 비행하던 중 조종실 안에서 기장이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행기는 2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1만 7천 피트(약 5,180미터) 이상 급강하했고, 기내의 상황은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았다. 가족들은 아이들을 품에 꼭 껴안았고,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으며, 승객들은 과연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 아비규환 속에서 부상을 입은 기장은 모두에게 생존의 기회를 안겨줄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바로 조종실 문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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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스미스 마차르(Smith Machar)이다. 이 이야기는 하늘 위에서 벌어질 뻔한 참사를 막아낸 한 인도인 조종사에 관한 것이다. 스미스 마차르는 어린 시절부터 조종사를 꿈꾸며 자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뭄바이의 섬유 사업을 운영하는 가정에서 성장했고, 청년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가업을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가족을 돕고 가업을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섬유 공학을, 이어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열아홉 살 무렵, 우연히 항공 관련 세미나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훗날 그 순간을 가리켜 '항공에 대한 열정에 눈을 뜬(aviation bug)'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평범한 진로는 아니었기에 어머니의 걱정도 컸다. 비행은 위험해 보였고, 아들이 평생 집을 떠나 하늘 위에서 지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스미스는 자신의 길을 선택했고, 아버지께서 그의 훈련 비용을 지원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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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 출신의 이 청년은 인도를 떠나 뉴질랜드로 향했다. 그에게는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직접 비행을 배우기 전까지 그는 승객으로서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몇 번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2008년부터 뉴질랜드 더니든(Dunedin)에 있는 '메인랜드 에어(Mainland Air)'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의 전 비행 교관은 그를 밝고 성실하며, 압박감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청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2011년, 마차르(Machar)는 인도의 스파이스젯(SpiceJet)에 입사했다. 그는 약 11년 동안 꾸준히 경력을 쌓아 선임 기장이자 신입 조종사 실무 훈련을 담당하는 '라인 트레이닝 캡틴(line training captain)'의 위치에 올랐다. 이는 그가 단순히 비행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조종사들을 훈련하고 지원하는 역할도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2022년 플라이두바이(FlyDubai)에 합류할 무렵, 그는 보잉 737 기종으로 약 1만 시간의 비행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중 6,400시간 이상은 기장으로서 직접 조종간을 잡은 시간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경험이 사람을 무적의 존재로 만들어주지는 않지만, 위기 상황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 때 명확하게 판단하도록 훈련받은 기장이었다.

그는 조종사로서, 그리고 기장으로서 자신의 생애에 그런 일을 겪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매우 드물고 이례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테러 공격 같은 일 말이다. 아시다시피, 이 공격이 있기 1년 전 마차르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항공, 압박감, 그리고 안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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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두바이발 텔아비브행 플라이두바이(Fly Dubai) FZ1073편이 이륙했다. 탑승객 대부분은 이스라엘인이었으며, 총 174명이 탑승해 있었다. 비행 시작 후 약 2시간이 지났을 무렵, 조종실 안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부조종사가 마차르(Machar) 기장을 공격해 흉기로 찔렀다고 한다. 항공기는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며 하강했다. 이후 비행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2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17,000피트(약 5,180미터) 이상 급강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차르 기장은 중상을 입었고, 항공기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기장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조종실 문을 열었다.

그 덕분에 승객과 승무원들이 조종실로 진입해 공격자인 오만 출신 부조종사를 제압하고 조종석에서 끌어낼 수 있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여행 중이던 한 승객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기장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겁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마차르(Machar) 기장의 용기가 실로 대단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승객과 승무원들이 공격자를 제압했고, 기내에 있던 의사가 부상당한 기장을 치료했으며, 기적적으로 승객으로 탑승해 있던 두 명의 숙련된 조종사가 조종간을 이어받아 항공기를 사우디아라비아 타북(Tabuk)에 안전하게 착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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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렇기에 스미스 마차르(Smith Machar) 기장이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그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구조가 가능하도록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냈다.
젊은 시절, 그에게 비행은 삶의 전부였다. 그는 모든 비행 노선과 비행 시간, 그리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원했다. 하지만 훗날 그는 결혼과 자녀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는 그저 '조종사'로만 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가족,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원했고, 그들과 어울려 놀고 싶어 했다. 사소한 부분일지 모르지만, 이는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남편이자 아버지였으며, 그가 조종사라는 직업을 택했을 때 어머니의 걱정을 샀던 아들이기도 했다. 또한 비행기가 이륙할 때마다 무엇이 걸려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던 전문가였다. 현재 그는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공격에서 생존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와 이스라엘,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그를 영웅이라 부르고 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는 심각한 부상과 엄청난 압박 속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했기 때문이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Fri, 02 Oct 2026 22:06: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A dog named Deacon /  Grace Wycliffe]]></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87]]></link>
			<description><![CDATA["찰리!" 나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남동생과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말이야.
우리 집 거실에서 아이들은 가톨릭 학교 교복을 입고 웃으며 닌텐도 게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찰리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10살이었고, 나보다 세 살 어렸다.
다시 시도해 봤어요. "찰리!"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그가 나를 보거나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우리를 보러 오셨다. "찰리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어." 내가 말했다. 찰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눈빛이 멍했다. 엄마는 찰리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는 정신을 차렸지만 토했다. 그녀는 911에 전화하고 직장에 계신 아버지께도 전화했다.
구급대원들이 먼저 도착했다. 그들이 찰리를 거실 계단에 앉히자마자 아빠가 뛰어들어왔다.
"내가 누군지 아니?" 아버지가 그에게 물었다.
"아니요," 찰리가 말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그가 물었다.
"아니요."
찰리가 우리 아빠도, 우리 집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정말 무서웠다.
"발작을 일으키고 있어요." 구급대원 중 한 명이 말했다. "병원으로 이송해야 합니다." 찰리의 친구가 먼저 구급차에 탔다. 구급대원들은 찰리를 구급차에 태웠다.
강아지! 나는 생각했다. 나는 위층으로 달려가 찰리의 작은 파란색 강아지 인형을 집어 들었다. 찰리가 태어난 날 내가 선물했던 인형이었다. 찰리는 어렸을 때 그 인형을 어디든 가지고 다녔고, 지금도 매일 밤 껴안고 잔다. 아빠와 나는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 강아지 인형은 우리가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구급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간신히 찰리에게 퍼피를 넘겨줄 수 있었어요. 아빠는 찰리와 함께 구급차에 탔고, 엄마와 나는 차로 뒤따라갔다.
찰리는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상태가 좀 나아졌지만, 검사를 위해 입원해야 했다. 온갖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찰리는 괜찮을까? 만약 찰리가 괜찮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게 찰리와 저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였어요. 나는 항상 생각을 너무 많이 했다. 가을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학교에 가서 시간표를 훑어보며 수업 사이를 가장 빨리 이동하는 경로를 미리 짜놓곤 했다. 나는 확실한 걸 좋아했다. 답을 알고 있으면 안정감을 느꼈다.

챨리는 어렸을 때 심한 후두염을 앓곤 했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가끔 한밤중에 깨어보면 부모님은 안 계시고 이모가 저를 돌보고 계셨는데, 찰리를 응급실에 데려가셨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렸기 때문에 감정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찰리가 여섯 살쯤 되었을 때, 응급실에서 긴 밤을 보낸 후 그의 방에 들어갔다. "괜찮아?" 제가 물었죠. "정말 무서웠겠구나."
"그렇게 나쁘진 않아." 그가 말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걱정하지 않아."
"두려워해도 괜찮아."라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알아." 그가 말했다. "하지만 두려울 때조차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

찰리였는 나이에 비해 훨씬 현명했다. 비록 나보다 어렸지만, 나는 그를 존경했다. 특히 신앙심이 깊었다. 찰리에게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나는 첫 영성체 날이었다. 그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주교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아이가 그런 말을 주교에게 할 수 있을까?
챨리가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에 우리는 가톨릭 학교로 전학을 갔다. 찰리의 생각이었다. 나는 좀 망설였다. 열세 살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공립학교에 계속 다니고 싶었기에 말이다. 그래도 찰리를 따랐다. 그의 신앙심이 존경스러웠으니까.
비록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병원에서 뇌파 검사를 포함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모든 것을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그에게 가장 좋았던 순간은 자원봉사자와 그녀의 치료견인 커다란 골든 리트리버가 방문했을 때였다. 부모님과 나는 찰리와 그 개가 눈을 마주치는 순간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착한 강아지네?" 그는 리트리버의 귀를 긁적이며 말했다. "나도 강아지 한 마리 있었으면 좋겠다." 찰리는 간질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물 치료로 발작은 조절되었지만, 스포츠를 삶의 중심으로 삼아왔던 그에게는 여행 축구팀을 떠나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
"미안해, 친구." 내가 말했다.
"응, 최악이야." 그가 인정했다. 나는 그가 더 말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리모컨을 집어 들고 좋아하는 만화를 틀었다. 실망감을 드러내고도 하던 일을 계속하는 건 찰리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후 몇 년 동안 상황은 악화되었다. 찰리의 발작은 약물 치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다. 13살 때 그는 일주일 동안 입원했고, 두 번째로 더 희귀한 발작 장애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은 이런 발작이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나아지는 종류가 아니라고 말했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였지만, 그 소식에 그는 크게 낙담했다. 평소처럼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퍼피조차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가 치료견을 데리고 오면 찰리는 기운을 차렸다.
그때쯤 되자 부모님은 그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엄마가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찰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엄마와 아빠는 인터넷에서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는 강아지 품종을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이모가 키우던 코카푸(코커 스패니얼과 푸들의 믹스견)를 정말 좋아했다. 우리는 브리더의 집에 가서 세상에서 제일 작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을 만났다. 다행히 아빠와 나는 알레르기 반응이 없었다. 우리 모두는 곱슬거리는 연갈색 털에 귀여운 코를 가진, 잠꾸러기 같은 작은 강아지에게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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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 후, 우리는 그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디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는 아버지의 대학 시절 팀이었던 웨이크 포레스트 데몬 디컨스의 이름을 딴 것이었습니다.
디컨이 분위기를 바꿨다.
하지만 챨리에게는 여전히 병원 진료 예약도, 복용해야 할 약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닌 개와 함께 챨리는 더 많은 기쁨과 웃음으루가질 수 있었다.
디컨은 우리가 스쿨버스에서 내리면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종종 갑자기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소파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혀를 축 늘어뜨리곤 했다. 찰리가 디컨에게 테니스 공을 던져주거나 그의 장난스러운 행동에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발작이 시작되기 전처럼 삶이 평온하게 느껴졌다. 마치 마침내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디컨이 우리 가족이 된 지 8개월쯤 되었을 때,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정원에 있었는데 갑자기 마당 양쪽 끝을 향해 짖어대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네 시간 동안이나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집 안으로 들어온 후에는 집안 곳곳을 미친 듯이 킁킁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부모님은 디컨을 동물병원에 데려갔고, 수의사는 신경과 전문의를 추천했다. 신경과 전문의는 뇌 CT 촬영과 척수 검사를 했다. 뇌종양이나 감염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디컨의 이상 행동은 계속되었고, 불안해하며 밥도 잘 먹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디컨을 동물 행동 전문가에게 찰리와 나를 데리고 함께 갔다.
"발작 증세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가 말했다. "필요하다면 약물을 처방해 줄 수 있는 수의행동학 전문가에게 상담받아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찰리의 발작 때문에 우리 가족이 이미 충분히 고생하지 않았던가? 왜 하필 우리 강아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나는 동생을 바라보며 그가 무너져 내리기를, 울음을 터뜨리기를, 뭐라도 하기를 기다렸다. "괜찮아?" 내가 물었다.
"괜찮아." 그가 말했다. "디컨도 괜찮을거야."
수의행동학 전문가는 디컨에게 발작과 강박장애 치료를 위한 약물을 처방했다. "디컨에게 맞는 약물 조합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거예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와서 경과를 확인해야 할 겁니다." 그녀는 또한 디컨의 강박적인 행동을 진정시키는 운동법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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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식사 시간에 엄마는 찰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발작 일으킨 적이 언제였지?" 그녀가 물었다. "디컨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 꽤 오래된 것 같아." 찰리는 잠시 생각했다. "아마도 3개월 전쯤이었나?
석 달 전. 그때부터 디컨의 발작이 시작됐었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를 바라봤죠… 너무 충격적이어서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마치 디컨이 내 발작을 대신 해준 것 같아."
찰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리도 디컨이 발작하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엄마가 말했다. "발작이 일어나는 시기가 좀 걱정되긴 해."
디컨의 치료가 시작되자마자 찰리의 발작이 멈춘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슨 일이야? 우리 발치에 앉아 있는 작은 코카푸를 바라보았다. 마치 녀석이 뭔가 말해줄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녀석은 그저 누군가 바닥에 음식을 떨어뜨려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달 후 행동 치료사가 디컨에게 맞는 약 조합을 찾아냈을 때, 우리는 그가 찰리와 똑같은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같은 종류의 희귀 발작 장애였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발작이 없어진 덕분에 찰리는 다시 활동적으로 지낼 수 있었다. 골프팀에 가입하고 운전도 시작했으며, 어느새 고등학교 졸업식 무대에 섰다.
찰리는 이제 22살이고,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대학 시절, 그는 축구 선수로 활동했고, 로마로 유학을 갔으며, 졸업반 부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지난 5월에 졸업했다. 아홉 살인 디컨은 여전히 ​​활기 넘치지만, 매일 오후 3시에 발작약을 치즈에 싸서 먹여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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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전히 ​​찰리와 디컨 사이의 기묘한 연결고리에 대해 묻는다. 어떻게 둘 다 같은 질환을 앓게 되었을까? 개가 주인의 발작 증세를 옮길 수 있을까? 나도 답을 모른다.
어렸을 적의 나는 그런 것들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디컨과 함께한 우리 가족의 경험은 내게 삶의 신비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중 일부는 너무나 경이로워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궁금한 점들이 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걱정될 때마다 찰리가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제 나도 그 말을 믿게 되었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hu, 01 Oct 2026 13:39:3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7"><![CDATA[자료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Hand down]]></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86]]></link>
			<description><![CDATA[<span>"Hand down" is a phrasal verb that means </span>to pass objects, traditions, or legal decisions from one person or generation to another.]]></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ue, 29 Sep 2026 19:18:0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6"><![CDATA[오늘 배운 영어문장]]></category>
		</item>
				<item>
			<title><![CDATA[The New Testament introduction of the Books of the Bible]]></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85]]></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9/6abbc4fa61dd44093598.jpeg" alt="" />

몇년전 Fairfax Community Church에 다닐때 목사가 한 성경책을 소개해 산 적이 있다. 이 성경에는 chapter와 verse가 없는 것이 다른 성경과 달랐다. 장과 절이 없으니 읽기 편한 점이 있어서 다시 읽는데 성경의 장과 절은 언제 도입되었을까?

장과 절 구분은 사람들이 특정 구절을 빠르게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요한복음 앞부분에 나오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구절을 찾는 것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찾아가는 편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장‘은 서기 1227년경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스티븐 랭턴(Stephen Langton)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으며, 1382년에 나온 위클리프 영어 성경(Wycliffe English Bible)에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경우, 1448년 유대인 랍비 나단(Nathan)이 처음으로 ‘절‘을 구분해 넣었다. 이후 1555년 로베르 에스티엔(Robert Estienne, 일명 스테파누스)이 신약성경에도 ‘절‘을 구분하여 포함했을 때, 구약성경에는 나단이 나눈 절 구분이 주로 사용되었다. 장과 절 번호가 모두 포함된(스테파누스의 구분을 따른) 최초의 성경은 제네바 성경(Geneva Bible)이었으며, 이때 확립된 장과 절 구분 방식이 오늘날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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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보통 성경과 다른 것은
: 본문에서 장과 절 번호를 삭제했다.
: 대신 저자가 의도했다고 판단되는 내부 구분에 따라 각 책을 구성했다.
: 본문을 더 명확하고 자연스럽게 제시하며 시(詩)의 의도된 행 바꿈이 깨지지 않도록 단(column)을 하나로 구성했다.
: 성스러운 본문 페이지에서 각주, 소제목 및 기타 부가적인 자료를 모두 제거했다.
: 후대 전통에 의해 둘 이상의 부분으로 나뉘었던 책들을 다시 하나로 합쳤다.
: 독자가 내용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순서로 책들을 배치했다.

신약성서는 성경을 구성하는 두 주요 부분 중 하나로, 전체 분량의 마지막 4분의 1을 차지합니다. 신약성서는 구약성서에서 시작된,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창조의 본래 목적을 회복해 나가시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특히, 이 이야기가 서기 1세기에 절정에 달한 순간, 즉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신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과 제도의 가장 깊은 의미를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가는 곳마다 치유와 회복을 베푸시며, 삶의 모습과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다가올 시대의 용서와 생명을 이 시대에 가져오셨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전 세계 사람들을 초대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함께 협력하여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시작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 나갔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으로,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창조물을 새롭게 하시고 온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평화를 세우실 날을 고대합니다.

신약성경은 1세기 중반부터 말까지 다양한 시기에 쓰여진 27권의 책을 통해 이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책들은 분량이 제각각이며,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글쓰기를 보여줍니다.

대부분은 편지이며, 어떤 것은 한 페이지 분량으로 짧습니다. 반면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처럼 두 권으로 된 역사서는 신약성경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합니다. 또한 구약에서 발전된 문학적 전통을 이어가는 책들도 있습니다. 야고보는 잠언과 전도서와 같은 지혜서와 유사하며,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서 후반부처럼 묵시록적 성격을 지닙니다.

신약성경에는 전통적으로 네 복음서로 알려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누가복음 전반부와 사도행전), 요한복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복음서"라는 단어는 특정한 종류의 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 책들의 내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기쁜 소식"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용어는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의 핵심 내용을 의미하며, 그의 제자들이 이 메시지를 널리 전파한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전통적인 제목)은 원래 마태가 전한 "기쁜 소식"을 뜻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이야기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틀과 토대를 이루지만, 이 책들은 문학적 특징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입니다(각 책을 읽도록 권유하는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약성경의 모든 책을 언제, 왜 쓰였는지, 그리고 어떤 문학적 특징을 지닌지 이해하며 읽을 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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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오늘날 대부분의 인쇄된 성경에서 신약 성경의 책 순서는 이러한 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하나의 작품을 두 권으로 나눈 것이므로 함께 읽어야 합니다. 요한의 세 서신은 모두 같은 저자가 썼고 같은 관점을 반영하므로 요한복음과 함께 읽을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순서에서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사이에 요한복음이 있고, 요한의 서신들은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사이에 두고 요한복음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지혜서)는 전통적으로 서신들 사이에 배치되어 있어 마치 서신처럼 읽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쇄된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쓴 13통의 서신은 대략 길이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신들은 역사적 순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바울의 서신들이 그의 삶의 맥락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그리고 그의 사상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며 읽기가 어렵습니다.

이 개정판에서는 신약 성경의 책 순서를 새롭게 구성하여 고대의 사복음서 개념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예수 이야기의 우선순위는 전통적으로 유지하되, 각 복음서는 서로 연관된 책들의 앞부분에 배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복음에 대한 네 가지 증언을 더욱 풍성하게 제시하는 이 배열은 독자들이 신약 성경이 쓰여진 이유와 그 문학적 특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각각 복음서가 앞장서는 네 권의 책은 마치 십자가처럼 예수라는 중심 인물을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 책은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그의 이야기를 밝혀줍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한데 모아 맨 앞에 배치했습니다. 이 두 권은 신약 시대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다른 책들이 어느 시대에 속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바울 서신들을 집필 시기 순서대로 배열했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함께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파한 동역자였기에, 바울 서신들을 누가복음과 함께 배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으로는 마태복음이 나오고,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두 권이 이어지는데, 이 책들 역시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던 유대인들에게 보내진 책들이다.
그다음은 마가복음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마가복음이 베드로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서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베드로의 서신과 함께 실제로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라고 믿습니다.) 이 그룹에는 베드로의 두 번째 서신과 유사한 유다서도 포함됩니다. 마지막 그룹은 요한복음으로 시작하는데,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삶의 의미에 대한 성숙한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에 복음서들 중 마지막에 오는 것이 적절합니다. 요한복음 다음에는 요한의 서신들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은 문학적 유형과 관점이 독특하고, 모든 피조물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실현될지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 따로 배치하는 것이 적절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ue, 29 Sep 2026 14:05: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I was happy because I felt like I had finally found a small group where I belonged.]]></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84]]></link>
			<description><![CDATA[어제 세번째 Median All Age Co-ed Bible Fellowship Group에 참석을 했다. 15-20명, 30대 부부로부터 60대에 이르는 연령층의 교인들이 모여 진지하게 성경에 대해 얘기하니 나도 미리 성경을 몇번 읽으면서 준비를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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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일때마다 성경 discussion을 인도하는 리더가 바뀌고 동양인도 나와 아내를 포함해 5명 정도 있었다. 교인들의 옷차림은 평범했고 양복을 입은 사람은 없었고 기대와 다르게 BFG에서는 가깝게 교제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여겨졌다.
이제 FBCW에 참석한지 두달이 되는데 아직도 서로 가깝게 사귀는 친구가 없어서 유일한 한인남자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원하는 것 같지 않아 포기했다. 아내는 “한인교회가 싫어서 미국인교회 다니는데 다시 한국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겠어?“라고 말했다.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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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 이어 예배는 3부에 참석했는데 예배실로 들어가는 문에 서서 인사하는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미국인이고 아내는 한국인이었다. 아내가 그에게 쎌그룹에 대해서 묻고 드디어 내일 소그룹에 참석하게 되었다. 모임에는 두주마다 모이고 3-4부부가 참석한다고 들었고 한인교회처럼 음식을 같이 먹고 모임을 각각 돌아가면서 한다고 했다. 드디어 소속되는 그룹을 찾은 것 같아서 기뻤다.

한인교회와 다르게 FBCW 미국인교회는 목사가 교인들과 다르지않게 평범하게 옷을 입는다. 목사는 주일예배에서 설교를 하지만 소그룹에는 목사 장로 집사가 아니더라도 등록교인이면 인도할 수 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가 다시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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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Cornerstone Chapel에서는 Pastor Gary가 Senator Hawley를 주일 예배에 초청을 해서 그가 설교를 했다. 난 그가 교회목사였는지 찾아보았는데 그냥 교인이었던 것을 발견하고 또 놀랐다. 보통 목사들보다 설교를 잘했기 때문이다.

Pastor. Gary는 Hawley에게 만약 senator를 그만두고 job을 찾으면 application을 내라고 농담을 했다. Hawley는 크리스챤들의 새로운 revolution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교인들은 기립 박수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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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Gary는 Hawley의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해주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의 Pastor. Gary가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한인교회에서 주일 예배때 목사가 만약 청바지를 입고 강단에서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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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않은 평범한 옷을 입었었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가운인지 그들의 제복?을 입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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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들은 God을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님자는 존경을 표할때 부르는 말인데 하나밖에 없다해서 ’하나‘라고 하고 뒤에 붙인 님자는 합하여 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예수는 신약 성경의 Ἰησοῦς(이에수스)라는 이름으로 변형되고 발음이 되어 한국어의 ‘예수’에 가깝다. 우리가 Jesus라고 여기서 부르듯이 예수라고 분리해서 부를 수 있지만 역시 한국인들은 존경의 표시로 ‘예수님’을 한 단어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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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사람들은 ‘목사‘라고 부르지않고 ‘목사님‘이라고 부르고 교회건물 강단에 선 목사들도 자기들을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특이 하다.  마치 님자가 목사에 붙어 완전히 ‘하나님’이나 ‘예수님’처럼 한 단어가 된 것 같이 말이다.
나는 목사를 만나 마주하게되면 님자를 붙이지만 그냥 목사라고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cell phone에서도 ‘목사‘라고 쓰면 틀렸다고 ‘목사님‘으로 바꾸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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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목사님‘을 예수님같은 단어로 통해지는데 무리가 없는 것 같다. 교인들이 목사에게 영적인 것을 맡기고 세계 여러 나라의 국민들 중 종교를 삶의 의미로 꼽은 한국인은 1%이었으니 말이다. 종교가 없는 일본은 0%였으니 일본과 실지로 크게 다르지않다는 말이다.

1%라는 말은 대부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종교생활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성경을 읽지않고 기도도 하지않고 물론 크리스챤으로서의 지킬 것은 뒷전에 놓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 다음일 지 모르는 목사님에게 축복기도를 받으려하고 복을 받기 위해 교회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사람들이 부르는 ‘목사님’이 인격적으로나 삶으로 또 성경을 가르치는 것으로 존경을 받는다면 나도 아무 저항없이 ‘목사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얼마전 들었는데 NC에서 목회한다는 젊은 한인목사가 어느 교인이 백만불 헌금을 하자 들고 도망쳤다고 들었다. Maryland의 어느 지역에 교회 목사로 있다고 들은 고등학교 동창은 사업을 하다가 망하게 되자 동창친구를 유혹해 투자하게 하고는 정리하고 도망쳐 미국에 와서 목회를 한다고 들었다. 인쇄소를 하는 한 친구는 목사들이 인쇄를 하고는 75%가 pay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 있는 한인교회들 목사들을 보면 박사학위논문을 다른 사람것을 copy한 것이 들어나자 그것을 지적한 교인들과 싸워서 그들을 쫒아 낸 목사가 있고, 미국인교회를 빌려서 쓰고는 돈을 내지않아 미국인들에게 격분을 산 목사가 뻐졌이 교회간판을 내걸고 있기도 하다. 주위에는 목사가 되지않을 사람들이 할 일을 찾지 못해서인지 목사가 된 사람들이 꽤 되는 것 같다. 차라리 평신도가 더 낫다고 생각되기에 난 목사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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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내일 저녁 모임때 가져갈 음식을 준비한다고 한다. Potlock으로 각각 음식을 준비해 같이 식사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나이에 여러가지를 다 냉철히 보고 마침내 Home Church를 찾은 것 같다. 내일 모임때 얘기할 성경구절을 다시 찾아봐 준비해야 할 것 같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ue, 29 Sep 2026 02:00:0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Too wrap my mind around it]]></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83]]></link>
			<description><![CDATA[<p class="p1"><span class="s1">"To wrap my mind around it" is an informal phrase that means to fully understand, comprehend, or accept something complex, overwhelming, or surprising.</span></p>]]></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Sat, 26 Sep 2026 21:25:3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6"><![CDATA[오늘 배운 영어문장]]></category>
		</item>
				<item>
			<title><![CDATA[Taming the Tongue]]></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82]]></link>
			<description><![CDATA[나는 평소에 욕을 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목사여서 욕하는 소리를 듣지 못해서인 것 같다. 집에서 욕을 하지 않으니 아들들도 거의 욕을 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일로 격한 감정이 일때는 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난 차운전하면서는 앞차나 옆차나 교통법규를 잘 지키지않거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않고 무례히 운전할 때 욕을 하지 않지만 “Stupid!”라고 자주 말하고는 한다.

언젠가 intersection에서 교통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 빠르게 섰는데 내 뒤에서 운전하던 차가 뒤에 급정거를 해야 했는데 옆으로 속력을 내리지않고 차선을 바꾸어 빨간불에 교차로를 지나가면서 나를 보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여 난 양쪽 손의 손가락을 들어 보인 적이 있다. 아마 그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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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 운전할 때는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지만 옆에 아내가 타있으면 말이 많다. “목사의 아들이 그러면 되느냐?” “같이 못타겠다.” “머리가 아프다!”…
해서 나는 “화날 때 참으면 몸에 좋지않다.“고 말하고는 했지만 고쳐야 겠다고 생각을 한다. 그냥 혼자 소리가 나오지않게 중얼거리거나 아버지가 힘들때 찬송가를 불렀듯이 나도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가 십자가 위에 달릴 때…”를 부를 생각도 하고 있다.

<strong>마침 어제 읽은 한 여자 Jessica Reed의 고백을 글로 읽고 그녀가 해결했던 언어를 배우고자 한다.</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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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여름, 뉴욕주 북부의 작은 마을 월턴에서 열린 교회 포트럭(각자 음식을 가져와 나누는 식사 모임)에 늦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난감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집에서 직접 만든 버섯 수프를 깜빡하고 빈손으로 나타난 것 또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순간은 음식 테이블 위에 놓인 슬로우 쿠커(Crock-Pot)의 뚜껑을 열었을 때 찾아왔다. 뚜껑을 여는 순간 뜨거운 김이 확 뿜어져 나오면서 내 팔을 데고 만 것이다.
"&amp;$*#!" 나는 비명을 지르듯 내뱉었다.
나는 황급히 뚜껑을 닫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 내 말을 듣지는 않았는지 살폈다.

폴 목사님이 눈썹을 치켜올리는 모습을 보니 그분이 내 말을 분명히 들은 게 확실했고,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민망함에 몸을 움츠렸다. 다행히 목사님의 표정은 온화했고, 별다른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적어도 내 딸 윌로우와 아들 리버가 그 볼썽사나운 욕설을 목격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두 아이는 이미 성인이 되어 최근 집을 떠나 독립한 상태였다. 지난번 리버가 집에 왔을 때 내가 몇 차례 욕을 하는 걸 듣고는 욕을 좀 그만하라고 부탁하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쉽게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이 텅 비어 있고 닥스훈트 종인 반려견 '제로' 외에는 아무도 내 말을 듣는 사람이 없다 보니 욕을 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이제는 그게 습관이 되어버린 듯했다.
정말이지 끔찍한 습관이었다. 나는 접시에 음식을 마저 담은 뒤 혼자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더 이상 입맛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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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엉망진창이 된 포트럭 파티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작가로서 나는 신이 내게 '말'이라는 선물을 주셨다고 느낀다. 분명 그분은 내가 그 선물을 함부로 더럽히는 방식을 달가워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내 혀를 다스리겠다고 다짐했다.
교회 포트럭 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로'의 먹이를 사려고 슈퍼마켓에 들렀다. 반려동물 사료 코너에서 낯익은 한 여성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원래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가벼운 잡담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 여성이 말을 걸어오자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 걸음 더 다가오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뒤에 쌓여 있던 진열대를 들이받고 말았다. 개 사료 캔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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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 나는 소리를 질렀다.
쇼핑하던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급히 캔들을 주워 담은 뒤 원래의 피라미드 모양으로 다시 쌓으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상대방 여성이 도와주려 했지만, 나는 창피한 마음에 그저 그녀가 가버렸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혀를 다스리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았다!
집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나는 캣스킬(Catskills) 지역의 이 작은 마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해보았다. 25년도 더 전에 전 남편과 나는 뉴욕시를 떠나 이곳으로 이사했다. 삶이 느긋하고 평화로운 곳, 아이들이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작은 공동체에서 돋보이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곳, 그리고 모두가 서로의 이름을 아는 그런 곳을 원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모두가 서로의 사생활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단점도 있다. 대도시의 익명성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달리, 작은 마을에서 저지른 실수는 사람들의 기억에 훨씬 더 오래 남기 마련이다.
이곳 월턴(Walton)에서 나는 진지하고 차분하며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비치길 원했다. 사람들은 아이를 돌보거나 반려동물을 봐달라고 내게 믿고 맡기곤 했다. 나는 지역 도서관 이사회에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는 내게 매우 소중한 역할이었다.
그런데 하루에 두 번이나 공공장소에서 욕설을 내뱉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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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지만, 내 앞차 운전자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amp;$*#! 초록불이면 가야지!" 나는 소리쳤다. 비록 그 운전자는 내 말을 들을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또 실패하고 말았네요!

안타깝게도 요즘은 공공장소에서 욕설을 하는 일이 흔해졌지만, 나는 내 입에서 욕이 나오는 걸 멈추고 싶었다. 그런데 왜 그게 잘 안 됐을까? 스스로에게 '넌 필터가 없어'라고 말하곤 했다.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툭 튀어나오니까.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내 입이 나의 적이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도서관 이사회 회의나 아이를 돌볼 때는 욕을 하지 않고 잘 참아냈던 기억이 났다. 어쩌면 내게도 필터가 있어서, 말이 튀어나오기 직전 찰나의 순간에 단어를 바꿀 기회가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집에 오자마자 관련 성경 구절을 찾아보았는데,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발견했다. 잠언 15장 4절 말씀이었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한다." 욕설에 관한 구절보다 은혜에 관한 구절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도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께서 내 나쁜 버릇에 대해 은혜를 베푸실 수 있다면, 나 또한 나자신에게 약간의 은혜를 베풀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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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나는 내게 정말로 필터가 있다는 가설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새끼발가락을 찧었을 때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다른 말로 바꿔 보았습니다. "위대한 개츠비(Great Gatsby)!"라고 소리쳤다.
연습을 좀 하다 보니 충격적인 욕설들이 무해한 말로,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재미있는 말로 바뀌었다. "예수님 맙소사(Jesus #%*$@!)"는 "예수님은 구원자(Jesus saves)"로 바뀌었고, "세상에(Holy &amp;$*#!)"는 "구멍 난 양말(Holey socks)!"이나 "홀리 과카몰리(Holy guacamole)!"가 되었다. 말하기 전에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던 욕설 대신 엉뚱한 노래나 책 제목, 음식 이름, 심지어 유명인 이름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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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나게 운전하는 사람에게 "제한 속도는 55야,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라고 소리치거나,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덩어리 땅콩버터(Chunky peanut butter)!"라고 외치는 식이었다. 다음에 윌로우와 리버가 놀러 왔을 때, 아이들은 제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음엔 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다음에 무슨 말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아이들도 동참해서, 평소라면 거친 말이 튀어나왔을 순간에 자신들만의 엉뚱한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디서 그런 욕을 배웠나 싶었지만, 역시 '그 부모에 그 자식'인가 보다. 우리는 금세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받은 '말의 재능'을 그토록 기발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도 함께 웃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오래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이라,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이면 가끔씩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이 제게 베풀어주는 너그러움을 나 자신에게도 허락한다.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굳이 완벽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오래전 김상복목사가 이 근처에 계실때 그의 얘기가 생각난다. 그는 딸에게 누가 뭐라고 하든지 나쁘게 말하면 “But I like you!“라고 말하라고 가르치면 연습을 하게 훈련까지 시켰다고 한다. 언젠가 딸이 학교에서 어떤 이유인지 한 여학생이 그녀에게 화가 나서 ”I hate you!”라고 했을때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But I like you!”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주위의 그 광경을 보던 떠들썩하던 학생들이 조용해졌다고 한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Fri, 25 Sep 2026 13:43: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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