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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JAMES PAGE</title>
		<link>https://jamespage.org</link>
		<description>My WordPress Blog</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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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Stay put]]></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55]]></link>
			<description><![CDATA["Stay put" means to remain in the same position or place without moving. It often implies staying where you are, whether it's physically or in a situation, rather than going somewhere else. This phrase can be used in various contexts, such as when asking someone to not leave a location or when advising someone to maintain their current course of action.

If you have a specific context in mind, feel free to share!]]></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ue, 04 Aug 2026 21:57: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6"><![CDATA[오늘 배운 영어문장]]></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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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A ship anchored in the harbor is safe. But that i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54]]></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608/6a71e6c4995275554375.jpeg" alt="" />

아침이 되면 deck에 나가서 참외를 심은 화분에 물을 준다. 여름을 지나면서 한창 자라던 참외 plant는 이제 Melon을 나무 가지에 열게 하고는 기진 맥진해지는 것 같이 잎들이 시들 시들해지고 있다. Melon색갈이 녹색에서 노랗게 변해 딸수 있는데 기온이 더 내려가는 가을에 가까이 되면 참외는 그의 사명을 다해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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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때 쎌폰을 멀리 두니 눈이 감기기전에 책을 볼 수밖에 없다. 해서 Guide Post를 읽게 되는데 어제 읽은 ‘Sail’이라는 글이 마음에 닿았다.

<strong>‘항해‘</strong>
<strong>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strong>
<strong>하지만 배는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strong> (John A. She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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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부모님께서 내가 미시간 호수의 반짝이는 물결을 누비며 탐험할 수 있도록 작은 요트를 한 척 사주셨다. 항해는 짜릿한 즐거움을 주었지만, 동시에 위험도 따랐다. 때로는 방향을 전환(tacking)하다가 붐(boom)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고, 바람이 멈추면 키(tiller)를 힘껏 움직여야 했으며, 메인 세일(mainsail)을 너무 팽팽하게 당겨 배가 뒤집히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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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안전한 해변에 배를 그냥 두어두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배의 본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배는 항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때때로 나는 마음속에서 어떤 목적의식이 일렁이는 것을 느낀다. 마치 바람이 내 마음의 돛을 잡아당기며 안전한 곳을 떠나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라고 부추기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저 해변에 앉아 구경만 하라고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니다. 내면에서 더 큰 목적을 발견한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돛을 올려 항해를 시작해야한다. -Kate Riet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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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까지 작은 보트를 4번째 가지고 있다. 젊었을 때와 다르게 자주 강에 나가지 못하는데 항상 나갈 준비는 되어있다. 내 보트는 Sail boat가 아닌 out board engine을 가지고 있는데 차로 끌고 나가 강에 내려놓으면서 전에 말못할 고생도 많이 하고는 했다. 그냥 차고에 넣고 놔두는 것이 편리하기는 하다.
하지만 강에 가지고 나가 물위에 띄우고 물위를 달리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나기도 한다.

배의 목적이 항구에 세워놓는 것이 아니라 항해하는 목적이라면 나의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에게는 배를 세워둘 항구를 찾기 위해 항해를 계속 한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것이다. 다니는 항구마다 나름대로 좋고 편한점이 있지만 다시 항해를 해야하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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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하나의 항구는 home church이라 말할 수 있다. 마치 성경속에 오케스트라처럼 악기가 잘 연주되어 조화된 화음을 내는 곳을 찾았다.
지난 두달 이상 다닌 OBC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들중에 하나가 되려고 했었다. 하지만 한인교회와 같이 작은 교회에서 그들은 나를 형제라고 했지만 그들속에 들어가기가 쉽지않았다.

교회청소하는 날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를 가져가 도왔고, 애기를 낳은 한 가정에 선물을 주었고, 감기가 들린 여자교인집에 과일을 사 전해 주었고, 집에 수도관이 잘못되어 고생하는 교인 부부를 집에 초청해 식사했고, 예배시간 같이 앉는 Jim부부를 집에 초청해 식사했다. 한번도 빠짐없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4번의 멤버쉽 공부를 하고는 아내가 멤버신청서를 보냈는데 교회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나와 아내가 한 노력에 비해 한 한인부부를 빼놓고 한명과도 전화번호를 교환한 교인이 없었다. 결국 OBC가 아시아인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구나 판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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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유일하게 나와 아내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집에 초청해준 J에게 나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지난 주일 다른 한 교회를 찾아갔다.
집에서 5마일정도 되는 곳에 있는 1st Baptist Church of Woodbridge였다. 150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 역사속에 한인목사가 담임인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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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교회에 e메일로 두가지를 물었다. 주일예배때 복장을 어떻게 입는지? 그리고 아시아인으로 교회에 적응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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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받았다. 해서 8:30 주일 예배에 참석을 했는데 OBC처럼 작은 교회가 아니었다. 그리고 제일 처음 만난 여자가 참 친절히 교회에 대해 얘기해 주고 안내여자에게 소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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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 예배는 전통예배라 성가대가 있었고 한인여자가 보였다. 그리고 목사의 설교도 괜찮았다.
예배가 끝나고 lobby에 나오니 한인남자를 만났다. 아마 내 e메일을 받은 여자가 얘기했던 것 같았다. 그와 얘기하고는 한인여자 5명이 모여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아 다가 가서는 얘기하고 아내는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그 여자들은 남편이 미국인들이라고 들었다.
다음 주일에는 8:30분 예배에 참석하고 10시 예배때 찬양순서만 참석하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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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l boat를 한 항구에 정착하고 있으면 편한 것은 있다. 하지만 물결을 무서워하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니 더 나은 항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인교회는 한인교회와 다르게 주중에 예배니 기도 모임이 없다. 쎌모임은 주중에 있으나 성경공부모임은 대부분 주일에 있다.
OBC의 J에게 다른교회에 가지만 교제는 앞으로도 계속하자고 말했고 그도 동의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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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또 하나의 항구는 창조성이 없이 있는 그대로 가지고 있는 그대로 편하게 살려는 것이다. Sail boat로 계속 항해하려면 더 배우겠다는 마음과 정성 노력 훈련이 있어야 한다. 취미생활로 정착할 수없다. 많은 노년의 한인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즐기는 골프 낚시 여행으로 세월을 보낸다. 나에게는 보트가 있고 RV도 있다. 나도 남들처럼 그것들을 가지고 남은 세월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예수를 믿기에 무엇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웃인 John과 Kevin에게 시간이 되면 각자 식사후 만나 교제하자고 말했다. 이웃들과의 만남을 계획하고 앞으로 새로 다니는 교회에 정착하기 위해서 더 노력을 해야한다. 얼마전 미국의 국가를 외웠는데 더 영어공부를 해서 미국인들에게 나의 생각과 의사를 말하는데 지장이 없어야 하고 계속 책을 읽고 더 나은 글을 쓰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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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strong>
<strong>(1 Thessalonians 4:17)</strong>

작년 조사에 의하면 전 세계 기독교인 7명 중 1명꼴(약 3억 8,800만 명)이 심각하거나 극심한 수준의 박해와 차별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 기독교인 인구의 약 14%에 해당한다. 아프리카(5명 중 1명)나 아시아(5명 중 2명)와 같은 지역에서는 그 비율이 훨씬 더 높다고 한다. 이미 크리스쳔들의 박해는 시작된지 오래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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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박해는 지금 없다. 하지만 내가 정착할 항구가 정해졌다고 해도 난 앞으로도 다가올 풍랑속에 항해는 계속되어야 한다. 멀지않은 날 성경말씀대로 rapture가 있을 것이다. 믿는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사라진 미국은 혼란속에 빠져 더이상 super power 가 되지 못하고 세계는 미국없이 마침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ue, 04 Aug 2026 13:19:4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Since I retired, honestly, I wanted to find a volunteer group and find another job]]></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52]]></link>
			<description><![CDATA[Occoquan Bible Church에 다닌지 두달이 넘고 한인교회를 떠난지는 2년이 넘는 것 같다. 아직 주일 아침에 Cornerstone Chapel의 예배는 online으로 본다.

OBC에 처음 다니기 시작할때 난 OBC를 Home church로 생각을 했다. 해서 목사와 얘기해서 membership 을 가지는 것도 생각해 4번의 class도 참석해 마쳤다. OBC는 주차장에서부터 성경적이고 정치 사회에 무관심하지않고 무엇보다 교회당이 집에서 3마일안에 있으니 교회에서 하는 선교일에 참석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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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OBC를 알게 되면서 몇가지 결핍된 것들이 보인다. 지역사회를 향한 선교 봉사가 없다. 그리고 주로 백인들이라 동양인으로 적응하기가 쉽지않다. 다시 말하면 동양인이나 흑인 백인이 아닌 인종의 사람들이 이 교회에 다니면 그들은 사랑이 없다는 말로 떠나기가 쉬울 거라 생각한다.
물론 교회안에 확실히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교인들이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았지만 외면당하는 사람에게는 approach하지 않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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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retire를 했기에 솔직히 봉사단체를 찾아 또 다른 job을 가지기 원했다. 해서 한달전부터 다른 교회에서 하는 Lord’s Pantry라고 이름한 곳에 가서 매달 첫 토요일 그리고 세번째 목요일에 가서 봉사를 한다.
솔직히 난 동양사람들이 여럿 있는 교회를 찾아 다니고 싶다. 일본 사람이나 중국사람이 있으면 좀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기에 말이다.
지금 당장 교회를 옮길 생각은 없지만 만약 다른 교회를 찾는다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을 찾을 것이다. 30-40분 운전하는 곳에 있는 교회는 가고 싶지않다. 특히 한인교회는 여러면으로 보아 단체같이 생각되기에 가고 싶지않다.

가끔 YouTube로 여러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 한국인목사는 옥한흠목사의 설교가 좋다고 생각한다. 며칠전 이재철목사 설교를 들었는데 그는 “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챤들이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난 그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다 크리스챤으로 부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Churchgoer(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크리스챤‘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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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다니는 사람(churchgoer)'은 단순히 습관, 전통 또는 사회적 의무감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는 반면 '그리스도인(Christian)'은 개인적인 영적 변화를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분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대부분 한인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통계조사에 의하면 75%이상이 churchgoer들이다. 그들은 교회밖에서 성경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들중에는 돈과 God을 같이 섬기는 사람들이 많다.
난 교회에 다닌다면서 정치적으로 민주당에 속해 있다는 사람들은 분명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믿는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support하고 God이 미국을 통치하기를 원하고 실천하는 President Trump를 욕하는 사람은 아주 모르거나 분명 churchgoer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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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낙태하다 실패해 엄마 몸밖에 살아 나온 애기를 그냥 죽이자고 한다.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남자가 여자와 무엇이 다른지 말도 못한다. Gender가 47개라고 말한다.
이제 미국의 민주당은 공산당으로 바뀌어지고 있다. 민주당원들은 이제 52:43으로 공산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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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Speaker Mike Johnson M은 말한다.</strong>

<strong>“민주당 사회주의자들은 상원, 대통령직, 대법원, 그리고 이민 단속을 폐지하겠다고 합니다. 국경을 활짝 열고, 대규모 사면을 실시하며, 국방부(펜타곤)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합니다.”</strong>
<strong>“야만인들이 이미 성문 안으로 들이닥쳤는데, 민주당은 그들을 환영하며 맞아들이고 있습니다!</strong>
<strong>공산주의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눈앞, 우리 땅에 닥쳐와 있습니다!</strong>
<strong>이제 이것은 단순한 '상식 대 광기'의 대결이 아닙니다. ‘상식 대 공산주의'의 대결입니다.”</strong>

<strong>민주당원인 U.S. Senator John Fetterman은 민주사회주의자(DSA)들은 다음의 기관들의 폐지 주장했다고 말했다. </strong>
<strong>• 상원</strong>
<strong>• 국방부</strong>
<strong>• 대통령직</strong>
<strong>• 교도소</strong>
<strong>“이것은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는 '빅 텐트(big tent)'가 아니라 무정부 상태일 뿐입니다.</strong>
<strong>왜 민주당은 DSA의 이러한 주장을 비판하지 못하는 것입니까?”라고 말한다.</strong>

한국은 어떤가? 지난 주일 만난 한 친구는 이미 한국은 socialism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부정선거에 맛들인 민주당이 앞으로 계속 한국의 정치를 잡고 그들을 비판하는 세력을 잡아 감옥에 쳐 넣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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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민주당 사회주의자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 뉴욕 city의 mayor Zohran Mamdani, 시애틀의 mayor Barrett Wilson…공짜를 좋아하는 근성이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많으니 그들이 권력을 잡게 되었다. 결국 시애틀과 뉴욕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exodus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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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기전과 아침에 일어나기전에 Randy의 ‘Last Lecture’를 읽는다.

Randy는 췌장암으로 수술을 하게 되었는때 종양뿐만 아니라 담낭, 췌장의 3분의 1, 위장의 3분의 1, 그리고 1미터 이상 길이의 소장까지 절제하고 휴스턴에 있는 MD 앤더슨 암 센터에서 두 달 동안 머물며 강력한 고용량 항암 치료와 함께 매일 복부 고선량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는 병원 문을 나서며 아내와 워터파크에 가서 스피드 슬라이드를 탄 직후의 그 벅찬 기분 속에서 아내 자이(Jai)에게 건넸던 말을 떠올렸다.

<strong>"내일 검사 결과가 나쁘게 나온다 해도,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 너와 함께 살아 숨 쉬며 여기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검사 결과가 어떻든, 그 소식을 듣는다고 해서 내가 당장 죽는 건 아니잖아. 그다음 날도, 그 다음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죽지 않을 거야. 그러니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은 정말 멋진 날이야. 그리고 내가 이 시간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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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 이른 아침에 Lord’s Pantry에 봉사하러 간다. 벌써 3번 참석했으니 세월이 빠르다.

아직 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아내는 이미 여러 사람들과 친해진 것 같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hu, 30 Jul 2026 17:25: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I started memorizing and singing the U.S. national anthem last week.]]></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51]]></link>
			<description><![CDATA[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미국에는 전과 다르게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Southern Border가 다시 세워지고 불법이민자들이 미국을 떠나게 되고 전국에 만연하던 범죄집단들 마약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무역의 균형을 잡기 위해 힘쓰게 되고, 정부의 낭비를 잡고 기독교국가로 다시 거듭나게 되고 세계적으로는 다시 리더쉽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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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미국민으로 볼때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속에 미국을 비판하는 나라들이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 미국을 위해서 때로 문을 닫으려고 하지만 그들에게 불이익이 따르니 싫은 것이다.
난 만약 미국이 없었다면 세계가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생각했다. 제1차 2차 대전은 어떻게 끝났을까? 일본이 미국에 항복했기에 한국에 광복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앞으로 미국이 없어진다면 세계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보지 못한다. 단지 자기만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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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많은 나라에서 이민온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다. 영국에서 온 사람들이 영국을 상대로 싸워서 독립을 쟁취했을때 그들은 그들이 태어나 자란 영국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미국인이 된 것이다.
25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의 미국…백인들이 주로 인구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창조주 God이 미국을 통해 섭리하시기에 미국에 이민와 시민이 된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미국이 되는 것이다.
마치 미국에 시집왔기에 미국이 내 나라가 되었고 아직도 미국이 완전하기에는 멀기에 미국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계속 돌을 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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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난 주부터 미국의 국가를 외워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NFL game이나 행사때 부르는 Star Spangled Banner의 가사를 난 전혀 따라 하지 못했다. 이제 절반을 외웠는데 나머지도 외우면 국가가 연주될때 같이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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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의 국가의 가사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찾아 보았다. 내용을 알고 나니 감동적이었다. 영국군들의 포격을 밤새 맞은 볼티모어…화염속에서 밤이 가고 동이 트면서 굳건히 서있는 국기를 보는 <span class="s1">미국의 변호사 ‘프랜시스 스콧 키‘를 </span>생각한다.

Star Spangled Banner가 쓰여진 역사를 살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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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여름, 신생 국가 미국은 2년간 영국과의 전쟁을 치렀다. 당시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에 집중하고 있었으나,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인 1814년 8월, 영국 함대는 체서피크 만을 거슬러 올라가 워싱턴 D.C.를 공격하고 대통령 관저, 국회의사당 등 공공 건물들을 방화했다.

매디슨 대통령은 피신하였고, 정부는 분산되었다. 영국군의 다음 목표는 북쪽으로 40마일 떨어진 항구 도시 볼티모어였다. 볼티모어는 영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으며, 전쟁 기간 동안 영국 측에 협력했던 미국의 고속 함선들이 정박해 있는 곳이었다. 볼티모어 앞바다에는 맥헨리 요새가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위에는 깃발이 게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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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요새 사령관 조지 암스테드 소령은 영국군이 원거리에서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대형 깃발 제작을 지시했다. 이 임무는 볼티모어 출신의 과부이자 전문 깃발 제작자인 메리 피커스빌에게 위임되었다. 그녀는 폭풍우용 소형 깃발과 별 15개와 줄무늬 15개를 상징하는 대형 주둔군 깃발, 총 두 개의 깃발을 제작했다.

미연방의 주를 상징하는 대형 깃발은 높이 30피트, 길이 42피트에 달하며, 수 마일 떨어진 해상에서도 식별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 1814년 9월 13일, 맥헨리 요새를 방어하던 이 웅장한 수비대 깃발은 비가 내리는 날씨로 인해 소형 폭풍우용 깃발로 교체되었으며, 대형 깃발은 접힌 상태로 보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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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30분경, 영국 함대는 포격을 개시했다. 이는 공정한 전투가 아니었다. 영국군은 함선을 2마일 떨어진 지점에 정박시켜 요새의 사정거리 밖에서 포격을 가했다. 테러, 볼케이노, 데버스테이션 등의 명칭을 가진 폭격선과 속이 빈 철제 스쿠터(일부는 무게가 200파운드에 달함)를 사용하여 박격포탄과 화약으로 가득 찬 스쿠터를 요새 상공으로 발사했다. 또한, 로켓선을 동원하여 붉은 불꽃을 방출하는 콘크리트 로켓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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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헨리 요새에는 암스테드 소령 지휘 하에 1,000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발사된 포탄이 목표물을 명중시키지 못하고 수면에 낙하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절망에 빠졌다.

적군은 요새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위치하여 공격이 불가능했고, 암스테드 소령은 무자비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반격을 가할 수 없어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이때 영국군의 포탄이 요새 화약고 지붕을 관통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백 개의 화약통이 보관된 화약고에 포탄이 폭발했다면 맥헨리 요새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었다. 그러나 포탄은 폭발하지 않았고, 어떠한 전략적 개입이나 인간의 노력 없이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 요새는 여전히 건재한 상태였다.

오후 하늘이 어두워지고 아침부터 내릴 듯 말 듯하던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포격은 중단되지 않았다. 빗물에 젖고 포격에 시달리며 어둠 속에서 휘날리는 작은 폭풍우 깃발은 이러한 극한의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최강의 해군의 맹렬한 공격을 견뎌냈음에도 불구하고, 깃발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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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폭발의 섬광만이 어둠을 갈라놓았고, 하늘 전체는 불타는 폭풍우처럼 밝게 빛났다. 굉음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마치 지옥의 문이 활짝 열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끝없는 밤 동안 세사람은 요새를 향해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포탄이 폭발할 때마다 붉은 섬광이 0.5초 동안 번쩍일 때마다 그들은 오직 한 가지,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만을 확인했다. 깃발이 여전히 휘날리는 한 요새는 항복하지 않은 것과 같았고, 볼티모어는 여전히 건재하며 희망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둠 속에서 갑판 위에서는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었다. “아직도 보이나?”라는 질문은 새벽녘 총소리가 멈출 때까지 반복되었다. 침묵은 오히려 더 큰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요새는 함락된 것일까? 도시는 항복한 것일까? 아니면 영국군은 단순히 철수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빛이 다시 비춰지기를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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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아침,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프랜시스 스콧 키는 맥헨리 요새를 향해 첩보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자욱한 안개와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기다렸고, 안개가 걷히자 영국군이 후퇴하는 모습을 보았다. 25시간 동안 1,800발의 포탄을 퍼부었지만 요새는 견고했고, 영국 함대는 항구 입구의 장애물 때문에 멀리서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탄약이 거의 바닥나 더 이상 공격할 수 없게 된 영국 제독은 오전 7시경 모든 계획을 취소했다. 요새는 함락되지 않았고, 볼티모어는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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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의 병사들은 젖고 낡은 폭풍 깃발을 내리고 90피트 높이의 깃대 대신 수비대를 세웠다. 피리와 북이 ‘양키 두들’을 연주하며 승리의 기쁨을 알렸다.
바로 그때,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쳐 거대한 깃발을 환하게 비췄다. 8마일 떨어진 곳에서 프랜시스 스콧 키는 그 깃발을 보았다. 망원경으로 성조기를 바라보며 성벽 위로 새벽이 밝아오는 모습을 선명하게 포착햤다. 막대한 크기의 깃발은 암스테드가 의도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워싱턴이 잿더미가 된 후, 25시간 동안의 화염 속에서, 그리고 밤새도록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던 후에도, 깃발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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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새 안에 있던 천 명의 병사 중, 그 모든 과정 동안 전사한 사람은 단 네 명뿐이었다.
변호사는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표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코트를 뒤져 편지 한 통을 찾아 펼쳤지만, 뒷면은 텅 비어 있었다.
“갑판 위에서, 눈앞에서 커다란 깃발이 여전히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떠오르는 대로 시구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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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보라, 동이 트는 이른 아침 빛 속에서</strong>
<strong>황혼의 마지막 불빛 아래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우러러보았던 것을</strong>
<strong>위태로운 전투 속에서도 성벽 위로 지켜보았던</strong>
<strong>그 넓은 줄무늬와 밝은 별들이</strong>
<strong>그토록 당당하게 휘날리던 모습을</strong>

<strong>로켓의 붉은 섬광과</strong>
<strong>공중에서 터지는 폭탄의 불꽃이</strong>
<strong>밤새도록 증명해 주었지</strong>
<strong>우리의 깃발이 여전히 그곳에 있음을</strong>
<strong>오, 말해다오, 저 별이 수놓인 깃발이 여전히 휘날리고 있는지를</strong>
<strong>자유의 땅, 용감한 이들의 고향 위로”</strong>

<span class="s1">원래 "맥헨리 요새의 방어(Defence of Fort M'Henry)"라는 제목이었던 이 시는 존 스태퍼드 스미스가 작곡한 18세기 영국 신사 클럽에서 인기 있었던 노래 "아나크레온의 노래(The Anacreontic Song)"의 곡조에 맞춰졌다. 키의 애국적인 가사는 빠르게 출판되어 널리 인기를 얻었고,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의회 결의안에 서명한 1931년 3월 3일에야 공식적으로 미국의 국가로 채택되었다.</span>]]></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ue, 28 Jul 2026 21:35:0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The girl (Mary Jones) who made the Bible accessible to people all over the world.]]></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50]]></link>
			<description><![CDATA[웨일스는 유구한 역사, 독특한 언어, 그리고 풍부한 문화를 지닌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활기 넘치는 도시, 아름다운 국립공원, 세계적으로 유명한 럭비팀, 그리고 600개가 넘는 성이 있습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단위 면적당 성의 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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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8세기 말 산업혁명이 웨일스를 휩쓸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두 개의 가내 수공업은 공장으로 대체되었고, 소규모 지역 탄광은 석탄 회사와 제철소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웨일스 시골의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 구릉과 푸른 계곡 한가운데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기독교 역사의 흐름을 바꾸게 될 인물이었습니다.

메리 존스는 1784년 12월 16일, 북웨일스의 케이드 이드리스 산기슭에 자리 잡은 작고 외딴 마을 란피항엘-이-페난트에서 태어났습니다. 메리의 아버지는 사회경제적 변혁이 심했던 시대에 생계를 위해 계란을 짜던 가난한 직공이었습니다. 메리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메리와 어머니는 작은 그레이스톤 오두막집에서 단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어린 메리는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바닥을 닦고, 닭에게 모이를 주고,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메리와 어머니는 근처 교회로 걸어갔습니다. 메리는 목사님이 읽어주는 성경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 말씀들을 마음속에 간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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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끝난 후, 메리는 조심스럽게 교회 앞쪽으로 가서 특별한 책을 살펴보곤 했습니다. 표지에는 금색으로 두 단어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메리는 목사님이 그 책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들었기에 그 단어가 '성경'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책 속의 글자들이 그녀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어떻게 사람들이 페이지 곳곳에 적힌 구불구불한 글자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메리는 간절히 글을 읽는 법을 배우고 싶었고, "직접 성경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교회에서 목사님이 마을에 학교가 문을 열릴 거라고 발표했어요. 메리는 너무 기뻤어요. 이제 교회에서 성경을 읽고 그 이상한 기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새 교장 선생님인 에반스 씨 부부는 메리의 집에서 멀지 않은 농가로 이사했습니다. 메리는 그들의 집에 방문해서 책을 구경하고 읽기 연습을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리는 유창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메리는 독서를 매우 좋아했고, 어느 일요일 아침 교회에서 "큰 성경을 읽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메리는 키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나무 상자를 깔아 그 위에 올라서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은 메리의 꿈의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소망은 자신만의 성경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이웃 중 한 분이 웨일스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분은 친절하게도 메리에게 "매주 주말마다 놀러 와서 성경을 함께 읽자"고 제안했습니다.

메리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몇몇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직접 읽어볼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했습니다.

성경은 메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왔고, 주말마다 성경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습니다. 메리는 웨일스어로 된 성경책을 꼭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성경책이 매우 비싸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당시 성경책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메리는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마을에서 푼돈을 벌기 위해 온갖 잡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느질과 수선을 하고, 닭을 키워 달걀을 팔고, 장작을 모으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들을 도왔습니다. 메리는 성경책을 사기 위해 마다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했습니다.

성경을 갖고 싶다는 그녀의 결심은 더욱 강해졌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녀는 돈을 모았고, 마침내 성경을 살 만큼 충분한 돈을 마련한 날이 왔다.

하지만 이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웨일스어 성경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사실 웨일스어 성경은 극히 드물어서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메리는 학교 선생님이 웨일스어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에반스 선생님께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에반스 선생님은 바를라라는 마을에 토마스 찰스 목사님이 계시고 그분이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바를라는 26마일, 즉 거의 4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고, 숲을 지나 바위투성이의 험한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고 계곡과 시냇물을 건너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 먼 거리를 혼자 걸어가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메리 존스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고, 그녀는 그곳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출발 전날 밤, 메리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설렘과 불안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과연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도착했을 때 성경이 아직 남아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그녀는 뒤척였다. 그렇게 그녀는 돈이 든 지갑과 빵, 치즈를 꾸러미에 넣어 맨발로 길을 나섰다.

여행 이틀째 되는 날, 메리는 언덕 꼭대기에 올라 반짝이는 린 테기드(바를라 호수) 호숫가에 자리 잡은 바를라 마을을 처음으로 마주했습니다. 새로운 기운을 얻고 가슴이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그녀는 피곤하고 아픈 발걸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당시 바를라에는 작은 신학교가 있었고, 웨일스어 성경 배포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메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곳이 웨일스 감리교 부흥 운동의 주요 인물이었던 토마스 찰스 목사의 거주지였다는 점입니다. 그는 또한 "웨일스 사람들이 성경을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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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는 여러 집의 문을 두드리고 길을 물어본 끝에 찰스 목사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길을 따라 달려가 커다란 참나무 문을 세게 두드렸습니다. 토마스 찰스 목사가 문을 열자 메리는 자신을 소개했고, 피곤함과 기쁨이 뒤섞인 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수년간 저축해 온 이야기, 글을 배우게 된 이야기, 자신만의 성경을 갖고 싶었던 간절한 소망, 그리고 마을에서 이곳까지 걸어온 긴 여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찰스 목사는 메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움과 감탄이 점점 커져갔다. 그는 어린 소녀의 헌신과 성경을 얻기 위해 기울인 노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메리에게 그녀의 여정이 헛수고였다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팔 성경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 마지막 웨일스어 성경을 팔아버렸고, 메리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일하고, 저축해 왔는데 성경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찰스 목사는 몸을 돌려 방 안에 함께 있던 친구 에드워즈 씨에게 말했습니다. "어린 소녀가 성경 한 권을 구하려고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내게는 한 권도 남김없이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게다가 구할 희망도 없습니다. 종교세 조합에서 웨일스어 성경을 더 이상 인쇄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에드워즈 씨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불쌍한 소녀에게 줄 성경이 한 권도 없다는 말입니까?" 찰스 씨는 "네, 한 권도 없습니다. 여기 두세 권 정도 있는데,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로 약속한 것들이라 제게는 더 이상 남은 게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메리의 깊은 슬픔을 본 찰스 목사는 연민에 사로잡혔고,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다른 손님을 위해 성경 한 권을 남겨두고 있었지만, 그 순간 큰 영향을 미칠 결정을 내렸습니다. 토마스 찰스는 책장으로 가서 새 웨일스어 성경을 꺼내 메리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는 메리에게 이 웨일스어 성경은 다른 사람에게 주기로 약속했지만, 빈손으로 돌려보내지는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제 축복과 함께 이 성경을 받으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손님은 영어를 읽을 수 있으니 그분에게는 다른 성경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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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한동안 성경을 응시하다가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성경을 받아 들었습니다. 슬픔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로 바뀌었고, 마리아는 소중한 책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녀는 찰스 목사에게 아낌없는 감사를 표했고, 감사와 흥분이 뒤섞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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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돌아온 메리는 영웅처럼 환영받았습니다. 그녀의 여정에 대한 소식이 마을에 퍼지자,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그토록 힘들게 얻은 성경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 후 며칠, 몇 주 동안 메리의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성경을 나누기 시작했고, 글을 읽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읽어주고 어린아이들에게 읽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성경은 더 이상 개인적인 보물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소중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한편, 바를라에서는 토마스 찰스 목사가 메리 존스와의 만남에서 받은 감동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헌신과 성경이 부족하여 빈손으로 돌아갈 뻔했던 그녀의 상황이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는 웨일스뿐 아니라 영국 전역, 나아가 그 너머까지 저렴한 성경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찰스는 동료들과 종교 모임에서 메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성경 보급 확대의 절박한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성경을 얻기 위해 먼 길을 걸어간 어린 소녀의 이야기는 새로운 계획을 추진하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1802년 12월, 찰스는 작은 자원 봉사 단체인 종교세 협회 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으로 갔습니다. 이 회의에서 그는 다시 한번 메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조셉 휴즈 목사는 메리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찰스 씨, 당신의 호소는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어린 소녀의 이야기는 가슴 아프고, 그 이야기는 온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그런 목적을 위한 단체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웨일스를 위해 그런 단체를 만들 수 있다면, 영국 전체를 위해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영국 전체를 위해서라면, 전 세계를 위해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은 일련의 논의를 촉발시켰고, 결국 그 지역을 위한 새로운 조직의 결성으로 이어졌습니다다.

저렴한 성경 보급의 시작. 1804년 3월 7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자의 언어로 성경을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국해외성서공회가 런던에 설립되었습니다. 성서공회의 설립은 기독교 선교와 성경 번역 역사에 있어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교파의 사람들이 성경 전파라는 목표 아래 하나로 뭉쳤으며, 이는 세계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마을로 돌아온 메리 존스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파급 효과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 수백만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운동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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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는 후에 토마스 존스라는 직조공과 결혼하여 해안에 더 가까운 브린 크루그 마을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메리는 1864년에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고향인 란피항엘-이-페난트의 브린 크루그 감리교 예배당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녀의 오두막이 있던 자리에는 "초원의 집, 메리 존스의 집"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중앙에는 메리 존스를 기리는 기념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으며, 비문과 펼쳐진 성경이 함께 있습니다. 비문은 웨일스어와 영어로 쓰여 있습니다.

1800년, 16세의 나이에 메리 존스가 이곳에서 바를라까지 걸어가 토마스 찰스 목사에게 웨일스어 성경을 구해 온 일을 기리며. 이 사건은 메리오네스 주일학교들이 설립한 대영해외성서공회의 탄생 계기가 되었습니다. 토마스 찰스 목사는 메리에게 두 권의 성경을 더 구해 주었는데, 그것들은 1799년 옥스퍼드에서 인쇄된 웨일스어 원본 성경이었습니다. 이 웨일스어 성경은 단 1만 부만 인쇄되었습니다.

영국 성서공회의 설립 이야기는 메리 존스라는 굳은 의지를 가진 웨일스 소녀, 조셉 휴즈라는 선견지명이 있는 웨일스 목사, 그리고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영국 국회의원이라는 세 명의 주목할 만한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1804년 3월 7일, 런던 비숍스게이트의 한 술집에서 윌버포스와 클래펌 교파의 다른 사회 개혁가들은 영국 해외 성서공회를 설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에 성경을 인쇄하고 배포하기 위해 700파운드를 모금했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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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마리아가 바를라로 순례길에 올랐을 당시 성경은 67개 언어로만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불과 100년 후인 1900년에는 524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오늘날에는 736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성경은 역사상 그 어떤 책보다도 많이 팔리고, 금지되고, 불태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세계 100대 필독서 목록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50억 권 이상의 성경이 인쇄되고 판매되었습니다. 매년 1억 권이 판매되고 디지털 성경은 5억 회 이상 다운로드되었지만, 이것이 곧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도 이 놀라운 책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모든 비판자들을 이겨내고, 수 세기 동안의 금기를 견뎌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켰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ue, 28 Jul 2026 15:52:3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7"><![CDATA[자료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Yesterday, I read a book by a professor named Randy Pausch titled "The Last Lecture."]]></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49]]></link>
			<description><![CDATA[매일 저녁식사를 하고 family room에 있다가 이층으로 휴대폰을 놓고 잠자러 올라간지 한달이 되어 온다. 가끔 아침 일찍 깨고는 cell phone으로 글을 만들고는 했는데 노트북을 잠자리 옆에 넣고 펜으로 글을 쓰려고 했지만 잘 되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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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Guide Post라는 크리스챤들의 testimony가 많이 쓰인 월간지를 보는데 어제는 ‘Last Lecture’라는 Randy Pausch라는 교수의 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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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Carnegie Mellon대학교 컴퓨터 과학 교수였고 2006년 말기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나의 큰누나도 같은 암으로 3년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치료에 집중하는 대신 2007년 9월 "어린 시절의 꿈을 진정으로 이루는 법"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이 강연은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베스트셀러 서적 《마지막 강의》로 출간되었던 것이다. 그는 처음 예상했던 암울한 예후를 몇 달이나 뛰어넘어 생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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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에게 공학적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전반적으로 건강 상태는 아주 좋지만, 간에 종양 10개가 생겨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고작 몇 달뿐입니다.
저는 어린 세 아이의 아빠이자 꿈에 그리던 여성과 결혼한 남편입니다. 제 처지를 비관하며 스스로를 연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가족이나 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주 제한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가장 당연한 일은 가족과 함께하며 그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족과 보내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제가 없는 세상에서 가족이 살아갈 길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일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2008년 7월 25일 췌장암 합병증으로 버지니아주 Chesapeake에 있는 가족 자택에서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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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살이면 자녀들이 어린 나이이고 분명 일로 한창 바쁘게 살때이다. 나의 막내동생이 49살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아들이 Carnegie Mellon대학교에 다녔었다.
Carnegie Mellon University는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터공학, 로봇공학, 예술 및 경영학 프로그램을 자랑하는 명문 사립 연구중심 대학이다. U.S. 뉴스 &amp; 월드 리포트(U.S. News) 선정 미국 대학 랭킹 20위를 기록했으며, 특히 컴퓨터 과학(Computer Science)과 컴퓨터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는 미국 내 1위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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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y Pausch 교수가 가르친 Carnegie Mellon University를 세운 Carnegie는 Scotland에서 어린 시절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서 12세에 면직물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말이 많았다. 직원들을 혹사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부를 축적하고 Rockerfeller와 같이 말년에 그의 돈을 사회와 교육 도서관을 건립하는데 썼다.

그는 자녀들에게 그의 부를 남기지 않고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박애주의자 중 한 명으로 사회 발전을 위해 재산을 사용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을 주창했다. 그는 건물에 자기의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나중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Carnegie Hall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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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누가 지난 과거를 생각하면서 후회되는 것이 있냐고 물으면 역시 아들들과 긴밀한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일하는 것외에 교회일에 너무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들과 캠핑이나 강에 나가 보트를 타는 등 여러곳 다니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특별히 아들이 미국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가정에서 영어를 썼는데 내가 언어에 약하니 더 간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인교회나 동문회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과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한 것이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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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남을 도울 돈도 없고 그렇다고 지식이 많아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5달란트 받은 종이 5달란트를 남기고 2달란트 받은 종이 2달란트 남겼기에 5/5=2/2=1/1=1 이다. 즉 내가 1달란트 받았으면 1달란트 남겨 나는 하나님앞에 설 수 있다. 잘했다고 칭찬 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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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Randy Pausch와 같이 시한부 인생을 산다. 몇달이 아니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떻게 오늘 하루를 살까?
아들에게는 그의 삶을 위해 기도하는 아버지로서 나의 아내에게는 그래도 행복했었다는 말이 나오고 얼마간 기억에 남을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나를 성장시키고 주님의 일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Fri, 24 Jul 2026 00:56:5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One friend said—jokingly, perhaps—that he would list me as a "future plumber."]]></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48]]></link>
			<description><![CDATA[시끌벅적이던 FIFA World Cup이 끝났다. 난 아르헨티나가 이겼으면 했지만 스페인은 한단계 더 높은 경기를 보여주었다. 시상식이 있기전에 여러 나라 선수들이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 갔는데 노르웨이는 semi final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국민들이 대규모로 자기 선수들을 환영하는 퍼레이드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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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을 태운 비행기에는 Messi의 번호 10이 새겨 있었다. 얼마나 Messi는 국민들과 팀원들 그리고 국가의 후원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을까? 난 잠시 한국의 선수들을 태운 비행기에 (절대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손흥민의 번호 7을 새겨놓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한국의 역사적으로 능력있고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리는 풍토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옛날 남이장군과 이순신장군을 생각했다. 아까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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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i는 은메달을 목에 걸고 웃는 표정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싸웠다. 박수를 쳐보낸다. 그는 2026년 FIFA 월드컵을 대회 전체 선수 랭킹 2위이자 득점 2위(8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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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19살이고 번호도 19번인 Yamal이 앞으로 더 잘할 것 같다. 브라질의 펠레가 17살때 챔피언이 된 것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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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중에 집에 tankless water heater를 install하면서 여러가지를 부딪치는 것이 있었지만 Gas pipe에 연결하는 것으로부터 물이나 가스가 새지않게 teflon tape과 pipe dope를 같이 쓰는 것을 다시 배우고 실습했다. 찬물과 더운물 pipe를 cpvc로 썼는데 다음부터는 pex pipe 쓰려고 요즈음 배우고 있기도 하다.
쓰던 water heater는 내일 Mr.B가 집에 와서 가져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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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한친구는 농담?으로 future Plummer로 쓰겠다는데 솔직히 전기나 수도등 못 할 것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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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의 닥터김은 존경?이라는 말을 써서 웃었다. 하지만 water heater를 tankless로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들이 내게 같은 일을 부탁한다면 못하겠다라고 말할 것 같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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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토요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드릴때 자주 옆에 앉는 Jim부부를 아내가 주말에 점심같이 먹자고 집에 초청하였다. OBC의 교인들을 한명 두명씩 가깝게 교제하면서 앞으로 1년 넘게 다니면 교회가 낫설지 않을 거라 생각도 해본다.

오늘은 Lord’s Pantry에 아내가 입던 옷들중 입지않는 옷들을 세탁해서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RV가 parking된 곳에 가서 RV 문을 열어 보았는데 조그만 쥐가 있어서 청소를 하고 내일 trap을 가져다 놓고 잡아 멀리 가 놓아줄 생각이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Wed, 22 Jul 2026 00:07:2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한국의 이재철목사가 개척교회의 이름을 ‘주님의 교회‘로 한 이유]]></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47]]></link>
			<description><![CDATA[한국의 이재철목사가 ‘주님의 교회‘를 세운 이유를 들으면서 동감을 했다. 그리고 그가 세운 교회가 미국인교회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을 했다. 그의 말씀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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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에 저희 집 2층에서 함께 성경 공부하던 몇 가정하고 정말 제 계획에 전혀 없던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교회가 생겨나는 것이니까, 교회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그리고 교우님들과 많은 생각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라고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고, 주님께서 반석과도 같은 그 베드로의 고백 위에 "너희들의 교회가 아니라 내 교회를 세우리라, 천명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주님만이 주인 되시는 교회를 세우자고 그 이름을 주장하기까지에는 제가 40살 때, 우리 나이로 40살 때 주님의 교회가 개척되었는데, 40년을 살면서 목사가 주인인 교회, 특정 장로가 주인인 교회, 이미 은퇴한 원로 목사가 주인인 교회, 돈 많은 특정 교인이 주인인 교회를 너무너무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도 이 교회에서는 주인 행세하지 말자, 못 하게 하자, 주님만 주인이심을 우리 삶으로 고백하자. 그런 의미로서 주님의 교회라고 지었습니다.

이름을 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그 교회의 소속된 모든 교인들을 신앙 고백인 동시에 선언문이기 때문에, 주님의 교회가 사람의 교회로 전락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실천한 사항들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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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제 임기를 10년으로 제가 정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되던 날, 정확하게 교회를 떠났습니다.
제가 만약에 그런 규정을 만들지 않으면, 제가 70살까지 개척 목사로서 그 교회 목사하면 나중에 죽을 때까지 원로 목사 하겠죠. 그러면 그 교회는 이제철 교회가 되는 겁니다.
장로들, 6년 심호하고 1년 안식년 후에 6년 심호, 총 13년 후에 장로들 전부 다 은퇴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는 원로 목사, 원로 장로를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원로라고 하는 말을 둔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주인이 될 가능성을 두는 겁니다.

개신교의 핵심 사상이 만인 제사장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베드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계급 제도와 구별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개신교회는 모두가 만인 제사장인데, 예배 시간에 기도는 장로이외에는 아무도 못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에서는 세례받은 20세 이상의 교인, 세례받은 지 1년 이상 되는 20세 이상의 교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예배에 가나다 순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께서 "네 오른손에 하는 거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그러셨거든요.
주님만 알게 해야죠. 그런데 제가 신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교인석에 앉아서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에 하나가, 왜 주보에 헌금자 이름을 쓰지?

왜 성전 꽃장식한 사람들 이름 쓰지?
무슨 헌물을 했다고 이름 왜 쓰지?
저거 안 쓰면 주님 모르시나?
헌금 봉투에 이름 쓰지 않는다고 주님이 모르신다면, 그런 무능한 주님을 왜 믿으렵니까?

그래서 헌금 봉투에서 모든 이름을 다 지웠습니다.
주님의 교회 교인들은 수억의 헌금도 모두 무명으로 했습니다.
나는 교인들이 얼마 헌금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 율법사들이 예수님에게 가장 큰 율법이 뭐냐고 물었을 때, 첫째가 하나님 사랑이고 둘째는 그와 같으니, 그와 같다는 것은 둘째라고 해서 비중이 떨어지는 게 아니고, 첫째와 똑같은 비중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 이웃 사랑이 제일 큰 계명이다. 그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교인들이 헌금하는 모든 헌금의 50%는 하나님 사랑하기 위해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50%는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교회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라고 말씀하실 때, 교회는 건물이 아니거든요. 나중에 또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마는, 우리 자신이거든요. 근데 70년대, 80년대에 거쳐오면서 교회가 마치 건물인 것처럼, 건물을 웅장하게 지어야 좋은 교회인 것처럼 호도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 자신이지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건물을 짓지 말자, 소유하지 말자, 우리 자신을 교회로 만드는 일에 올인하자, 그래서 정신여고 요청으로 정신여고의 강당을 주님의 교회. 100% 돈을 내어서 지어드리고, 그 강당 일부를 빌어서 교회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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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70년대, 80년대 교회 성장기를 거치면서요.
교회마다 교인들을 일주일 내내 교회에 붙들어 뒀습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다, 주님께서 너희들 예배당의 빛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내내 교회 가서 살면 좋은 교인인 것처럼, 일주일 내내 교인들을 교회 안에 붙들어 주면 그 교회가 좋은 교회인 것처럼, 천만에요.
그건 교회를 개토벌시키는 겁니다.
예배당 안에 교인들을 붙들어 두면 그들이 언제 나가서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을 삶을 삽니까?

그래서 주님의 교회는 주차장이 아니라 주유소다. 주차장은 차를 세우는 곳이지만, 주유소는 급유하는 곳입니다. 내가 목적으로 하는 것을 가기 위해서 급유하는 데가 주유소입니다.
근데 만일 누군가가 급유를 목적으로 해야 할 주유소에 새 차를 사서 "나는 일주일 내내 이 주유소에 주차해 두겠다" 그 사람 차를 잘 못 산 거죠.

그래서 주님의 교회는 교회는 주유소기 때문에 주일날 와서 일주일의 고개를 넘어갈 영적 주유를 받아서 세상으로 가라, 세상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마을에서 빛으로 살아라. 그래서 주중에 교회 예배당에 오지 않도록, 주중 프로그램은 최소화했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예산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예산은 경제 논리입니다.
내년도에 무슨 천재지변이 일어날지, 내년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교회는 내년도 예산을 세웁니다.
1월달부터 그 예산안에 따라서 지출을 합니다.
그러다가 그 예산안에 따른 헌금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할 수 없이 7월, 8월부터 헌금 설교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예산안을 다 집행할 수 있거든요.

경제 논리를 따르지 않기 위해서 주님의 교회는 예산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결산은 철저하게 했습니다. 전문가들이 모든 서류와 원장을 다 감사를 하고, 교인들에게 교회 원장을 공개했습니다.
제 봉급 얼만지 다 나옵니다. 제가 교회 헌금을 한 달에 얼마 쓰는지 다 나옵니다.
교역자가 지우개 100원 주고 산 거 다 나옵니다. 원장이 공개되니까 헌금이 함부로 쓰여질 수 없죠. 주님의 교회니까. 주님만을 위해서 쓰여지게 되는 거죠.

여러분, 사랑은 낭비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서 다 낭비합니다.
자기 체력도, 자기 인생도, 물질도 다 낭비합니다.
그게 사랑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어머니가 자식을 앉혀 놓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계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랑의 관계가 깨져버리는 거야" 교회가 하는 사랑의 행위는 낭비여야 합니다. 따지지 말아야 해요.

외부에 50%를 돈내면 얼마나 큰 금액입니까?
필요하다고 하는 데가 있으면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요청하게 하셨다고 믿고 낭비하는 마음으로 도왔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낭비이기 때문에 사랑의 낭비를 하기 위해서 낭비하지 말아야 될 것은 절대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주보 A4 용지, 흑백 주복 한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복은 화려할 이유가 없거든요.

제가 목회하던 교회에 강단에 어디 꽃 한 송이 둔 적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근데 왜 돈 들여서 꽃으로 장식합니까?
예배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식이 돼야죠.

저는 10년을 목회를 하고 주님의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에서 주님의 교회라는 공동체적 선언, 그 주님의 교회 이름답게 교인들이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실행했던 것이 그 이후에 제네바 한인교회, 100주년 기념교회의 토대가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제가 떠난 지가 25년 되었고, 주님의 교회가 창립된 지는 35주년이 됩니다.

감사한 것은요, 제가 떠난 지가 25년이 지났는데도 현재의 주님의 교회 교인들은 35년 전에 제정한 주님의 교회라고 했던 그 공동체적 선언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만들었던 모든 사항들을 지금도 준수하고 있다는 겁니다.
주님의 교회는 원로 목사 없습니다. 원로 장로, 없습니다.
35년 지난 지금도 흑백 A4 용지 한 장입니다.

지금도 헌금의 50%로 선교 구제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교회 이름을 주님의 교회라고 짓고 그 공동체적 선언을 지키려고 하는 이러한 구체적인 실천 사항이 없이 세월이 흘렀다고 하십시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 목사 장로가 서로 누가 헤게모니를 가질 것인가, 서로 싸운다. 각 부서마다 팝을 싸움을 한다.
그러면서도 나가서는 우리 교회는 주님이 주인이신 주님의 교회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보다 더 우스운 코미디 소재가 있겠습니까?]]></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Fri, 17 Jul 2026 14:39: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I remember being asked what I would say when I stood before God later on.]]></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46]]></link>
			<description><![CDATA[아침이 되면 deck에 나가서 참외 plant가 잘자라는지 물이 필요한지 보아준다. 열매가 맺혔고 화분이기에 물이 부족하면 작년에 한 plant가 그만 시들어 죽은 것을 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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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나면서 열매가 다 성숙하면 plant는 소명을 다한듯 잎들이 시들 시들해져 버린다. 뿌리가 든든하게 흙속에 뻗어 영양분을 섭취해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말씀속에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제자가 되리라"는 우리의 노력 이전에 좋은 뿌리(예수 그리스도)에 가지처럼 단단히 붙어 있는 것이 먼저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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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지난번에 이어 두번째로 ‘Lord‘s Pantry’에 가서 봉사했다. ‘Lord’s Pantry’는 St.Paul 감리교회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해 옷이나 신발…음식 갓난아이들에게 필요한 diper등을 모아 무료로 제공하는 일을 하는데 한 10명쯤 대개 나이가 들은 백인 여자들과 한 두명의 남자들로 참 열심이다. 매주 화요일에 모여 donation으로 들어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매달 첫 토요일 아침 그리고 세번째 목요일 오후에 open한다.
어제는 모슬렘 흑인 라틴노 여자들 그리고 남자들도 왔었다. 백인이나 동양인은 아직 없었다. 옷을 30개까지 가져 갈 수 있는데 사람들이 많을 때는 바쁘다.
두번째 참석을 하니까 좀 믿음이 갔는지 다음번에는 명찰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데 시간이 날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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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얘기를 하면서 life story들을 알게 되어서 좋다.
한 여자는 남편이 government worker로 멕시코 영사관에서 심장마비로 40년전에 죽었는데 아직까지 혼자 자녀들을 키우고 살았다고 하고 어느 여자는 두 어깨를 다쳐서 힘이 들었지만 봉사를 계속했다고 말했다. 어느 여자는 집에서 밭농사를 한다면서 쎌러리를 주기도 했다.
봉사하는 한 남자는 이름이 Tom이고 94세이다. 내게 어떻게 봉사하게 되었냐고 묻고는 했는데 그는 불편한 몸을 가지고 돕고 있었다.
물건들을 pickup해 가져가는 한 여자는 다음에 올때 맛있는 빵을 만들어 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와 아내는 집에 입지않는 옷들을 정리해 다음 모일때 가져가기로 했고 OBC에 다니는 친구들에게도 혹donation을 할 옷이 있는지 얘기할 생각이다.
언젠가 한국의 이재철목사가 늦게나마 골프를 즐긴다는 한 은퇴한 장로에게 나중에 하나님앞에 서면 뭐라고 말하겠냐고 물었던 것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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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에는 아내가 두번 사람들을 집에 초청해 식사를 같이 했었다. 다음 주에도 한 부부를 집에 초청했는데 아내가 좀 힘들다고 말해서 당분간 초청하는 일은 하지말자고 말했다. 한번은 어려움이 있는 교인부부를 위해 식사를 준비했고 또 한번은 우리를 OBC에서 처음으로 집에 초청해준 J부부를 위해 준비했었는데 난 J에게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서로 돕자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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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하실에 설치하고 있는 tankless water heater를 마침내 연결하려고 한다. Gas pipe를 연결하고 새는지 확인하고 exhaust pipe를 연결하고 cold hot water cpvc를 연결하면 된다. 그리고 setup을 하고 물을 켜보면 제대로 working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지금 쓰는 water heater안의 물을 버리고 교회의 한 친구가 가져가기로 했기에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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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United States Senator Lindsey Graham이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갑자기 생겼는지 잘 모르지만 슬픈 일이었다. 그를 생각하면서 flag를 집앞에 달았다. 앞집의 John도 집앞에 달았는데 미국에 살면서 감사한 것이 많고 언제든 어느 형편이든 나의 나라로 지켜야 할 마음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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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오늘 dental office에 갔다. 매주 한번 가는 일이기에 부담이 없고 나름대로 나와 떨어져 freedom?을 즐기며 사람들과 일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리라 생각된다.
오늘 하루도 의미있게 살기를 위해 기도한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Fri, 17 Jul 2026 13:49:2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What makes life meaningful?”]]></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45]]></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607/6a5685b7d977b9869387.png" alt="" />

2021년 봄에 Global Attitudes Survey에서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17개 선진국 국민의 견해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조사 결과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를 설명할 때 영성, 신앙, 종교를 언급한 비율(%)이 0%가 나온 국가가 있었는데 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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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가장 많은 15%를 차지한 국가는 미국이었다. 그러면 기독교 불교 유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은 어떨까? 보니 남한국은 벨지움, 프랑스, 스웨덴과 함께 1%였다.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싱가폴,스페인 그리고 타이완은 2%로 한국보다 많았다.
한국인 교회에 미국에 오면서 부터 다녔는데 난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나 교인들에게 배우는 것보다 교회를 선교지로 생각하고 일했기에 다닐 수 있었다. 일을 그만두게 되어 한인교회를 보니 적응할 수 없어서 그래도 성경적이라고 생각되는 미국인들과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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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교회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니는 OBC는 아주 보수적인 교회이고 주일 예배때 아이들을 돌보아줄 Sunday school이 없어서 아이들이 같이 예배실에 있으니 갓난 애 우는 소리와 설교에 관심없는 애들이 장난치는 소리가 난다. 해서 다음 주일부터는 애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재정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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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Discovery Class에서 가르치는 J장로에게 교인들이 장로라고 부르지않냐고 물으니 “전혀 상관이 없이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미국교회에서 장로는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서 회중을 감독하고 가르치며 다스리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다. 구체적인 직무와 직함은 교단에 따라 상당히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교회의 사명을 인도하고 교리를 수호하며 교인들을 돌보는 목자 역할을 한다.
난 J장로에게 한인교회에서는 거의 모든 교인들의 이름뒤에 집사나 장로 권사라고 부른다고 말했더니 그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난 집사나 권사 장로가 한인교회에 많은 이유는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것도 있겠지만 대개 헌금을 많이 내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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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복음교회의 장로등 직책을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글을 보았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가 되었다고 꽃다발을 주고 받는 곳은 아마 한인교회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인들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가 영성, 신앙, 종교를 언급한 비율이 1%인 것이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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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새로 친구로 가까이 사귀고 있는 J부부와 집에 수도관문제로 6주간 호텔에서 지내야 하는 Jeff부부를 집에 초청해서 그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려고 한다. 먹는 음식이 까다로와 아내는 음식 정하는데 헤매다가 결국 Jeff에게 물어서 그가 원하는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목요일에는 오후에 지난번에 가서 봉사했던 Lord’s Pantry에 가서 봉사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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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난 집안에서 뜨거운 물을 공급하는 40gallon water heater를 tankless water heater로 바꾸고 있다. 처음해보는 일인데 gas pipe에 연결하는 것이 익숙치않아 배우고 Homedepot에 새 gas connector를 order했다. 이번주안에 집에 배달이 되면 쓰던 water heater를 끄고 새 tankless water heater에 gas 연결하면 된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ue, 14 Jul 2026 18:49: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What if your sleeping position tonight could quietly increase your risk of stroke by morning?]]></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44]]></link>
			<description><![CDATA[오늘 밤 당신의 수면 자세가 아침에 뇌졸중 위험을 조용히 높일 수 있다면 어떨까요?

<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7/202607/6a557866367276901011.png" alt="" />

심장 전문의들은 흔히 취하는 수면 자세 하나가 혈류를 제한하고 심장에 위험한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드시 피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만약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습관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만두세요.

지금 당신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세가 매일 밤 심장으로 가는 혈류를 서서히 차단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심장외과 의사인 저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뇌졸중의 30%가 자정부터 오전 6시 사이에 발생합니다. 낮 시간도 아니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아닙니다. 바로 잠자는 동안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저는 블레이크 해리슨 박사입니다. 앞으로 15분 동안 수면 자세 5가지를 최악의 자세부터 치명적인 자세까지 순위별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늘 밤 여러분의 뇌를 실제로 보호할 수 있는 자세 2가지를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지금 바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5번부터 시작해 볼까요? 등을 완전히 펴고 누워서 자는 것. 네, 이해합니다. 이 자세가 자연스럽게 느껴지시죠. 척추도 곧게 펴지고요. 어떤 사람들은 이 자세가 최고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특히 60세 이후에 완전히 누워 있을 때 우리 몸은 혈액이 머리 쪽으로 몰리고, 중력은 더 이상 우리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20대에는 혈관이 이러한 상황을 감당할 만큼 유연하지만, 60세 이후에는 혈관이 뻣뻣해집니다. 뇌의 미세 동맥은 약해지고, 혈액이 7~8시간 동안 계속 머리에 몰리면 두개골 내부의 압력이 증가합니다.

새벽 3시에 찾아오는 지끈거리는 두통, 아시나요? 그건 그냥 생기는 게 아닙니다. 두개내압 상승 때문이죠. 뇌에 과도하게 채워진 혈액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고 뇌를 압박하는 현상입니다. 임상수면의학 저널(Journal of Clinical Sleep 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서 바로 이 현상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머리를 15도만 높여도 두개내압이 크게 감소하고 심장으로 돌아가는 혈류가 개선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침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깨어나는 경우, 너무 빨리 일어나 앉으면 현기증을 느낍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수면 중 혈류 역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경고 신호입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마지막에 정확한 자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4번을 들어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할 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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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해부학적 구조를 잘 살펴보면 심장은 가슴 중앙에서 약간 왼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누우면 체중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정맥 중 하나인 하대정맥이 압박됩니다. 이 정맥은 하체 전체에서 심장으로 혈액을 되돌려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가벼운 압박이라도 심장은 혈액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건강한 30세라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심장 기능이 저하되었거나 고혈압이 있는 60세 이상 노인의 경우 심장은 이미 과부하 상태입니다. 여기에 매일 밤 7시간씩 추가적인 부담을 더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심장 전문의들은 심부전 환자들이 본능적으로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것을 피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는 몸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유럽 심부전 학술지(European Journal of Heart Failure)는 수면 자세와 심장 질환 환자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3번: 베개를 2개, 3개, 심지어 4개까지 머리 아래에 쌓아 사용하는 것.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호흡, 위산 역류, 부비동 배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머리를 지나치게 높이면 목이 앞으로 심하게 굽어진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목뼈 양쪽에는 척추동맥이 지나가는데, 이 동맥은 뇌간, 소뇌, 그리고 균형, 운동 능력, 의식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 혈액을 공급하는 중요한 혈관입니다.
베개를 여러 개 쌓아 머리를 앞으로 숙이면 이 동맥이 압박됩니다. 당장은 통증을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만성적인 압박은 뇌의 중요한 부위로의 산소 공급을 감소시킵니다. 아침에 목이 뻣뻣하고 두개골 아래쪽이 뻐근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이는 단순히 근육 긴장 때문이 아닙니다. 혈류 장애 때문입니다. '수기 및 생리 치료 저널(Journal of Manipulative and Physiological Therapeutics)'은 목 자세가 척추동맥 혈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지나치게 앞으로 숙인 자세는 혈류를 현저하게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는 수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매일 밤 8시간 동안 목이 불편한 자세로 유지된다면 누적된 영향은 상당합니다. 제가 자주 접하는 사례가 있는데, 매일 아침 목 통증과 두통으로 깨어나는 경우입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나 노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제대로 된 베개 하나로 바꾸죠. 그러면 일주일 안에 증상이 사라집니다. 베개 하나면 충분해요. 하지만 이건 3단계일 뿐입니다. 2단계부터는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두 번째는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는 자세입니다. 특히 노년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세로, 보호받는 느낌, 안전함, 본능적인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생리학적 관점에서 이 자세는 두 가지 주요 문제를 야기합니다.

첫째, 폐가 충분히 확장되지 못합니다. 무릎을 가슴에 끌어안고 턱을 숙인 채 웅크리면 흉곽이 압박되어 밤새도록 얕은 숨을 쉬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슴이 답답하고 깊은 숨을 쉬기 어려운 느낌을 아시나요? 이는 폐가 몇 시간 동안 제한된 상태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산소 섭취량이 10~15%만 감소해도 혈중 산소 포화도가 떨어집니다. 심혈관 질환이나 초기 폐 질환이 있는 사람의 경우, 이러한 산소 부족은 심장과 뇌 모두에 부담을 줍니다.

둘째, 목과 등 윗부분에 지속적인 긴장이 가해집니다. 근육이 수축된 상태로 유지되면서 경추와 두개골 기저부 주변의 작은 혈관이 압박되어 뇌로 가는 혈류가 감소합니다. 호흡 생리학과 신경 생물학 연구에 따르면 척추를 심하게 구부리는 자세는 일회 호흡량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하룻밤 동안 수백 번의 얕은 호흡을 반복하면서 한 번에 들이마시는 공기의 양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머리가 멍하거나, 두통이 있거나, 약간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뇌에 산소가 몇 시간 동안 공급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세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정확한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1번 항목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 습관은 여러 위험 요소를 한데 모아 위험한 수면 습관으로 만들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오늘 밤 당장 멈춰야 합니다.

첫 번째: 과식이나 음주 후 2시간 이내에 잠자리에 드는 것. 저녁 식사나 술자리 등은 일상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혈관계 건강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가장 위험한 조합입니다. 과식을 하면 우리 몸은 소화기관으로 혈액을 집중시킵니다. 이는 정상적인 현상이지만, 뇌, 심장, 기타 주요 장기로 가는 혈액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이러한 혈액량 증가를 어느 정도 보상하지만, 동맥이 좁아진 노년층은 이러한 혈액 재분배로 인해 어지럼증, 현기증, 심지어 수면 중 실신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알코올까지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알코올은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압을 급격히 떨어뜨립니다. 건강한 혈관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급격한 혈압 강하를 편안하게 느낄 수 있지만, 동맥경화나 동맥 경화가 있는 노년층은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면 신체가 보상 작용을 하게 됩니다. 혈압이 급격히 상승했다가 다시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급격한 혈압 변동은 혈관벽에 스트레스를 주고 혈관을 약화시켜 파열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혈류가 불규칙해지는 부위에서는 혈전이 형성될 수 있으며, 이 모든 일이 무의식 상태에서 발생합니다. 미국 고혈압 학회지(American Journal of Hypertension)는 알코올 섭취와 야간 혈압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취침 직전에 적당량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수면 중에 발생하는 정상적인 혈압 강하를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자연적인 혈압 강하가 일어나지 않으면 심혈관계에 가해지는 부담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녁 8시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와인 두 잔을 마신 후 10시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2시에 심한 두통, 심장 두근거림, 식은땀으로 잠에서 깼습니다.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신체가 보상 작용을 하려고 애쓰는 순환계 위기입니다. 이러한 증상이 반복되면 미세 혈관 손상과 미세 뇌졸중이 발생하지만, 본인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이러한 손상이 더 이상 미세 뇌졸중이 아닌 심각한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녁 식사는 잠자리에 들기 3시간 전에 마치세요. 술을 마신다면 잠자기 4~5시간 전에는 마시지 마세요. 저녁 식사 후에는 15분 정도 걸으세요. 그냥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약물보다 밤새 뇌졸중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자, 지금까지 피해야 할 5가지를 알아봤습니다. 실제로 잘때 지켜야할 몸의 자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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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자세는 왼쪽으로 누워 자는 것입니다. 심장은 중심에서 약간 왼쪽에 위치합니다. 왼쪽으로 누워 자면 중력이 혈액 순환을 돕습니다. 심장 부담이 줄어들고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며 뇌에 더 많은 산소가 공급됩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심장학적 원리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바꾸는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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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 전, 연구자들은 GLIMP 림프계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뇌의 노폐물 처리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잠자는 동안 이 시스템은 독소, 대사 노폐물,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배출합니다. 이 연구는 신경과학 저널(Journal of Neuroscience)에 발표되었습니다. 림프계는 옆으로 누워 잘 때, 특히 왼쪽으로 누워 잘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합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뇌에는 매일 아밀로이드, 베타, 타우와 같은 단백질이 축적됩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경우 이러한 단백질이 쌓여 플라크를 형성합니다.

건강한 뇌에서는 GLIMP 림프계가 수면 중에 이러한 플라크를 제거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백질 배출을 방해하는 자세로 잠을 자면 단백질이 축적되기 시작합니다. 하룻밤 사이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수년,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됩니다. 그리고 증상이 나타날 때쯤이면 이미 손상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집니다.

왼쪽으로 누워 자는 자세는 노폐물 배출을 최적화합니다. 이는 단지 오늘 밤 뇌졸중을 예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20년 후 인지 기능 저하를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또 다른 이점도 있습니다. 위산 역류가 있는 경우, 위와 식도의 구조상 왼쪽으로 누워 자면 위산이 역류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가슴에 타는 듯한 통증 없이 잠에서 깰 수 있습니다. 만약 30년 동안 오른쪽이나 바로 누워 자왔다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실용적인 해결책은 바로 바디 필로우입니다. 바디 필로우를 앞으로 안고 자면 왼쪽 자세를 유지하게 되고 척추를 지지해 주며, 관절 통증 완화에도 도움이 됩니다.

무릎 사이에 작은 베개를 끼워 보세요. 제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자다가 뒤척이면 어떻게 하죠?"입니다. 뒤척이는 건 정상입니다. 완벽한 자세가 목표가 아니라, 해로운 자세보다 최적의 자세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특정 사람들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인 두 번째 자세가 있습니다. 그 자세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등을 대고 자는 자세인데, 등을 살짝 높이는 것입니다. 완전히 눕히거나 앉는 자세가 아니라, 점진적으로 기울이는 자세입니다.

상체를 15~30도 정도 들어 올리세요. 웨지 베개, 높이 조절 침대 또는 베개를 잘 쌓아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머리뿐만 아니라 상체 전체를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체에서 심장으로 혈액이 더 효율적으로 되돌아옵니다. 혈액 순환이 좋지 않거나, 발목이 붓거나, 정맥류가 있는 경우 이 자세는 심혈관계에 부담을 줄여줍니다.

이 수면 자세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두개골 내부 압력이 감소합니다. 뇌혈관이 약하거나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사람의 경우, 이는 미세혈관 파열 위험을 줄여줍니다. 이러한 미세 출혈은 당장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되어 인지 기능 저하, 기억력 문제, 즉 혈관성 치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호흡이 개선됩니다. 기도가 더 열린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경미한 수면 무호흡증, 코막힘 또는 부비동염이 있는 경우, 상체를 높이면 코골이가 줄어들고 뇌로의 산소 공급이 개선됩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상체를 높일 때는 무릎 아래에도 작은 베개를 받쳐주세요. 이렇게 하면 척추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유지하고 허리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무중력 자세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데, NASA에서도 우주비행사를 대상으로 연구한 바 있습니다. 무중력 자세는 신체 전체에 압력을 고르게 분산시켜 관절과 혈관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여줍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각한 수면 무호흡증이 있는 경우, 상체를 높이더라도 바로 누워 자면 기도가 막힐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왼쪽으로 눕는 것이 더 좋습니다. 어깨 관절염이 있다면 왼쪽으로 눕는 것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심부전이 있는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왼쪽으로 눕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자세가 효과적인 이유를 이해하고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제 침실 환경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자세라도 이러한 요소들이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침실은 단순히 잠자는 공간이 아닙니다. 뇌와 심장이 회복되거나 악화되는 곳입니다. 먼저 온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방 온도는 화씨 64~68도(섭씨 약 18~20도) 사이로 유지하세요. 시원한 환경은 체온을 낮춰 깊은 수면을 유도합니다. 또한 야간 혈압을 자연적으로 낮춰 뇌혈관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여줍니다. 방이 너무 따뜻하면 신체는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얕은 수면 단계에 머무르게 되고 심박수도 높은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결국 진정한 회복이 일어나는 깊은 수면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오후 9시 이후에는 청색광을 차단하세요. 스마트폰, 태블릿, TV, 강한 천장 조명 모두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합니다. 이는 깊은 수면 단계를 지연시키는데, 이 단계는 뇌가 신진대사 노폐물을 제거하고 심혈관계를 안정시키는 단계입니다. 기기를 꼭 사용해야 한다면 청색광 차단 안경을 쓰거나 야간 모드를 사용하세요. 더 좋은 방법은 종이책을 읽는 것입니다. 뇌는 화면 없이 휴식을 취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 목을 제대로 받쳐주세요.
앞서 베개 높이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목 윤곽이 있는 메모리폼 베개는 머리를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만들지 않고 목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지지해 줍니다. 이것만으로도 척추 동맥의 혈류 장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음입니다. 완전히 깨우지 않는 소리라도 깊은 잠에서 갑자기 깨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심박수가 급증하고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합니다. 이러한 미세한 스트레스 사건들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혈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색 소음기나 귀마개를 사용하세요. 불규칙적인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일정한 배경 소음을 만들어 주세요. 이러한 권장 사항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입니다. 뇌졸중 위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Mon, 13 Jul 2026 23:41:2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7"><![CDATA[자료실]]></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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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Messi said, “I am not the origin of my greatness. I am merely a passage.”]]></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43]]></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7/6a516babd93cc7316325.jpeg" alt="" />

어제 배달받은 tankless water heater를 어디에 설치할지 고민 끝에 오늘 아침에 설치 장소를 정했다. 내일 아침에는 벽에 구멍을 두 군데 뚫고 unit을 설치한 후, outlet을 만들고 오늘 배달되는 service valve를 연결할 예정이다.
Tankless water heater는 뜨거운 물을 사용할 때만 가스를 사용하고 뜨거운 물의 양에 제한이 없어 여러 명이 동시에 사용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설치 공간이 적게 차지하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일 년에 한두 번은 반드시 maintenance를 해야 한다.

<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7/6a516cc265af29373832.jpeg" alt="" />

오후에 두 번째 FIFA 월드컵 8강전이 열렸다. 스페인은 미국팀을 4:1로 꺾은 벨기에와 맞붙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스페인의 승리를 예상했고, 결국 스페인은 2:1로 승리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이 실감되는 경기였다. 스페인은 semi final로 다음 주 화요일에 프랑스와 경기를 치룬다.

<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7/6a516babdf2063691111.jpeg" alt="" />

앞으로 노르웨이의 Haaland, 영국의 Kane, 프랑스의 Mbappe,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Messi가 어떻게 경기를 펼칠지 기대된다.

https://youtube.com/shorts/LsD5Gvgj1d0?is=O_Se25xvrLkttlCb
최근 YouTube에 Haaland 영상이 많이 올라오고 있는데 얼굴이 침팬지를 닮았고 먹는 모습도 원숭이 같아 ‘침팬지’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것 같다.

https://youtube.com/shorts/6cWw0H4t2_0?is=ygOKeDfkKySzhJF5
그는 키와 몸집이 크지만 축구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재 8강에 오른 팀들을 보면 아르헨티나와 모로코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럽 팀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승 진출 팀을 예상하지만,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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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르헨티나의 Messi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정리해 보았다. 축구장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Messi는 편안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진행자가 그의 성공 비결을 묻자,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 출신이나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Messi는 겸손하게 신께서 자기에게 재능을 주셨고 선택해 주셨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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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얘기는 황금 공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할머니 ‘셀리아 올리베이라 쿠쿠티니‘로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은 메시가 골을 넣을 때마다 하늘을 가리키는 모습을 그저 흔한 “감사합니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하지만, 그 동작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리오넬이 겨우 4살 때, 아무도 그를 축구에 뛰게 하려 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그는 할머니의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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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돌리는 너무 어리고 키가 작아 동네 작은 팀에서 뛰었다. 살바도르 아파리시오 감독은 “쟤는 못 뛰게 해. 다칠 거야. 벼룩이나 다름없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 셀리아는 관중석에서 일어나 “넣어! 뛰게 해!”라고 소리쳤다. 결국 감독은 그란돌리를 경기에 투입했고, 신발 끈도 제대로 묶지 못하던 그는 공을 잡고 모든 사람을 제치고 드리블을 시작했다.
오늘, 36세의 메시가 골을 넣고 하늘을 올려다볼 때, 그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그를 연약한 아이로만 보았을 때, 누군가가 그를 믿어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메시의 운명은 가족 안에서,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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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는 재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라는 구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설명된다.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것이 쉬운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광야를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10살 라이오넬의 꿈은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친구들은 키가 쑥쑥 자라는데, 그는 자라지 않았다. 바지는 짧아지지 않았고, 부분 성장호르몬 결핍증이라는 잔혹한 진단을 받았다. 엄청나게 비싼 치료를 받지 않으면 그의 몸은 절대 성장하지 못할 것이고, 어린아이의 몸에 갇힌 어른으로 남을 것이었다. 수년 동안 매일 밤 11명, 12명이 그를 위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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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리오넬 메시는 침대에 앉아 펜 모양의 의료용 주사기로 일주일에 7일, 몇 년 동안 다리에 호르몬을 주입해야 했다. 어머니가 아닌 소년이 직접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에 번갈아 가며 주사를 놓았다. 다른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 때, 메시는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운명을 위해 바늘로 넣은 약으로 견뎌야 했다.

이러한 말 없는 고통과 강제적인 훈련 속에서 메시는 재능은 희생을 통해 지켜야 한다는 영적 진리를 배웠다. 신은 씨앗을 주지만, 우리는 눈물일지라도 물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뉴웰스 올드 보이즈와 리버 플레이트가 치료비를 내주지 않았기에 유일한 희망은 바다 건너편 바르셀로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행은 큰 댓가를 치러야 했다. 메시는 가족과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은 스페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르헨티나로 돌아갔고, 열세 살 메시는 아버지 호르헤와 단둘이 바르셀로나에 남았다. 그는 밤마다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울었지만, 아버지가 걱정하지 않도록 소리 내지 않았다. 가족은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했고, 메시는 그 죄책감에 시달렸다.

메시의 재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완전한 고독 속에서 신앙은 단순한 전통을 넘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메시는 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극도로 사적인 사람이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 시절 기도가 그의 피난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재능이 더 큰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것, 모든 것이 헛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수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아르헨티나에서 “카탈루냐인”이라 불리며 유니폼에 대한 애정과 국가 제창을 거부한다는 비난을 받았던 메시는 2016년 결정적인 페널티킥 실축 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며 무너졌었다. 자신의 소명을 거부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메시는 신의 때가 우리의 때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공개적인 굴욕을 통해 선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성장하며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리더이자 평온한 한 남자로 돌아왔다.
https://youtu.be/Mxkg3qLIPC8?is=jJbyi8meqcF_E1GT
결승전 직전, 메시는 기자에게 “신께서 제게 주실 거라고 느껴요. 바로 이거예요.”라고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이는 오만함이 아닌 모든 것이 마무리되어 가는 내면의 확신이었다. 몬티엘의 페널티킥 직전, 메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속삭였고, 이는 소셜 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입술 읽기 전문가들은 그가 마라도나나 할머니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몇 달 후 메시는 진실을 밝혔다. 그는 디에고나 할머니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고통을 끝내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라고 고백했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 메시는 유령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승리 후 그의 첫 마디는 전술이나 동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무릎을 꿇고 숨 막힐 듯한 목소리로 하나님께 감사를 전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 덕분입니다.” 온 세상이 트로피를 바라볼 때, 메시 역시 트로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트로피를 준 존재에게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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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비즈니스 포럼에서 메시가 “신이 저를 선택하셨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신앙심을 드러낸 것이다. 자수성가, 스스로 일구어낸 사람이라는 신화를 깨고, 오늘날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당신은 당신 자신의 신입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라는 거짓말에 맞서는 메시의 메시지는 강력했다.

역대 최고의 운동선수인 메시는 “나는 내 위대함의 원천이 아니다. 나는 단지 통로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가 그를 게으르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자신의 재능이 신이 빌려준 것임을 알았기에 메시에게는 책임감이 있었고, 수많은 스타들을 파멸로 이끈 스캔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섯 살 때 만난 안토넬라에게 충실한 남편, 세 자녀에게 자상한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메시의 신앙 덕분이다. 조각상이 아닌, 견고한 가치관으로 이루어진 “내게 많은 것이 주어졌으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메시의 신앙은 그의 삶을 더욱 빛나게 했다.

오늘 메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자신의 재능을 깨닫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 이뤄냈다고 믿으면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살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을 깨달으면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 성공, 돈, 명예로는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감사하는 마음만이 채워줄 수 있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Fri, 10 Jul 2026 22:02:0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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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Lafayette, who played a major role in American independence]]></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42]]></link>
			<description><![CDATA[라파예트 후작은 프랑스 귀족이자 군인으로, "두 세계의 영웅"으로 유명하다. 그는 국왕의 명령을 어기고 미국 독립 전쟁에 자원입대하여 조지 워싱턴의 측근이 되었고, 미국의 독립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여러 작전을 이끌었다. 프랑스에서는 인권 선언문 작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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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문은 오랜 군인 가문이었다. 그의 아버지인 프랑스 척탄병 연대 대령은 라파예트가 겨우 2살이었던 1759년 민단 전투에서 영국군의 포탄에 맞아 전사했고 30세 어머니를 여의었다. 라파예트가 십 대가 되었을 무렵, 그는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고아가 되었다.
상속 재산은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만 달러에 달했다. 그는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부유한 젊은이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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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에 그는 베르사유 왕립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6세에는 마리 아드리엔 프랑수아즈 드 노이스와 결혼하여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 중 하나인 노이스 가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노이스 가문은 루이 16세의 궁정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제 라파예트는 재산과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의 지원, 그리고 프랑스 기병 장교 임명이라는 모든 것을 갖추게 되었다. 18세기 귀족 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이룬 셈이었다. 그는 남은 생애를 베르사유 궁전의 가면무도회에 참석하고, 시골 영지에서 사냥을 즐기고, 평화로운 시기에 군대에서 조용히 승진하며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라파예트는 지루함을 느꼈고, 지루함을 넘어 분노에 차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영국군에 의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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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았다. 그래서 1776년 파리의 살롱에서 영국 왕실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미국 식민지 주민들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을 때, 라파예트는 그저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 독립 혁명은 유럽 지식인 사회의 화젯거리였다. 볼테르와 루소 같은 철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자유와 자치에 대한 사상을 옹호해 왔다. 그리고 이제, 대서양 건너편에서 실제 반란이 일어나 그러한 사상들을 실현하고 있었다. 영국을 증오하고 사명감을 갈망하던 젊은 프랑스 장교에게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라파예트는 편안한 거리에서 미국의 대의를 지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싸우고 싶어 했다.

1776년 12월, 라파예트는 파리에 주재하던 미국 외교관 사일러스 딘을 만난다. 딘은 비밀리에 대륙군에 합류할 유럽 장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그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미국군은 패배 직전이었고, 조지 워싱턴의 군대는 뉴욕에서 참패를 당했으며,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혁명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딘은 바다를 건너와 도움을 줄 경험 많은 유럽 군 장교들이 절실히 필요했다.

라파예트는 경험이 부족했다. 그는 19살이었고, 실제 전투를 경험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딘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돈, 인맥, 그리고 국제 무대에서 영국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유명한 귀족 가문의 이름이었다. 라파예트는 급여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자비로 복무하겠다고 자원했다. 딘은 그에게 대륙군 소장 명예직을 제안했고, 라파예트는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루이 16세가 그의 참전을 반대했던 것이다. 1777년 당시 프랑스는 영국과 공식적으로 전쟁 중이 아니었다. 프랑스 정부는 위장 회사를 통해 미국에 물자와 자금을 은밀히 지원하고 있었지만, 공개적인 전쟁을 벌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저명한 프랑스 귀족이 영국과 싸우러 떠나는 것은 외교적으로 재앙이 될 것이었다. 국왕은 라파예트의 출국을 금지하는 직접 명령을 내렸다. 라파예트의 장인, 장모는 경악했다. 그의 젊은 아내 아드리엔은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가족들은 그에게 남아달라고 간청했다. 왕실은 복종을 기대했지만, 라파예트는 배를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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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 약 20만 리브르에 '라 빅투아르'라는 상선을 구입했다. 소수의 장교들을 모아 프랑스 국경 근처의 스페인 항구인 로스 파사헤스로 남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1777년 4월 20일, 그는 대서양을 건너는 항해를 시작했다. 그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임신한 아내를 버린 채,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쟁터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로,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나아갔다..
항해는 비참했다. '라 빅투아르'는 전함이 아닌 상선이었고, 예상대로 거친 대서양을 제대로 항해하지 못했다. 라파예트는 갑판 아래에서 몇 주 동안 뱃멀미에 시달렸다. 주변 장교들은 자신들이 옳은 결정을 내렸는지 점점 더 확신하지 못했다. 폭풍이 배를 강타했고, 물자는 바닥났다. 영국 해군은 대서양 항로를 순찰했고, 영국 해군 호위함과의 단 한 번의 교전만으로도 라파예트의 모험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날 수 있었다. 그는 체포되어 불명예스럽게 프랑스로 송환되어 국왕의 직접 명령을 불복종한 죄로 왕실 감옥에 갇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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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두 달간의 항해 끝에 라 빅투아르호는 마침내 1777년 6월 13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조지타운 근처에 상륙했다. 라파예트는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고, 이 나라가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는 얼마나 다른지 곧바로 깨달았다. 길은 비포장도로였고, 마을은 작았다. 유럽인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사회 기반 시설은 이곳에 거의 없었다.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된 문명 중 하나를 떠나 많은 유럽인들이 황무지라고 여겼던 곳에서 반란에 합류했다. 그는 영웅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필라델피아의 대륙 회의는 유럽인 자원병들로 넘쳐났고, 그들 대부분은 골칫거리였다. 수십 명의 외국 장교들이 나타나 높은 계급, 두둑한 급여, 그리고 미군 지휘권을 요구했다. 의회는 이미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장군들을 임명했고, 그들 중 상당수는 과장된 이력서를 가진 명예욕에 불타는 사람들이었다. 라파예트가 사일러스 딘의 편지를 들고 독립 기념관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대표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에게 가라고 했다. 그러나 라파예트는 다른 유럽인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 그는 무보수로, 지휘권을 요구하지 않고 자원입대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그저 싸우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것이 의회의 관심을 끌었다.

의회는 1777년 7월 31일, 그의 임명을 승인하여 19세의 나이에 소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형식적인 것이었다. 아무도 이 부유한 프랑스 청년이 실제로 군대를 지휘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조지 워싱턴을 만났다. 두 사람은 1777년 8월 5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만찬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워싱턴은 45세였고, 지쳐 있었으며, 화력과 자금력에서 열세인 군대를 이끌고 있었고,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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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예트는 19살이었고, 눈이 휘둥그레진 채 유럽 대부분이 실패할 운명이라고 여겼던 대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깊은 유대감을 형성했다. 워싱턴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라파예트는 부모를 모두 잃었다. 워싱턴에게는 살아남은 친아들이 없었고, 라파예트는 영국군의 포탄에 의해 잃은 아버지 같은 존재를 찾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미국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관계 중 하나가 되었다. 멘토링,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군사적 동반자 관계가 어우러진 유대감이었다. 워싱턴은 라파예트를 자신의 참모진으로 영입했고, 사실상 그 십 대 소년을 자신의 휘하에 두었다. 그는 라파예트를 전략 회의에 데려가고, 대륙군 고위 장교들에게 소개했으며, 군사적 상황만큼이나 복잡했던 혁명의 정치적 역학 관계를 설명해 주었다. 대륙 의회는 분열되어 있었고 자금도 부족했으며, 주 민병대는 믿을 수 없었고, 보급망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라파예트가 합류하기 위해 바다를 건넌 군대는 워싱턴의 의지와 병사들의 완강한 항복 거부 덕분에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라파예트는 허술한 작전을 보고 오베르뉴에 있는 자신의 안락한 성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는 미국의 전쟁 방식, 미국의 정치, 그리고 세계 최강의 군대에 맞서 게릴라 혁명을 벌이는 데 따르는 특수한 어려움에 대해 가능한 모든 것을 배우는 데 몰두했다. 그는 영어를 끊임없이 공부했다.
그는 병사들과 함께 훈련했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는 화려한 작위를 가진 부유한 프랑스 출신 십대 소년을 의심했던 워싱턴의 장교들은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도착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라파예트는 첫 전투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 전투는 그를 거의 죽음으로 몰고 갈 뻔했다. 1777년 9월 11일, 윌리엄 하우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은 펜실베이니아주 브랜디와인 크릭에서 워싱턴의 군대를 공격했다. 브랜디와인 전투는 미국군에게 참담한 결과였다. 하우 장군은 대륙군을 허를 찌르는 측면 공격을 감행했고, 미국군의 우익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병사들은 사방으로 후퇴했다. 정찰 임무를 맡았던 라파예트는 명령을 무시하고 전투에 뛰어들었다. 그는 후퇴하는 병사들을 규합하고 방어선을 구축하여 진격하는 영국군에 맞서 싸우려 했다. 혼란 속에서 총알이 그의 왼쪽 종아리를 관통했다. 그는 심하게 피를 흘렸다. 그의 부하들은 그에게 전장을 떠나라고 간곡히 권했다. 라파예트는 거절했다. 그는 말에 탄 채로 계속해서 병사들을 지휘하며, 전열의 붕괴를 막고 질서 있는 후퇴를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미군이 안전한 곳으로 철수한 후에야 그는 외과의에게 상처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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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은 외과의들에게 라파예트를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치료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워싱턴은 그렇게 말했다.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다. 라파예트는 펜실베이니아주 베들레헴에 있는 모라비아 교도 정착촌에서 회복했다.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프랑스에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미국 독립 전쟁의 대의를 위해 누구에게든 호소했다. 그는 12월에 군대에 복귀했는데, 바로 미국 독립 전쟁 역사상 가장 참혹한 시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1777년 겨울부터 1778년까지 펜실베이니아주 밸리 포지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브랜디와인 전투가 라파예트의 첫 전투 경험이었다면, 밸리 포지 전투는 그에게 혁명의 진정한 대가를 깨닫게 해준 전투였다.

워싱턴 휘하의 약 12,000명 규모의 군대는 영국군에게 필라델피아를 함락시키는 등 연이은 참패 끝에 12월 중순 밸리 포지에 도착했다. 그들은 펜실베이니아 남동부의 얼어붙은 산에 겨울을 나기 위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첫눈이 내리기 전부터 상황은 심각했다. 병사들은 신발도 없이 맨발로 진지를 향해 행군했고, 그 발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군복은 찢어지고 해져 언덕을 휩쓸고 지나가는 매서운 바람으로부터 거의 아무런 보호도 해주지 못했다. 병사들은 임시방편으로 나무로 만든 허름한 오두막을 지었다. 오두막 하나에 열두 명씩 옹기종기 모여 살았지만, 오두막은 틈새로 물이 새고, 장작은 덜 말라 연기가 자욱했다. 게다가 매서운 추위가 모든 틈새로 스며들었다. 식량은 턱없이 부족해서 병사들은 자기 신발과 허리띠 가죽을 삶아 국물을 만들어 먹어야 했다.

어떤 날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다. 장티푸스, 이질, ​​폐렴 같은 질병이 막사를 휩쓸었다. 그 겨울, 약 2,000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적의 총탄 때문이 아니라 추위, 굶주림, 질병 때문이었다. 탈영은 끊이지 않았다. 병사들은 점점 더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대의를 위해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밤중에 몰래 도망쳤다. 프랑스에서 가장 웅장한 성 중 한 곳에서 깃털 침대에서 잠을 잘 수도 있었던 라파예트는 남기로 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열악한 환경을 공유했다.

자신의 돈으로 물자를 구입했고, 영하의 추위 속에서 막사를 걸어 다니며 병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초라한 배급 식량을 먹었다. 병사들은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을 알아챘다. 많은 장교들이 상대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누리는 동안 부하들은 추위에 떨었던 전쟁에서, 라파예트가 기꺼이 병사들과 함께 고통을 감수한 것은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고 싶어 했을 충성심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 겨울, 라파예트가 직면한 가장 위험한 것은 추위와 굶주림조차 아니었다. 대륙회의 내부에서는 조지 워싱턴을 겨냥한 정치적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워싱턴의 연이은 패배에 좌절한 일단의 장교와 정치가들이 그를 대륙군 사령관 자리에서 교체하기 위한 비밀 모의를 시작한 것이다.

이 음모는 '콘웨이 음모'로 알려지게 되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인물 중 한 명인 토머스 콘웨이 장군의 이름을 딴 이 음모는 사라토가 전투에서 미국 승리의 주역이었던 호레이쇼 게이츠 장군을 지휘관으로 앉히려는 것이었다. 음모자들은 라파예트를 포섭하려 했고, 그에게 캐나다 침공이라는 중요한 독립 지휘권을 제시했다. 워싱턴과 라파예트를 분리시키면 워싱턴 측근 세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라파예트는 지휘권을 수락했지만, 곧바로 워싱턴에게 편지를 써서 충성을 맹세하고 음모의 실체를 폭로했다. 캐나다 원정이 보급품 부족으로 허무하게 실패로 끝나고, 병력도 술집 하나를 채울 만큼 부족하자, 라파예트는 철수하여 음모자들을 공개적으로 망신시키고, 이 실패를 워싱턴의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당시에는 이 결정이 사소해 보였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만약 라파예트가 음모자들과 한편이 되었다면, 워싱턴은 지휘권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대륙군은 분열되었을 것이고, 프랑스의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혁명 전체가 무너졌을 수도 있다. 한동안 상황은 꽤 괜찮아 보였다. 라파예트는 사단 지휘권을 맡았고 유능한 전장 지휘관임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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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년 5월 배런힐 전투에서 그는 약 2,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필라델피아 근처의 최전방 진지로 진격했는데, 그곳은 훨씬 더 많은 수의 영국군에 의해 거의 포위된 상태였다. 영국군은 그를 포위하여 생포할 계획이었고, 이는 미국에게 치욕적인 타격이 될 것이었다. 라파예트는 함정을 간파했다. 그는 병력을 스키넥터디 강을 따라 좁은 탈출로로 유도하여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깔끔하게 후퇴했다. 영국군 장군 하우는 좌절감에 모자를 땅에 내던졌다고 한다. 20세의 젊은이가 자신을 속인 것이다. 1778년 여름이 되자 라파예트의 가치는 분명해졌다. 그는 훌륭한 장교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의 지원을 끌어내는 살아있는 모병관과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미국 지도부는 라파예트가 프랑스 궁정과 맺고 있는 관계가 전장에서의 그의 능력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1779년 1월, 라파예트는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몰래 빠져나온 충동적인 십 대 소년이 아니라, 미국의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린 상처 입은 전쟁 영웅으로 돌아왔다. 그의 다리에 남은 총알 자국이 그 증거였다. 프랑스 국민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그는 파리의 살롱과 응접실에서 유명인사처럼 대접받았다. 여성들은 멋진 젊은 후작을 만나고 싶어 했고, 지식인들은 그의 용기를 칭찬했다. 언론은 그의 모든 모습을 보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는 루이 16세 국왕과 그의 대신들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라파예트는 프랑스가 미국과의 전쟁에 전면적으로 참전하도록 적극적으로 로비했다. 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고, 외국 장관들과 만찬을 함께했으며, 여러 차례 국왕을 직접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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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투쟁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이것이 프랑스가 영국을 굴욕시키고 대서양 세계의 세력 균형을 재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미국 대사로 파리에 주재 중이던 벤저민 프랭클린과 함께 외교적 명분을 차근차근 구축해 나갔다. 프랭클린은 지적인 무게감을 더했고, 라파예트는 전장에서 싸우고 피 흘린 젊은이의 감정적인 절박함을 불어넣었다. 두 사람은 함께 프랑스 군대, 전함, 자금, 그리고 미국 땅에서의 프랑스 군사적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랑스와의 동맹은 라파예트가 귀국하기 전인 1778년 2월에 공식적으로 체결되었지만, 동맹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프랑스는 함대와 초기 지원을 보냈지만, 본격적인 군사 개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라파예트의 귀환은 모든 것을 가속화시켰다. 그는 프랑스가 이 혁명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증인이었다. 명문가 출신의 젊은 귀족이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뻔했던 것이다. 1780년이 되자 프랑스의 지원은 현실화되었다. 루이 14세는 로샹보 장군과 약 6,000명의 정규군을 미국으로 파견했다. 드 그라스 제독 휘하의 대규모 해군 함대도 보냈고, 재정 지원도 계속했다. 프랑스의 이러한 개입이 없었다면 미국 독립 혁명은 거의 확실히 실패했을 것이다. 워싱턴조차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라파예트는 그 실패를 가능하게 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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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예트는 1780년 봄 미국으로 돌아와 버지니아 주둔 미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임무는 약 7,000명의 노련한 영국 정규군을 이끌고 버지니아 시골 지역을 습격하고 있던 찰스 콘월리스 장군 휘하의 영국군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라파예트가 지휘하는 병력은 약 3,000명이었는데, 그중 상당수는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민병대였다. 라파예트는 콘월리스와 정면으로 싸울 수 없었다. 병력과 화력에서 열세였고, 그의 병사들은 조직적인 영국군 정규 보병에 맞서 정면 대결을 펼칠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영리한 전략을 택했다. 그는 이 작전을 인내와 위치 선정의 싸움으로 만들었다. 영국군을 버지니아 전역에 걸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적의 진격을 늦출 만큼만 가까이 접근하고, 정면 대결은 피하면서, 기습 공격과 매복으로 적의 측면과 보급선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콘월리스가 전투 태세를 갖추려고 할 때마다 라파예트는 후퇴했고, 콘월리스가 등을 돌릴 때마다 라파예트는 뒤쫓아갔다. 이 전략은 콘월리스를 극도로 좌절시켰다. 그는 결정적인 전투에서 적을 섬멸하는 데 익숙했는데, 이 프랑스 청년은 그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콘월리스는 라파예트가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썼지만, 라파예트는 계속해서 교묘하게 빠져나가면서도 군대를 온전히 유지했고, 콘월리스를 버지니아에 묶어두어 진짜 함정을 설치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1781년 6월, 콘월리스는 군대를 이끌고 윌리엄스버그로 진군했다. 그리고 버지니아 해안의 요크타운으로 이동하여 요크 강변에 요새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항구를 통해 영국 해군으로부터 해상으로 증원군과 보급품을 받을 계획이었다. 그럴듯한 계획처럼 보였다. 영국은 대서양을 장악하고 있었다.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시간은 이미 흘러가고 있었다. 콘월리스는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1781년 여름, 워싱턴과 로샹보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미군과 프랑스군은 연합군을 이끌고 뉴욕에서 버지니아로 남진하여 요크타운에서 콘월리스 장군을 포위 공격하려 했다. 동시에 드 그라스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는 카리브해에서 체서피크 만을 향해 북진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콘월리스는 육지에서 포위되어 바다와 단절될 것이었다. 만약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전체 계획은 무너질 것이었다. 다행히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9월 초, 드 그라스 함대는 체서피크 해전에서 영국 해군을 격파하고 만을 봉쇄했다. 콘월리스는 더 이상 증원군을 받거나 바다를 통해 철수할 수 없게 되었다. 워싱턴과 로샹보는 연합군을 이끌고 도착했다. 라파예트 휘하의 군대는 글로스터 포인트에서 방어선을 구축하여 요크 강을 건너는 마지막 영국군의 탈출로를 차단했다. 9월 말, 콘월리스는 완전히 포위되었다. 약 17,000명의 미군과 프랑스군은 요크타운에 대한 공식적인 포위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은 영국군 진영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평행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거대한 공성 대포들이 진흙탕을 헤치고 앞으로 끌려와 참호 곳곳에 배치되었다. 1781년 10월 9일 포격이 시작되자 그 위력은 엄청났다. 워싱턴 장군이 직접 첫 포를 발사했다고 전해진다. 몇 시간 만에 수십 문의 중포가 사방에서 영국군 요새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포탄은 흙벽을 부수고 건물을 무너뜨렸으며, 파편은 빽빽하게 들어찬 영국군 진지를 휩쓸었다. 소음은 끊이지 않았고, 땅을 뒤흔드는 폭발음은 수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영국군은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진지 사이를 안전하게 이동할 수도 없었으며, 쓰러지지 않고서는 대포를 제대로 조작할 수도 없었다. 항구에 정박한 함선들은 계속해서 포탄 공격을 받았고, 콘월리스 장군은 나포를 막기 위해 몇 척의 함선을 침몰시키도록 명령했다. 참호는 계속 전진했다. 영국군 진지에 더욱 가까이 두 번째 참호가 구축되기 시작했지만, 9번 보루와 10번 보루라는 두 개의 견고한 영국군 진지가 가로막고 있었다. 이 두 보루는 직접 공격으로 점령해야만 했다.

1781년 10월 14일 밤, 두 개의 공격 부대가 어둠 속에서 진격했다. 알렉산더 해밀턴 대령이 지휘하는 미군은 제10보트를 향해 돌격했고, 프랑스군은 총검을 장착한 채 제9보트를 동시에 공격했다. 미군은 오발 사고로 공격이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총에 총알을 장전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적의 포화를 뚫고 개활지를 가로질러 도끼로 나무 방어벽을 부수고 보 안에서 백병전을 벌였다. 전체 공격은 약 10분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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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의 9번 보루 공격 역시 맹렬했고,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 보루들이 함락되자 연합군은 이제 영국군 방어선의 심장부를 향해 직접 사격할 수 있게 되었다. 콘월리스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다. 10월 17일, 한 영국군 북치는 소년이 성벽 위에 나타나 하얀 손수건을 흔들었다. 콘월리스가 항복을 요구한 것이다. 이틀 후인 1781년 10월 19일, 약 8,000명의 영국군이 요크타운에서 행진해 나와 무기를 내려놓았다. 군악대는 "세상이 뒤집혔다"라는 곡을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제국이 가장 중요한 미국 식민지를 농부와 프랑스인으로 이루어진 오합지졸 연합군에게 빼앗긴 것이다. 당시 라파예트는 24살이었다. 요크타운 전투에서의 승리는 사실상 미국 독립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공식적인 협상은 2년 더 이어졌고, 파리 조약은 1783년 9월에야 체결되었다. 그러나 요크타운 전투 이후, 모두가 전쟁이 끝났음을 알았다. 영국은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의지도 자원도 없었다. 라파예트는 서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는 대서양 양쪽에서 영웅이었다. 미국에서는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린 외국인 자원병으로 칭송받았고, 프랑스에서는 대영 제국을 굴복시킨 젊은 귀족으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라파예트의 이야기는 미국 독립 혁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라파예트는 그 중심에 있었다. 그는 미국의 독립 선언과 버지니아 권리 장전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인권 선언'을 발표하는 데 일조했다. 또한 혁명 초기에는 파리에서 국민위병을 지휘했다. 그리고 상징적인 의미가 가득한 행동으로, 그는 프랑스 혁명의 시작을 알린 감옥 요새인 바스티유의 열쇠를 조지 워싱턴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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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 버넌에서. 그 열쇠는 오늘날에도 워싱턴 저택의 복도에 걸려 있다. 라파예트의 프랑스 혁명 시기는 복잡했고, 결국 비극적이었다. 그는 왕정과 급진적인 혁명가들 사이에서 온건한 노선을 택하려 했지만, 양쪽 모두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는 반역자로 선포되어 프랑스를 탈출했고, 오스트리아군에 체포되어 5년 동안 잔혹한 감옥에 갇혔다.

그의 아내 아드리엔은 프랑스에서 투옥되었고, 공포 정치 기간 동안 처형될 뻔했다. 라파예트가 미국에서 추구했던 이상은 정작 고국에서는 그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는 결국 1797년에 석방되어 나폴레옹 통치하의 프랑스로 돌아왔고, 이후 수십 년 동안 헌정 정부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나폴레옹의 제국주의적 야욕에 반대했고, 부르봉 왕정 복고를 조심스럽게 지지했으며,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매우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에도 민주주의 이상을 계속해서 옹호했다. 1824년 라파예트가 고별 순방을 위해 미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 그 당시 신생 국가가 보여준 그 어떤 환영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는 16개월 동안 24개 주를 모두 방문했다. 그가 방문하는 모든 도시의 거리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운집했고, 혁명 참전 용사들, 이제 60대와 70대의 노인들은 그를 보자 눈물을 흘렸다. 의회는 그에게 20만 달러의 상금과 플로리다의 넓은 토지를 하사했다. 전국 곳곳의 마을, 카운티, 공원, 거리, 도시들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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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많은 곳들이 그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루이지애나주 라파예트, 인디애나주 라파예트,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엣빌,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그의 별장 이름을 딴 조지아주 라그랑주 등이 그 예다. 그는 대륙군의 마지막 생존 장군이었으며, 미국인들은 그를 국가 건설의 기반이 된 이상을 기리는 살아있는 기념비처럼 여겼다. 라파예트는 1834년 5월 20일 파리에서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벙커힐 전투에서 가져온 흙에 묻혔는데, 이는 그가 바다를 건너 참여했던 조국과의 마지막 연결고리였다. 라파예트에 대해 영원히 기억되는 것은 그가 무엇을 했는지뿐만 아니라 언제 했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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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십 대 시절에 왕에게 저항했고, 19세에 브랜디와인 전투에서 총알을 맞았으며, 20세에 밸리 포지 전투에서 살아남았고, 24세에 요크타운 전투에서 포위망을 좁히는 데 기여했다. 소수의 결정에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던 시대에, 경험은 부족했지만 용기는 넘쳤던 프랑스 고아 소년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초대받지도 않고 나타나 대의를 위해 피를 흘리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던 그 프랑스 소년 또한 기억해야 한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ue, 07 Jul 2026 12:50:4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A service commemorating the 250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the United States was held at Cornerstone Chapel.]]></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41]]></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607/6a4c2b7c8c23c2340532.jpeg" alt="" />

아침이 되면 반드시 하는 것이 deck에 나가서 참외 plant에 물을 주는 것이다. 요새같이 더울때는 한번 주는 것으로 부족해서 서너번은 주어야 한다. 왜냐면 화분에 심었고 한두개가 아니라 많이 심어서 흙에 스며둔 물이 빨리 없어지는 것 같기에 말이다.
앞으로 열매가 주렁 주렁 달리면 더 많은 수분이 필요하다. 작년에 하루 물을 주지않았더니 한 나무가 말라서 죽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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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열매가 달렸는지 몰랐는데 아내가 말해서 하나가 달린 것을 보았다. 작년에는 10개의 참외 열매를 거두어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었다.
금년에는 아무것도 화분에 심지않고 기르지 않으려고 했다. 여러 곳에 여행을 갈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뿌렸던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기에 키우게 되었고 열매가 맺혀 시들기까지 어디든 며칠 가있지 못할 것 같다. 아마 가을이 시작되기전에는 참외식물의 사명이 끝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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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조그만 씨에서 저렇게 큰 plant가 자라는지 도저히 과학으로나 인간의 지혜로는 설명이 되지않을 것이다. 오로지 God의 영역에서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참외를 보면서 God의 임재를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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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이른 아침에 St.Paul UMC에서 하는 Lord‘s Pantry에 아내와 같이 가서 두시간반동안 봉사를 했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7-8명의 여자교인들이 봉사했는데 나이가 94세인 남자가 한명있었다. 그들과 옷이나 기저귀가 필요한 주민들에게 제공되는 물건들을 정리해 주면서 대화를 참 많이 했다.
매달 첫째 토요일과 세번째 목요일 오후에 봉사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참석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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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미국이 건국된지 250주년을 기념하는 예배가 Cornerstone Chapel에서 있었다. Stage의 스크린에 화려하게 만든 영상을 띄우고 미국을 세우는 노래와 미국 건국에 대해서 기독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책을 쓴 저자가 말을 전했다. 미국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성취한 그들이 자기들이 영국에서 왔으니 영국인이라고 했을까? 그들은 미국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을 것이기에 나도 미국인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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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안에서 비때문에 늦게 시작된 President Trump의 연설과 그후에 있었던 불꽃놀이가 볼 만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힘든 싸움을 했고 마침내 성취한 독립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생각하니 나자신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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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통령을 지낸 워싱턴 그는 왕으로 군림할 수도 있었고 4년제를 두번이 아니라 죽기전까지 할 수있었을 것이지만 8년간 President를 하고 마쳐 미국의 건국역사의 주춧돌이 되었다. 미국에 그의 이름을 쓴 곳이 얼마나 많은가? 부럽고 이제 나도 그를 나의 대통령으로 respect하고 있다. 그가 살았던 Mount Vernon은 원래 8000acre였는데 지금은 500acre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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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는 USA와 Belgium의 축구경기가 있다. 방금전에 Portugal과 스페인의 경기에서 스페인이 이겼는데 USA는 게임에서 이겨 quarter final에 갈 수 있을지 기대가 간다. 오늘 이기고 두번 더 이기면 결승전에 간다. USA!!!

내일은 금년 두번째로 RV camping을 가기로 했다. 비가 온다고 하는데 2박3일로 갔다 올 생각이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Mon, 06 Jul 2026 22:26:4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If I were to tell Americans that I needed a friend, they would make the extra effort to truly open up to me.]]></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40]]></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607/6a481e3c984fe9198835.jpeg" alt="" />

내일이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난 어제 flag를 차고앞에 달았다. 주위에 flag를 집앞에 다는 집이 없기에 나라도 달아 상기시켜려는 생각이 있어서 내일 모래까지 걸어두려고 하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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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앞집의 John이 flag를 집앞에 걸었다. Flag를 보니 새로 산 것 같이 깨끗했다. 아마 John이 사서 달려고 했지만 멋쩍었는데 내가 집앞에 거니 따라 달은 것 같다. John은 이락에서 이민와 BMW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이번 FIFA World Cup 2026년 game의 미국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서 같은 미국인으로 pride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Iraq도 한국팀과 같이 32강팀에 들지 못하고 exit했다. 여튼 flag를 집앞에 건 것에 박수를 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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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 일찍 아내가 일하러 나가 HVAC에 관련된 책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아내는 매주 금요일마다 일하기로 했는데 오랜만에 나와 떨어져 있으니 살맛이 난다고 동료들에게 말할 것같다. 사실 돈이 필요해 일을 해야한다면 내가 part time으로 일해도 된다. 하지만 닥터김 직장에 아내가 없으니 힘들다고 하니 도움을 주려는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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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7/4로 워싱턴 DC안이 250주년 행사로 북적이고 밤에는 불꽃놀이로 요란하겠지만 난 아내와 함께 내일 아침 7:30까지 Lord’s Pantry라고 한 감리 교회에 가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물품을 전달하고 먹을 것을 제공하는 일을 돕기로 했다. 교회가 UMC라서 좀 꺼려지는데 그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니기에 참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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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OBC 교회를 찾아가 이제 두달 가까이 다니면서 home church를 찾았다는 말을 하면서 church group이나 봉사하는 일에 적극 참석했었다. 하지만 미국인 교회 교인들도 인간이기에 나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집에 초청한 사람은 역시 한국인뿐이었다.

내가 미국인들에게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들은 감정에 끌려 살 지않고 말씀에 따라 살려는 사람들이기에 extra 시간을 내서라도 확실하게 마음을 열어 주겠지만 그렇게 하기가 싫어서 접근 방식을 다르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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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멤버쉽을 가지는 것을 내년으로 미루고 소그룹에 참석하는 것도 주중이기에 이제 그만 두려고 한다. 대신 주일 예배때 매주 같은 자리에 앉아 얘기하는 Jim부부와 한 흑인부부에게 내가 핸디맨인 것을 말하고 도움이 필요한 것을 돕겠다고 하면 조금은 더 교제를 돕게 되지않을까 생각한다.

솔직히 어느 한인교회가 미국인교회처럼 성경적으로 철저히 지키면서 모범이 되는 교회가 있다면 다음 주일이라도 그 교회에 다니고 싶다. 하지만 한인교회는 이민교회라 그런지 무엇보다 목사의 말씀이 약하고 교회가 성경적으로 운영되지않는 곳이 많은 것 같다.

https://youtube.com/shorts/17D4ayR3sbY?is=18RoQvhpxekJ559w
예로 위의 short video를 보면 두교회를 다 지나치게 과장을 했다고 생각된다. 두 교회의 교인들의 양극의 노골적인 말이니 행동이 다 지나치고 현실적이지않다. 하지만 한인교회나 미국인 교회를 보면 어느 교회가 어느 교회에 가까울까?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정보다는 법에 따라 사는 것이 강하다. 해서 교회안에서 다른 인종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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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정원에는 무궁화 꽃이 많이 피었다. 무궁화를 영어로 Rose of Sharon이라고 하는데 아침마다 물을 주면서 나는 나의 몸이 한국의 어느 곳에 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Fri, 03 Jul 2026 20:42:3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Think of Psalm 23. What comes to mind?”]]></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39]]></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7/202607/6a480c41399cc2923373.jpeg" alt="" />

잠시 눈을 감고 시편 23편을 떠올려 보십시오.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아마도 푸른 언덕과 잔잔한 시냇물, 부드러운 구름 아래 풀을 뜯는 양 떼들. 마치 영국의 시골 풍경과 유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 시편을 목초지에서 작성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유대 광야에서 이 시편을 작성했습니다. 그곳은 푸르지 않습니다. 백악질의 석회암과 갈색 먼지로 뒤덮인 곳입니다. 강수량은 매우 적습니다. 많아야 1년에 13cm 정도입니다. 땅은 햇볕에 갈라지고, 포식자들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바위 절벽과 같은 지형은 양 떼를 홀로 방치할 경우 며칠 내에 양들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지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 인근 황무지 가장자리에서 아버지의 양 떼를 돌보았습니다. 이후 사울 왕의 추격을 받았을 때, 다윗은 수년간 해당 사막 협곡에 은신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선언했을 때, 이는 단순한 축하의 말이 아닌 생존 지침서 작성의 일환이었습니다. 그 첫 두 히브리어 단어만으로도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은 다윗의 노래인 “미즈모르 레다비드(Mizmor le-David)”로 시작하며, 모든 것의 근간을 이루는 말씀이 제시됩니다. “야훼 로이(Yahweh Roi)”.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히브리어로 목자를 의미하는 단어 “로에(roe)”는 “동반자” 또는 “가까운 친구”를 뜻하는 또 다른 히브리어 단어와 어원을 공유합니다. 룻이라는 여인의 이름에도 동일한 어원이 존재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은 그의 목자시니”라고 말할 때, 히브리어 원문은 더욱 심오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는 “하나님은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실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멀리 떨어진 관리자가 아닌, 신실한 동반자라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대부분의 영어 번역이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나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영어 번역은 마치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듯합니다. 마치 모든 것을 갈망하는 것을 완전히 멈추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말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로 엑사르”로, “내게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윗은 자신이 어떠한 욕망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 목자와 함께라면 필수적인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누릴 수 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막 한가운데, 도피 중에도, 주변 환경이 황량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선적인 말이 아닌, 머리 위로 적들이 도사리는 협곡에 숨어 있는 한 개인의 전쟁 외침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셨도다.”
유대 광야라는 배경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셨도다.” 양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양은 억지로 눕힐 수 없습니다. 양은 완전히 안전하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며, 어떠한 갈등도 없을 때에만 눕습니다. 만약 어떤 필요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양은 서 있습니다. 따라서 시편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눕게 하셨도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아무것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은 사막에서. 푸른 목초지. 유대 광야에서 풀은 일 년에 겨우 석 달 정도만 푸르게 자랍니다. 나머지 기간에는 갈색으로 변해 드문드문 자랍니다. 목자는 어느 언덕에 아침 이슬이 맺히는지, 어느 북쪽 경사면에 습기가 더 오래 머무는지, 어느 골짜기에 양떼가 과밀하지 않게 풀을 뜯을 수 있는 충분한 풀밭이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했습니다.

광야에서 푸른 목초지를 찾는 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깊이 있는 이해의 행위였습니다. 목자는 어머니가 아이의 얼굴을 아는 것처럼 그 땅을 알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당신의 삶의 풍경을 아십니다.

“그가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도다”
히브리어로 “잔잔한”은 “메누홋”입니다. 이는 정지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평온함을 의미합니다. 어근에는 깊은 위안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웅덩이는 영혼의 안식을 제공하는 물입니다. 이는 양들이 급류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양털이 젖어 물속으로 끌려들어갈 것을 우려하여 빠르게 흐르는 시냇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목자는 양떼가 두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잔잔한 물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분은 내 영혼을 회복시키십니다.”
“회복시키다”라는 히브리어 단어 “야샤베브”는 “슈브”라는 어근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슈브”는 구약 성경 전체에서 회개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단어와 동일하며, 되돌아가다, 돌아오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스파에서 편안한 시간을 제공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길 잃은 양은 스스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합니다. 목자가 양을 데려옵니다. 훌륭한 목자는 양들을 회개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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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도다.”
여기서 “길”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마아갈”은 곧은 길이 아닌 원을 의미합니다. 굽이치고, 되돌아오고, 순환하는 길을 나타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의의 원을 그리며 인도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누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십시오. 동일한 교훈을 두 번이나 마주한 적이 있습니까? 새로운 시기에 동일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히브리어 원문은 이러한 상황이 실패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성장의 나선형입니다. 익숙한 풍경일지 모르지만, 당신은 동일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단계 더 높은 곳에 있거나 새로운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그가 나를 눕게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다윗이 골짜기로 들어서는 순간, 표현이 변화합니다. “그”라는 언급을 멈추고 “당신”이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당신의 지팡이와 막대기.” 이는 문법적인 오류가 아닙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언급을 줄이고, 오히려 하나님께 직접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시편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가장 친밀한 언어를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당신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시편 23편은 정확히 55개의 히브리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라는 구절이 정확히 수학적으로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앞뒤로 각각 26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이 시편 전체는 하나의 진리, 즉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사망의 그림자 골짜기”.
히브리어로는 “tsalmavet”입니다. 수 세기 동안 학자들은 이것이 “사망의 그림자”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가장 깊은 어둠”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논쟁해 왔습니다. 결국 정답은 둘 다입니다. 어근 “tsel”은 그림자를, “mavet”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본 텍스트는 죽음의 의미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관용구로서 칠흑같이 어둡고 뚫을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즉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캄캄한 어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윗은 단순한 죽음의 순간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앞길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슬픔, 시야를 가릴 정도의 깊은 슬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우울감, 계획했던 미래를 송두리째 지워버리는 진단, 바로 그 골짜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통과하여”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골짜기를 통과하여 걸어가야 합니다. 출구가 없는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골짜기를 돌아가거나 존재하지 않는 척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통과해야 합니다. 골짜기는 실재하지만, 우리의 영원한 거처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다윗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위로하사”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도구입니다. 히브리어로 “셰벳”이라고 하는 막대기는 무겁고 무딘 무기였습니다. 목자는 이를 사용하여 사자나 곰의 머리를 깨부수곤 했습니다.

창세기 49장에서 “홀”로 번역된 것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이는 유다의 통치자에 대한 예언입니다. 지팡이는 목자가 당신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물리칠 권위와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막대기, 즉 “미셰네트”는 달랐습니다. 길고 가늘며 끝이 구부러진 형태였습니다. 목자는 이를 사용하여 길을 잃은 양의 목을 부드럽게 잡아 다시 인도했습니다.

“둘 다 그를 위로한다”
진정한 위로는 우리를 보호할 만큼 두려워하시면서도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실 만큼 부드러우신 하나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편의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이미지가 완전히 바뀝니다. 다섯 절 전까지 다윗은 목자와 양의 비유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5절에 이르러 비유가 전환됩니다. 갑자기 다윗은 더 이상 목자가 아닙니다.

양 한 마리가 왕실 연회의 손님으로,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저를 위해 상을 차려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안전한 방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제거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펼쳐졌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누군가를 위해 상을 차려주는 것은 깊은 존경의 표시였으며, 단순한 식사 제공을 넘어 정식으로 초대하는 행위였습니다.

“앉아서 쉬고, 섬김을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저를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저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이제 기름 부음이 시작됩니다.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십시오.” 선지자 사무엘은 저에게 실제로 기름을 부어 하나님께 선택받아 왕이 되었음을 알렸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 “디샨타”는 왕에게 기름을 부을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마샤흐”보다 그 의미에 더욱 부합하며, 풍요로움과 넘침을 의미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제물의 재에서 나오는 기름과 연관 짓고, 시편 23편이 시편 22편 바로 다음에 배치된 점을 주목합니다. 시편 22편은 십자가에서 메시아께서 겪으신 고난을 거의 하나하나 묘사하고 있는 반면, 시편 23편의 기름은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아름다움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가득 찼나이다” 또는 “내 잔은 충분하다”는 표현과는 달리, 넘치도록 가득 찼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레비아”는 포화, 흠뻑 적심, 넘치도록 주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는 복을 세심하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부어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실로 선과 자비가 내 평생에 나를 따르리라.” 영어 단어 “follow”(따르리라)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 텍스트는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전달하며, 선하심과 자비가 편안한 거리를 두고 화자를 따라오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히브리어 단어 “라다프”는 “따라오다”라는 의미보다는 “추격하다”, “사냥하다”, “쫓아내다”라는 군사적 맥락에서의 의미를 지닙니다. 다윗은 좋은 일들이 자신을 따라온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적극적으로, 그리고 끈질기게 자신을 쫓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마치 멈추지 않는 수색대처럼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러한 행위는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비와 선함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선하심과 자비는 화자의 삶의 모든 날 동안 지속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
”거하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앉다”에 더 가깝습니다. 사울과 원수들을 피해 광야와 골짜기를 헤매며 평생을 도망 다니던 다윗은 마침내 한곳에 안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에게 떠나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23편은 축하 카드나 장례식 순서지를 걷어내고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목자가 멀리서 돌보는 자가 아니라, 화자와 함께 삶을 나누는 동반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길”은 푸른 초원이 안락함을 위한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황무지에서도 화자를 어디로 인도해야 할지 정확히 아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골짜기”는 실재하지만, 끝이 아닙니다. 화자는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이지,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어두운 순간이 바로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 오시는 순간이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함과 자비는 화자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화자를 향해 달려오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본 시편에서 유의해야 할 핵심 요소들이 있습니다.
첫째, “메누홋(menuchot)”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압도하는 물이 아닌 잔잔한 물로 인도하십니다. 현재 삶이 홍수처럼 느껴진다면, 이는 하나님의 인도 방향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감당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둘째, 본 시편의 핵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55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본질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는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본질입니다.

셋째, “라다프”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삶을 방황하며 좋은 일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함과 자비는 이미 우리를 쫓고 있으며, 우리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Fri, 03 Jul 2026 19:19:3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7"><![CDATA[자료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 IT WAS AN HONOR TO FIGHT WITH YOU AGAINST OUR ENEMIES.”]]></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38]]></link>
			<description><![CDATA[오늘은 저녁 8시에 미국팀의 경기가 있다. 상대편은 Bosnia…팀인데 Group B에서 3번째로 한국보다 1점 더 많은 성적을 가진 팀이다. 미국이 이기기에 어려운 팀은 아닐 것으로 예상하고 볼 생각이다.

https://youtube.com/shorts/LTbWJZ5F2pw?is=5KDWu4BgMacEckUY
지난 월요일에 있었던 일본과 브라질의 게임에서 일본이 2:1로 지는 것을 보면서 역시 동양인으로 체력이 쳐지지않나 생각했다. 일본팀은 최선을 다한 것 같다. 경기가 끝나고 허전하게 경기장을 떠나는 일본 선수들에게 관중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일본은 100년 계획을 가지고 FIFA World Cup에 도전하겠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유럽이나 남미 북미팀과 같이 diversity를 가진 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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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2개 팀에서 16개팀이 추려지는데 Argentina팀에는 Messi가 있고 France에는 Mbappe가 있다. 전문가들 중에는 Argentina와 France가 결승전에서 만나 France가 이길 것으로 예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난 미국팀이 Semi final까지 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느팀이 결승에 가든 상관없이 난 미국팀을 응원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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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밖에 나가면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있다. 몸으로 느끼는 체감온도는 114도라고 한다. 섭씨로 45도가 된다고 하는데 air conditioner가 없는 사람들은 도피처에 가야겠구나 생각이 든다.
유럽에서 축구경기를 보려고 미국에 온 사람들이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어디 가든지 air conditioner가 있어 더위를 잊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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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SSB를 신청하고 7월부터 받게 된다고 말했다. 내가 받는 것과 합치면 생활하는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내가 일할때보다 수입이 적어지기에 지출하는데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이틀 후부터 아내가 다시 한주에 하루 일을 시작하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만약 돈이 모자르면 내가 part time으로 일을 하면 된다. 지금까지 electric car charger Nema 14-50를 다섯군데 install해 주었고 HVAC도 이제는 거의 이해하기에 고쳐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주말부터 unfortunate people를 도와 주는 Lord‘s Pantry에 찾아가 봉사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계속 아내와 같이 도우려고 한다. 앞으로 얼마 살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주님이 원하는 일을 하고 그가 가르치는 삶을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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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가 가장 큰 결정을 하고 더이상 후회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밤에 잘때 옆에 cell phone을 놓지않는 것이다. 잠이 오지않아 할 일 없이 이것 저것 보다가 원치않는 것을 보게 되고는 했기 때문이다.
대신 책을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배우게 되니 좋다. 다른 방에서 자는 아내와 혹시 필요할 지 모르는 communication을 위해 오래전에 쓰던 Walkie Talkie를 꺼내서 아내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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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 OBC의 주일 예배때는 빠지지않고 wine을 마신다. Communion을 매주일 하는데 일주간을 살면서 알고 모르게 지은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한주를 새롭게 살게 하고자 하는 뜻인 것 같다. 빵조각과 wine을 조그만 컵에 담아 마시는데 조금 취하는 느낌이기도 하다.
난 communion에서 예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마실때마다 기억하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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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때 크리스챤들을 원형극장에 집어넣고 사자와 호랑이의 밥이 되게 하는 참혹한 형장말이다. 난 원형극장에 앉아 크리스챤들의 죽음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고 로마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을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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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마 제국이 번성하던 시기, 많은 이교도들이 초기 기독교인들이 성찬식(또는 성체성사)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라고 엄격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실제로 식인 행위를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이러한 생생한 묘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이 종교를 혐오스럽게 여겼고 또 초기 기독교인들이 서로를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는데, 이는 로마인들 사이에서 그 종파가 근친상간을 저지른다는 왜곡된 소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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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관리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프론토나 작가 미누키우스 펠릭스와 같은 이교도 비판자들은 이러한 오해를 이용해 기독교인들이 의식 중에 아기를 살해하고 반죽을 입혀 비밀 의식에서 먹어 치운다는 선전을 퍼뜨렸으며 로마 황제들은 제국의 통제력을 유지하고 대중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잔혹한 공개 처형을 축제와 경축일 행사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로마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사람으로 보지않고 짐승으로 보았는지 모른다.

로마군인들은 크리스챤들을 잡아들이면서 죽음이 두려워 자기는 예수를 믿지않는다고 말한 사람들을 처형장에 앉게 하고 기독교인들의 죽음을 보게 하고 만약 슬픈 표정이라든지 눈물을 흘리거나 하면 같은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하고 그들도 형장에 집어 넣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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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미국에서 사는 나에게는 옛날 믿음을 지키던 기독교인들이 받았던 박해와 형벌 처형은 없다. 하지만 살면서 믿음을 지키다가 어려움을 당하는 형제 자매들의 소식은 자주 듣고 나자신 예수 믿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다. 더이상 난 내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제 한 친구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에게 편지를 썼다.
<strong>“It was an honor to get to know you, live and study together, work hard—even in different places—and finally face the final finish line together. Thank you, my friend. Stay healthy</strong>.”]]></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Thu, 02 Jul 2026 00:43:5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I will well and faithfully discharge the duties of the office on which I am about to enter. So help me God.]]></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37]]></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202606/6a4272c7859da4041351.jpeg" alt="" />

이제 오늘부터 FIFA football 32강이 시작되는 날이다. 32팀의 대전표를 보니 아시아에서는 일본, 아프리카에서는 3-4나라의 이름이 올려져있다.
난 집에 뉴스채널이 없다. 스포츠채널은 YouTube로 highlights를 보았는데 오늘 있는 일본의 게임을 보기 위해 매달 $20을 내는 YouTube의 Fox One을 다시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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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한 한인 친구를 만났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시민권도 가진 친구인데 이제 한국이 탈락했으니 미국팀의 경기를 보면서 응원할거냐고 물으니 않본다고 잘라 말했다. 내 생각에는 대부분 한인들이 같은 판단을 할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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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지로 미국에 살면서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미국시민이 되기 위해 인터뷰를 하고 “본인은 대내외의 모든 적으로부터 미국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할 것이며, 이에 대해 진정한 신념과 충성을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또는 확언)합니다. 또한 본인은 어떠한 마음속의 유보나 회피하려는 의도 없이 자발적으로 이 의무를 받아들이며, 앞으로 수행하게 될 직무를 성실하고 충실하게 이행할 것을 선서합니다. 신이시여, 저를 도우소서.”라는 선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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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선서는 말뿐이지 한인들에게 전혀 미국에서 사는데 지켜야 할 자기의 아무것도 되지않는 것 같다.
미국에서 45년을 살은 한 친구도 “우리는 한국 사람이잖아?”라고 말하면서 미국을 떠나 한국에 가서 살며 미국에서 Social Security Benefit은 받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가 Facebook에 올린 글을 보니 한글로 쓰지않고 영어로 썼다. 난 아니 한글을 그렇게 세계적으로 잘 만들어 진 글이라 말하고 또 한국에서 지금 살면서 왜 영어로 글을 썼나? 아마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미국인으로 보이려나? 의문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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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인교회에 다니며 미국인들과 영어로 말하고 평상시 매일 영어대화를 YouTube channel로 익히고 책을 읽고 아내와도 영어로 대화하면서도 아직도 자유롭게 미국인들과 대화하는데 알아 듣지 못하는 말이 많아 영어가 힘들다고 말하는데 아예 영어를 improve하려는 생각이 없이 “영어를 못해!”라고만 말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생각했다. 어제는 물을 마시는데 Chug(to drink very fast withoutstopping)가 있고 전에 알았던 Gulp(to drink quickly in big amounts)가 다른 것을 알았다.

미국에 이민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정체성이 혼동되는 것은 그렇다치고 교회에 다니면서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다를까? 믿기전과 믿은 후에 다른 것이 있나? 성경에는 무서운 말들이 많다.

<strong>”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strong>
<strong>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13:2-3]</strong>

미국에 와서 오래 살면서 시민권을 가지고도 자기를 솔직히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람과 다른 것은 born again하고 크리스챤이라고 자신을 말하면서 믿기전과 아무런 변화가 없는 행동을 하지않지만 자기를 non Christian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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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위선자“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된다.
‘위선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말과 행동)과 내면의 모습(실제 의도나 행실)이 다르고 ’자신을 포장하여 타인을 속이고 이익을 취하려는 태도‘를 보여 ’가식적인 사람', '이중인격자'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성경에는 예수가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을 ”뱀들아! 회칠한 무덤“ 겉으로는 옳게 보이고, 속으로는 불법이 가득한 자들이라 말했다.

닌 위선자가 되지않기 위해 법적으로 한국인이 아니기에 미국인이 되려 내가 할 일을 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오늘도 어떻게 살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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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는 내가 사는 곳 주위에 혹시 가난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는 단체나 교회를 찾아 보았다. 시간되면 찾아갈 생각이다. 어떤 취미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종착점을 통과하고 싶지는 않기에 말이다. 아내가 한군데 전화해서 토요일 7:30에 찾아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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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오늘 1시에 일본팀과 브라질팀의 게임이 있어 오늘 아침 Fox one을 subscribe해 보고는 7월말에 FIFA final game이 끝나면 cancel하자고 했더니 “왜 얌채같이 그러느냐?”고 해서 나는 돈을 save하려고 했지만 8월부터 NFL game이 시작되니까 계속 보자고 말했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Mon, 29 Jun 2026 13:27:0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2"><![CDATA[한주간 배우며 생각한다]]></category>
		</item>
				<item>
			<title><![CDATA[Coach Hong thought only of himself, leaving Korea—and, of course, the Korean people—out of the equation.]]></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36]]></link>
			<description><![CDATA[<img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202606/6a3fd1a98215c7473636.jpeg" alt="" />

지난 엄마날에 아들부부가 집에 와서 카드 한장을 놓고 갔다. ‘The national Parks and…Pass’였다. 근처에 National Park이 있는지 찾아 보았다.
해서 그저께는 Prince William Forest Park에 갔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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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Great Falls Park에 갔었다. 입장료가 $20이니 이미 $40은 save한 셈이다. 웅장한 포토막강의 상류에 위치한 GFP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걷거나 구경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Shenandoah National Park에 가자고 아내에게 말했지만 거리가 멀어 아마 RV를 가지고 가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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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는 일본과 스웨덴의 축구경기와 미국과 터키의 경기를 보았다. 일본은 비겼지만 미국은 3:2로 졌다. 터키를 쉽게 미국이 이길 것으로 생각한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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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2팀안에 들어간 미국과 보스니아 그리고 일본과 브라질의 경기 일정을 보았다. 일본이 브라질과의 대결을 앞두고 훈련을 많이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팀이 South Africa팀에게 진 것은 내게 뜻밖의 일이었다. 쉽게 이길 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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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보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난 모른다. 하지만 그를 보면서 한 친구가 “한국 사람은 자기밖에 모른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물론 한국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 그래도 리더라는 한국인들은 전체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교회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행동한 교회 목사 장로들 수두룩하다. 또 대학 동문회에 선배라는 X이 그랬다.
이순신장군이 총에 맞아 죽게 되었을때 그는 부하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 Morale, 사기 진작(士氣振作)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군인들의 사기는 승패를 좌우하는 것을 보아왔고 그는 ‘boosting morale’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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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국제적으로 이름이 난 선수이고 또 한국팀의 주장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선수를 동료선수들이 모르게 전반전에서 뺏다는 것은 홍감독이 한국팀의 승리보다는 자기가 ’손‘없이 이겼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졸수였다. 그에게는 한국이 없고 물론 한국민도 없이 자신만 생각한 것 같다.
손흥민은 한국팀과 한국인들에게 이순신같이 boosting morale을 줄 수 있는 존재였고 S Africa팀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였기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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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Argentina팀의 경기를 보면 Lionel Messi를 본다. 그를 중심으로 팀은 승리한다.
한국은 중 고등학교도 평준화라는 깃발아래 앞서가는 학생들을 다 내린 역사가 있다. 한국 축구협회의 늙다리들이 한국보다는 자기를 생각해 홍감독을 선택한 것이 뒷받침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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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닥터김네 집에 가서 RV에 쓸 Nema 14-50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는 11시에 만나서 식사를 먼저 하자고 만날 식당의 주소를 보내주었다. 교통을 생각해 한시간전에 집을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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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a 14-50는 240volt 50amp로 주로 전기차 charging하는데 한다. RV에는 120volt를 쓰는데 XW, YW가 각각 120volt이기에 RV안에 YW 120volt 50amp, XW가 120volt 50amp 두전기선이 연결되어 RV안에는 120volt 100amp가 된다. 보통집에 들어가는 전력이 200amp이니 100amp면 충분히 두개의 에어컨디션과 dryer를 쓸 수 있을 것이다.]]></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Sat, 27 Jun 2026 13:34:1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1"><![CDATA[오늘의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The Life I Left Behind]]></title>
			<link><![CDATA[https://jamespage.org/?kboard_content_redirect=435]]></link>
			<description><![CDATA[<img class="size-medium wp-image-3640" src="https://jamespage.org/wp-content/uploads/2026/06/IMG_7300-300x234.jpeg" alt="" width="300" height="234" />

알래스카 시워드에 위치한 저택 인근, 보랏빛 설산과 폭포의 장엄한 경관을 바라보며 깊은 감회에 젖었습니다. 뉴욕 북부에서 출발하여 미국 전역을 유랑하던 저에게 드디어 안락한 주거, 만족스러운 직업, 그리고 상사와 동료들의 존경을 받는 안정적인 삶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1991년, 잊으려 애썼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바로 딸 로리의 목소리였습니다. 16년 만의 연락이었습니다. 로리는 마치 16일 만에 재회한 듯 들뜬 목소리로 결혼 소식을 전하며 신랑에게 인도해 줄 수 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멋지네”라고 간신히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틀 후 다시 전화하겠다고 약속했고, 로리의 달라진 목소리에 약간의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복잡해져 침실 의자에 주저앉아 눈을 감고 잠시 사색에 잠겼습니다.

1964년, 해병대 휴가 중 루이즈라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다음 해 8월에 혼례를 올렸습니다. 1965년 12월 군 복무를 마친 후, 저희는 뉴욕주 북부에 정착하여 스티븐, 짐, 로리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제대 후의 삶은 예상보다 훨씬 고단했습니다. 직장을 전전하며 가족을 부양할 만큼 충분한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저에게 맞지 않는 일들만 계속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군 복무 시절의 체계적인 생활이 그리워질 정도였습니다. 루이즈는 전화 교환원으로 시간제 근무를 시작하면서 점점 길어지는 제 공백기를 묵묵히 감당해 주었습니다. ‘루이즈는 잘 해내는데, 나는 왜 못할까?’라는 자책감이 자꾸 들어 속상했습니다. 루이즈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무능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집을 떠나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으나, 결혼 생활 5년 차 무렵 다른 여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와 함께 마을을 떠나 몇 주 후 침울한 모습으로 귀가하였습니다. 루이즈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클리프, 당신이 진정으로 변화하고자 한다면 저는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라는 루이즈의 말에 희망을 품었으나, 아무리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도 오히려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어떠한 변화도 없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도피와 귀가를 반복했습니다.

1975년, 루이즈는 더 이상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클리프, 우리는 이대로는 지속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이는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지나치게 힘듭니다. 이제 당신이 떠나주기를 바래요.”라는 루이즈의 말에 우리는 이혼에 합의했습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로워졌다는 기쁨에 들떠 마을을 거닐며 여성들을 만나고 술과 마약에 의존하며 지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알투라스에 도착했을 때는 허드렛일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겨울 동안 마약을 판매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지만, 마을에서 21km 떨어진 허름한 곳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여성이 두 자녀와 함께 작은 보트에 앉아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녀는 와인 반 병을 비운 후 아무런 이유 없이 자녀 중 한 명을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저런 행동은 엄마답지 않다. 좋은 사람이 술에 취해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지난 10년간 흐릿하게 기억나던 일들이 하나둘씩 또렷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보는 걸까요? 저 역시 그 여성만큼이나 비참한 처지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술과 마약에 찌들어 내 안의 악마들에게 사로잡힌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대화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가 저를 지금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이지 않으십니까? 왜 도와주지 않으십니까?”라고 외쳤습니다. 저 같은 엉터리 같은 사람의 말을 들어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답이 왔습니다. “왜 들어주지 않겠니?” “저?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라고 절망했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저와 같은 비참한 상황에 처하기 전에 제가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 일주일 후, 호숫가에서 느꼈던 결심으로 가득 찬 채 모독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로 찾아가 마이크 크러처 경사를 만났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알고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지역의 마약 조직을 소탕하는 데 잠복근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편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제 인생을 바로잡을 유일한 기회였기에 반드시 해야 했습니다. 사회와 하나님께 빚진 일이기도 했고, 제가 이 일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서부 해안 곳곳에서 일하다가 결국 알래스카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침내 스스로 마약을 끊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예전처럼 마약에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저는 과거에 감옥 수감에 관여했던 여성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보안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막 석방되던 그녀를 만났을 때, 저는 감옥에 수감되었던 범죄자들이 흔히 보이는 반응인 신체적 폭력이나 욕설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제 뺨에 입맞춤을 하며, “당신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이제 저는 마약을 끊었고, 집에 돌아가면 남편과 아이들이 있습니다. 당신 덕분에 두 번째 기회를 얻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시워드에 있는 자택에서 ‘두 번째 기회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가족과 제 인생을 버리고 떠났지만, 딸이 저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려 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받을 자격이 없는 기회였지만, 로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뉴욕주 시러큐스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한 날, 저는 극심한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훌쩍 자란 아이들을 보니 마치 완전히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루이즈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알래스카를 떠나기 전에 그녀와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그녀의 트레일러에 빈 방이 하나 있어서 거기서 숙박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잠깐 이틀 밤만 묵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라고 답했습니다.

막바지 준비로 정신없는 며칠을 보냈지만, 아이들과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변명하지 않고, 다시 그들의 삶에 들어오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저 지금은 곁에 있어 주고 싶다고 전하자, 아이들은 저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따뜻하고 수용적인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루이스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로리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딸의 웨딩 행진에 동행하며 깊은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피로연에서는 자연스럽게 신부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촬영 중 루이즈의 어깨에 팔을 둘렀을 때, 그녀의 미소를 보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제가 뒤로하고 온 삶, 가족, 인정, 그리고 사랑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내던져 버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치 쥐가 된 기분으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다시금 밀려왔습니다. 과연 제가 여기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루이즈의 트레일러로 돌아오자 그녀는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좀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나는 그냥 자고 싶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11시간 후 잠에서 깨어났을 때, 루이즈는 여전히 거실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클리프, 우리 정말 이야기를 좀 해요.” 그녀가 다시 말했습니다. “앉아요.” 저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나는 “미안해”라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변명 없이 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준 것을 알고 있어.”
“얼마나 많은지 당신이 알기만 한다면…” 루이즈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용서하지 못해도 이해해.” 나는 바닥을 응시하며 말했습니다. “나 또한 나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지난 16년간의 일들, 분노, 고통, 죄책감, 그리고 외로움을 루이즈와 진솔하게 털어놓은 후, 그녀는 저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이 제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알래스카를 떠났습니다.

알래스카로 돌아온 후 루이즈와 자주 통화하게 되었고, 봄에 휴가차 저를 보러 왔습니다. 루이즈가 떠날 무렵, 저는 다시 한번 루이즈에게 반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귀뚜라미 소리, 오렌지색과 분홍색으로 물든 노을, 멀리 보이는 산들… 평소 저에게 영감과 위로를 주던 모든 것이 있었는데도 무언가 허전했습니다.

벅찬 마음에 무릎 꿇고 다들한테 용서 구했는데, 루이즈한테는 안 했어. 루이즈는 이미 나한테 너무 많은 걸 줬거든. “제발, 한 가지만 더 주세요.”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어. 차가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포근한 온기가 나를 감싸는 게 느껴졌어. 사랑이랑 확신, 변함없는 평화로 감싸인 느낌이었지. 하나님은 내가 용서 구하기도 전에 이미 나를 용서해 주셨다는 걸 깨달았어.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좋은 직장 구하고 과거도 마주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분의 용서를 받아들였어.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됐고, 내가 뭘 해야 할지 딱 알았어.

“이제 때가 됐어.” 하면서 귀뚜라미들이랑 산들한테 말했어. “난 집으로 돌아갈 거야.” 뉴욕으로 돌아와서 사립 탐정으로 안정적인 직장 구했고, 가족들이랑도 천천히 관계를 회복해 나갔다. 그리고 1993년 4월에 루이스랑 재혼했다. 여러 해 지나고 이사도 몇 번 한 후에야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거의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근데 이번에는 달라. 드디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려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야.

Clifford Sigler, Dryden, New York]]></description>
			<author><![CDATA[James Park]]></author>
			<pubDate>Sat, 27 Jun 2026 11:43:3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jamespage.org/?kboard_redirect=7"><![CDATA[자료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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