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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dongsik

아픔에서 오는 기쁨

JHL 2020.09.15 01:43 조회 수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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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거나 詩를 지을 때, 누구나 겪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바로 글을 다듬는 일이다. 다듬고 또 다듬어도 만족스럽지 못할 때, 어떤 한계限界에 부딪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은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읽고 또 읽어보며 고심苦心에 苦心을 거듭하는 끝 없는 작업作業은 마치나 구름 속에서 헤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힘겨워하다가도 苦心 끝에 마음에 드는 표현表現 하나를 찾았을 때 느끼는 그 기쁨은 글 쓰는 이가 갖는 가장 큰 희열喜悅일 게다. 이것이 바로 苦心과 고뇌苦惱의 아픔에서 오는 기쁨이다.
글을 쓰는 것은 이미 짜여있는 어떤 틀 속에 맞추어 넣기만 하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쓰는 이가 모든 것을 결정하여 쓰고 다듬어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글을 쓴 다음 다시 읽어보며 다듬는 일을 우리는‘퇴고 推敲’라고 한다.‘퇴고 推敲’는 漢文에서 비롯된 어휘 語彙로‘밀 퇴推’와‘두드릴 고敲’이 두 글자를 한 단어로 하여‘推敲’라고 한 것이다. 漢文의‘推’는 ‘밀 추’ 혹은 ‘밀 퇴’라 하는데, ‘推進'은‘추진'이라 발음하고, ‘推敲’는 ‘추고’라 하지 않고 ‘퇴고’라 한다. 근래에 와서는 추고로 읽기도 한다.
‘推敲’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밀고 두드린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글을 고친다거나 다듬는다는 뜻이 없다.
英語에서는 그 表現이 매우 分明하다. 오자誤字나 맞춤법, 띄어쓰기나 철자 혹은 구두점이 잘못된 것을 고치는 작업을 Correction (수정) 혹은 Proofreading (校正)이라고 한다. 교정校正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Proofreader (校正員)이라고 한다. 이 校正은 글쓴이가 아니어도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작업作業이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특히 한글의 띄어쓰기는 참 어렵다.
옛날엔 한글은 띄어쓰기나 마침표가 없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長老敎 선교사宣敎師 John Ross (1842-1915)牧師가 영어성경英語聖經을 最初로 한글로 번역하면서 처음으로 한글 띄어쓰기와 마침표를 썼다고 한다.
예컨데, '돌다리'냐 아니면 '돌 다리'냐 하는 것이다. 하나의 단어로 보면 '돌다리'지만 두 단어로 보면 '돌 다리'로 쓰야한다. 이 문제는 나중에 기회 있으면 그때 보기로하자.
위에서 말하는 퇴고推敲는 교정작업校正作業과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말이다. 推敲는 글을 다듬는 일이다. 즉 글을 더욱 매끄럽고 뜻을 잘 살려, 글의 品格을 높여주는 힘겨운 作業이다. 이를 英語 로는 Polish (닦다, 광택을 낸다, 손질한다), 혹은 Improve (증진시킨다, 발전시킨다), 그리고 Elaborate (힘들여 마무른다)라고 한다. 우리 밀로는 “글 다듬는다”이며, 校正과는 전혀 다르다.
그른데 우리말의 '고친다'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때에도, 또 어떤 내용을 다르게 표현해보는 것도 둘 다 '고친다'라고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을 다르게 시도해보는 것은 '고치는 것'이 아니고, '새롭게 잘 다듬어서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推敲는 '글을 갈고 닦는 일'인만큼 글을 쓴 作者만이 할 수 있는 作業으로, 이는 作者의 특권特權이다. 
다만 作者가 자신의 글을 읽은 이에게 意見을 묻거나 소감을 물어올 때, 그 글에 대하여 서로 의논議論하고 상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 글을 이렇게 고쳐야 한다든가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할 수 없다. 또한, 글이란 일단 發表하고 나면 作者의 것이 아니고 읽는 이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發表하기 전에 충분한 校正과 推敲의 과정을 거쳐서 글을 발표하는 것은 글 쓰는 이가 가져야 할 독자讀者에 대한 基本的 예의에 해당한다.
일단 글을 發表하고 나면, 어떻게 고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즉 作者가 일일이 독자를 찾아가,“나는 이런 뜻으로 쓴 것”이라고 설명하거나 변명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글을 發表하기 전에 읽고 또 읽으며 글을 다듬는 作業은 글 쓰는 이의 필수요건必須要件이다.
‘글을 다듬는다’라는 말로 쓰이는‘推敲’ 에는 ‘글을 다듬는다’란 뜻이 없다. 그저 ‘밀고 두드린다’란 말일 뿐이다. 처음 이 推敲란 어휘語彙를 접했을 땐, '그냥 마음에드는 말을 찾아서 밀어 넣거나 아니면 억지로라도 두들겨 넣어 맞추어 나가라는 뜻으로 퇴고推敲라 쓰나보다'라고 혼자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야말로 무식無識이 통통 튀는 수준이었다. 내 나름의 지레짐작은 엄청난 과오過誤를 불러온 것이다. 그러면 왜‘글 다듬는다’라는 말을 오늘까지도‘推敲’라고 하는지 疑問이 생긴다. 推敲에는 아래와 같은 中國 唐나라 時代의 古事에서 由來한다는 사실事實을 모르면 나처럼 제 멋대로 꾸며서 생각하기 딱 좋은 어휘語彙이다.
推敲라는 어휘語彙는 이 古事를 모르고는 이해理解할 수가 없는 말이다. 그 由來는 唐詩 記事 券 四十 가도(賈島)편篇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옮기면 이러하다.
『唐나라에서 詩人이자 僧侶였던 가도 賈島(779-841)라는 詩人이 어느 날 친구인 僧侶 이응李凝이 거처하는 寺院으로 찾아갔으나 출타 중이었다. 하룻밤을 혼자서 지나고 다음 날 말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馬上에서 詩想이 떠올랐다. 題目을‘題李凝幽居’로 정하고 詩를 지었다.
題李凝幽居 (제이응유거:그윽한 이응의 집에 제함)
閑居隣竝少 (한거린병소): 한적하게 살아 이웃이 드물고
草徑入荒園 (초경입황원): 오솔길은 황원으로 통하네
鳥宿池邊樹 (조숙지변수):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잠들고
僧推月下門 (승퇴월하문): 승려는 달빛 아래 문을 밀어 여는구나
過橋分野色 (과교분야색) : 다리를 건너니 들 빛이 확연히 다르고
移石動雲根 (이석동운근) : 구름이 움직이니 돌도 따라 움직이는 듯
暫去還來此 (잠거환래차) : 잠시 떠났다가 다시 이곳으로 오리니
幽期不負言 (유기불부언) : 함께 조용히 지내자던 그말 저버리지 않으리
이렇게 詩를 지은 다음 다시 읊어 보다가 鳥宿池邊樹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잠들고)를 鳥宿池中樹 (새는 연못 속 나무에서 잠들고)로 고쳐 보았다. 달빛에 나무가 연못 속에 비쳐진 그림자를 연못 속의 나무로 표현表現한 것이다. 달빛에 비쳐진 나무의 그림자가 연못 속에서는 거꾸로 보이지만 달밤의 정취를 더한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그다음으로 승퇴월하문僧推月下門(승려가 달빛 아래 문을 밀어 여는구나)을 이번에는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승려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는구나)으로 고쳐서 읊어 보았다.
僧侶가 온종일 世俗의 마을에서 시주를 하여 묵직한 바랑을 메고 늦은 밤 달빛 아래 절간에 당도하여 대문을 삐걱 여는구나 아니면 대문을 통통 두드리는구나. 어떤 表現이 이 詩의 맛을 더해주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시적감흥詩的感興에 대한 고심苦心이었다.
賈島는‘推 민다’와 ‘敲 두드린다’중에서 어떤 表現이 이 詩에 더 어울리는 表現인가를 쉽게 決定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말을 타고 가면서도 推와 敲를 놓고 苦心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高官의 행차가 오는 것도 모르고 賈島는 僧推와 僧敲에만 몰두하고 있다가 미쳐 高官의 행차하는 길을 비켜서지 못하였다. 무엄하다며 수행 武士들이 賈島를 高官 앞에 끌고 왔다.
그 高官은 唐代의 大文章家인 한 유韓愈(768-824)였다. 그는 唐代의 경조윤京兆尹(도읍을 다스리는 어뜸인물)이었다. 賈島는 엎드려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죽을죄를 지었다고 하였다.
그러는 賈島를 향하여 韓愈는 그 연유를 물었다. 이에 賈島는 자신의 이름은 가도賈島이며 僧侶로 詩를 쓰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솔직하게 詩의 한 구절의 한 글자에 몰두한 나머지 미쳐 행차를 못 봤다고 하였다. 이에 韓愈는 그의 이름을 들은 바 있기에 내심內心 무척 반가웠다. 웃음 띤 얼굴로 그 詩가 어떤 詩인지 말해줄 수 있는가 하고 賈島에게 물었다.
賈島는 詩의 全文을 읊은 다음 僧推月下門과 僧敲月下門 둘 중에 어떤 것이 이 詩에 더 적절한 表現인가를 決定하지 못해서 苦心타가 그렇게 無禮함을 범했노라고 다시 용서容恕를 빌었다.
賈島의 설명을 들은 韓愈는 자신의 意見을 말해도 되겠냐고 賈島에게 물었다. 이에 賈島는 황공한 마음으로 고견高見을 듣고 싶다고 하였다. 韓愈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推도 좋지만 자기 생각으로는 敲가 그 詩에 더 적합適合해 보인다고 하였다. 이 말 한마디에 賈島는 推를 과감히 버리고 敲를 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일이 있고 난 뒤 賈島와 韓愈는 文友로 그리고 詩友로, 서로를 아끼며 친분을 쌓아가면서, 지은 詩를 서로 나누며 다듬는 일을 함께하였다는 古事에서‘퇴고 推敲’라는 語彙가 生成 되었다는 것이다.』
推敲의 과정 없이 쓴 글이나 詩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는 글 쓰는 기본자세基本姿勢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推敲는 無言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推敲라는 어휘를 ‘글다듬기’로 고쳐 쓰지 않는 이유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推敲에는‘글을 다듬는다’라는 단순한 뜻 그 이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1200여년 전, 그토록 苦心하던 賈島의 애태움이 解決되자, 무척 기뻐했을 賈島의 모습을 그려보며, 내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글을 고친다는 뜻의 퇴고推敲에서의 敲 와 원고지原稿紙 에서의 稿는 전혀 다른 글자이다. 推敲의 敲는 '두드릴 고'이고, 原稿紙의 稿 는 '초안 고' 또는 '원고 고'라 한다. 혼돈하기 쉽다.
이제는 한국 文人들이 愛用했던 200字 원고지(原稿紙)를 쓰는 대신에 지금은 컴푸터를 사용하니까 예전과는 다르다. 하지만 아직도 原稿紙를 쓰는 作家도 많다고한다. 小說家 조정래趙廷來 (1943-  )작가 는 全 十 券이나 되는 小說 太白山脈(1984)을 모두 原稿紙에 썼다고 한다.
200자 원고지(原稿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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