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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dongsik

우리말 하늘

JHL 2020.10.12 22:31 조회 수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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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말 '하늘’에 대한 이야기다. 하늘을 한문으로는 천天이라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天罰'이란 말은 하늘에서 내리는 벌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하늘은 영험하고 신령한 뜻으로 쓰여 왔음을 본다. '천제天帝’란 말은 한국의 전통적인 의식으로 볼 때엔,‘인간과 모든 자연을 주재하는 하늘의 주재자主宰者'란 뜻이다.
Roman Catholic을‘천주교天主敎'라 한다. 즉“하늘의 주인을 믿는 종교”란 말이다.“천주天主'는 우리말로 하늘의 주인 즉 하늘에 계신 님으로 천주교에서는“하느님”이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주 기도문은,‘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된다. 결국, 같은 뜻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창조주創造主를 '하나님'이라 한다. 아마 오직 한 분밖에 없다는 뜻으로 그렇게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암튼 '하늘'은 예로부터 창조주創造主가 거居하는 장소란 뜻으로 쓰여왔은 부인할 수가 없다.
맹자孟子의 진심상편盡心上篇에서 군자삼락君子三樂 즉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하였다. 맹자(BC 372?∼BC 289?)는 중국대륙의 전국시대에 공자孔子(B.C.551-B.C.479)의 사상思想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철인哲人이다. 그의 군자삼락은 이러하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즉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천하에 왕 노릇 하는 것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而王天下不與存焉 (이왕천하불여존언)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
맹자는 군자의 두 번 째 즐거움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음'이라 간파하였다. 여기서도 하늘은 인간이 경외하는 그리고 인간의 삶을 주재主宰하는 존재存在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말,‘하늘’은 그냥 확 터진 공간이란 의미도 있고,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가 거하는 장소로도 표현되고 있음을 본다. 영어에도 역시 하늘을, ‘sky’와, 'heaven’의 두 표현이 있다. ‘sky’는 주로 공간적 의미의,‘space’란 뜻으로 쓰이는 어휘이다. 사전적으로는 heaven과 같은 뜻이지만, 실제로는 sky와 heaven의 쓰임은 다르다.‘heaven’은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주기도문에,‘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Our Father in Heaven’이라 하지,‘Our Father in Sky’라 하지 않는다.
오늘의 화두話頭를‘하늘’로 삼은 것은 윤동주 시인(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이 1941년 11월 20일에 쓴 '서시'는‘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된다. 이 시의‘하늘’을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즉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나오는,‘하늘’의 의미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본의‘아부키 고’라는 문인이 1984년에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일본어로 번역한 번역시집을 발간하였다고 한다. 그 번역시집에서,‘하늘’을 공(空)으로 번역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의 시에 나오는,‘하늘’을 단순한 공간 즉‘sky'나 'space;로 표현 하였다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동지사 대학의 옛터에 설립된 시비詩碑에도 아부끼 씨의 번역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아부끼 씨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나오는 하늘을 허공 즉 'sky'로 표현하였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공중空中'으로 번역한 것으로 생각된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은 창조주가 거하는 하늘 즉 heaven의 뜻으로 쓴 것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윤동주 시인은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면 1941년 11월 21일에 윤동주 시인이 쓴 서시 전문을 보자.
서시序詩/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시를 읽으며 부족하지만 영어로 번역을 해 보았다. 번역은 직역을 피하고 시의 뜻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제목을 Poetic Prologue라 하였다. Prologue에는 서문, 서장, 그리고 서시라는 뜻이 있다. 하지만 서시序詩란 말의 맛을 더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Poetic Prologue
 Dong Ju Yoon (11. 30. 1941)
 
I humbly lifted my eyes up to heaven
Longing for nothing disgraceful,
Not a bit of a shame on me
Until the day I die.
Struggling for the fulfillment,
I’ve been in agonies of pain
Even at a breeze over a tiny leaf.
Singing the stars solemnly in my heart,
I shall love all being that is to die,
And I shall follow the way destined to me.
The stars are touched by the wind again tonight.
한글로 쓴 시를 영어로 번역飜譯하면서 그 과정이며 어휘선택의 연유 등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혹시라도 번역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는 도움이 될까 하여 서시의 번역과정을 여기에 적어둔다.
첫 연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에는 주어와 동사가 생략되어있다. 다만 그다음에 가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로 미루어 보아 이 시를 읽는 우리는 이 시의 화자가 '나는 괴로워했다'이니까 '괴로워했다'의 주어는 '나'다.
그리고 뜻으로 보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의 주어도 '나'다. 이렇게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며 금방 알 수 있지만 만약에 주어와 동사가 생략된 그대로를 직역해 놓으면 이해가 안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즉 '누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어찌하였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에서 동사가 생략되어있기 때문이다. 뜻으로 보아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원했다'라든가 '갈망했다', '빌었다', 혹은 '간구했다'라는 동사가 생략 되었음을 우리는 앞뒤를 살피며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동사를 생략하고 영어로 직역해 놓으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직역이 아니라 의역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말로 다시 번역하면, '나는 겸손히 눈을 들어 하늘로 향하여 죽는 날까지 단 한 점도 부끄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 되는 것이다. '우러러'를 영어의 한 단어로 번역이 불가능하기에, 'I humbly lifted my eyes up to heaven.'이라고 뜻을 살려 의역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완성하고 나니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가 아직 번역되지 않고 남아있다. 여기서 또 의역할 수밖에 없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화자는 왜 괴로워했나?' 를 읽는 이가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자신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도록 애를 쓰기에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원문에는 없는 새로운 한 연을 더 추가한 것이다. 그것을 다시 번역하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자신이 되려고 열과 성의를 다하여 애를 쓰려니까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 추가된 연이다. 그래서 원문에는 없는, 'Struggling for fulfillment, '로 뜻을 살려서 한 연이 추가된 것이다.
그다음 연에서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이다. 여기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는 노래를 그냥 흥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엄숙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마음을 'Sining the stars solemnly in my heart'로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엄숙한 마음으로 별을 노래하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내게 운명지어진 길을 따라가겠다'로 번역된 것이다.
마지막 한 줄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별과 바람이 서로 교감한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그의 첫 시집의 제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였다. 윤동주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서로 유대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오늘 밤에도 하늘의 별은 바람과 서로 교감을 한다'는 전제로 번역한 것이다.
그 영어를 다시 우리 말로 번역하면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과 서로 부딪히며 교감을 나눈다'로 되는 것이다. 즉 우리말의 '스치운다'를 수동으로 하여 'The stars are touched by the wind again tonight.'로 번역한 것이다.
특히 우리의 詩를 영어나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는 직역으로만 고집하면 뜻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의역을 하는 것이다. 흔히 번역은 제2의 창직創作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말은 직역直譯하면 뜻이 통하지 않아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영역하면서 만에 하나라도 원작原作에 미치지 못하여 원작시가 왜곡되거나 원래의 뜻이 엉뚱하게 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스러움을 떨칳 수가 없다. 그래서 생존하신 분의 작품 번역은 반드시 원작자의 동의하에 번역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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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 (연희전문 시절)               맹자孟子(BC 372-BC 289추정)
 (1917.12. 30.- 194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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