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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dongsik

단종端宗의 子規詞와 子規詩

JHL 2020.09.28 19:34 조회 수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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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 사직社稷 중 가장 슬픈 歷史의 主人公인 6대 임금 端宗 (아명 홍위弘暐) (1441∼1457)은 일찍 세상을 떠난 父王 文宗(1414-1452: 38세에 붕어)의 뒤를 이어 1452년  5월, 만 11 세의 어린 나이에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1453년 10월에, 어린왕을 보좌하는 고명대신顧命大臣 김종서를 제일먼저 수양대군이 제거한다. 그리고 황보인을 비롯하여 여러 대신들을 제거한다. 그 이유는 신권이 왕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와 둘째인 수양대군을 멀리하고 셋째 안평대군과 정사를 논의하며 역모를 꾀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니까 표면상의 이유는 정사政事를 돌볼 능력이 없는 조카 단종의 왕권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빌미였다. 속으론 왕위를 노린 것이다. 불행히도 단종에게는 섭정할 사람이 없었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는 단종을 낳고 3일만에 죽었다.
단종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政事를 돌볼 수 없으므로, 특히 人事 문제에 있어서 왕에게 명단을 올리면서 고명대신들이 노란색으로 표시를 해서 올리면, 왕은 그 노린 표시가 되어 있는 인물을 낙점하는 그런 방법이었다. 이를 소위 황표정사黃標政事라하는 것이었다. 이는 결코 대신들이 왕을 업고 권력을 휘두른 것이 아니라, 어린 왕을 보필하려는 우국충정의 발로였다.
하지만 수양대군은 이를 빌미로 일으킨 난이 바로 계유정난 癸酉靖難이다. 그러나 숙부 수양의 속셈은 王位를 노린 것이었다. 많은 대신들이 목숨을 잃었었다. 한명희와 권람이 생살부를 만든 것이 바로 이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叔父인 首陽大君(世祖)은 1455년 윤유월, 端宗을 上王으로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다. 이는 왕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다.
다음 해인 1456에 집현전 학사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 유응부 등 여섯 신히臣下가 단종 복위復位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된다. 이 사건으로 1457년 6월, 端宗은 魯山君으로 降等되어 만16 세의 나이에 江原道 寧越 청령포淸冷浦로 유배流配되었다.
그리고 셋 째 숙부 안평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어 결국 賜藥을 받아 사사되었다. 端宗이 流配地에서 처음으로 지은 詩가 바로 어제시御製詩이다. 御製詩에는 청령포와 주변의 모습과 단종의 마음상태가 잘 표현되어있다.
어제시御製詩     임금(端宗)께서 지으신 시
천추에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千秋無限寃 (천추무한원)
적막한 영월 땅 황량한 산 속에서         寂寧荒山裡 (적령황산리)
만고에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萬古一孤魂 (만고일고혼)
푸른 솔은 옛동산을 감싸고 있네          蒼松繞舊園 (창송요구원)
고개 위 소나무는 하늘 높이 우거졌고  嶺樹三天老 (영수삼천로)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 하구나       溪流得石喧 (계류득석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山深多虎豹 (산심다호표)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아거노라        不夕掩柴門 (불석엄시문)
1457년 유배되던 해의 여름에 홍수로 청령포淸冷浦가 범람하자, 端宗은 영월 객사客舍인 관풍헌 觀風軒)으로 거처를 옮겼다. 관풍헌 바로 옆에 위치한 매죽루梅竹樓에 올라, 端宗은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자신의 처지를 견주어, 자규사 子規詞와 자규시 子規詩를 지어 읊었다고 한다. 
端宗이 밤이면 이 누각에 올라 읊조리는 子規詩가 너무 애절하여 이곳을 지나며 들은 사람들이 이 누각 이름을 子規樓라 하였다고 한다. 子規樓는 관풍헌 동쪽에 세워진 누각으로 계단을 통하여 자규루子規樓로 오를 수 있다.
魯山君으로 降等된 자기 자신을 소쩍새에 比喩하여 지은 端宗의 자규사子規詞와 자규시子規詩는 애절哀切 하고 처절凄切하여, 피를 토하는 절규絶叫로 들린다.
자규사 子規詞: (자규에 부치는 글)     端宗
달 밝은 밤 소쩍새는 슬피 우는데    (月白夜蜀魂啾:월백야촉혼추)
수심에 젖어 누각에 기대어 있으려니(含愁情依榴頭: 함수정의류두)
네가 슬피 울어 듣는 나도 괴롭구나 (爾啼悲我聞苦: 이제비아문고)
네가 울지 않으면 내 시름도 없으련만 (無爾聲無我愁: 무이성무아수)
보시오 세상 근심 많은 이들이어 (寄語世上苦勞人: 기어세상고노인)
부디 춘삼월엔 자규루에 오르지 마소 (愼莫登春三月子規樓: 신막춘삼월자규루)
자규시子規詩       端宗
원한 맺힌 새 한 마리가 궁중을 떠난 뒤로(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쌍영벽산중)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假面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해가 가고 해가 와도 恨은 끝이 없구나 (窮恨年年恨不窮: 궁한년년한불궁)
자규 소리 끊어진 새벽 멧부리에 지새는 달빛만 희고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피를 뿌린 듯한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血流春谷落花紅: 혈루춘곡낙화홍)
하늘은 귀먹었나 애달픈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고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어찌하여 슬픔 많은 이내 몸의 귀만 홀로 밝은고 (何奈愁人耳獨聽    :하내수인이독총)
만 16세에 리헌 시를 쓴 단종의 애끓는 모습 보는 듯 하다.
단종이 영월에 유배 중이던 1457년 9월, 慶尙道 영주지방 순흥에 유배되었던 여섯째 숙부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端宗은 다시 魯山君에서 서인庶人으로 降等되었고, 마침내는 世祖가 내린 사약賜藥을 받게 된다. 그때 가 1457년 음력10월 24일, 단종의 나이 만 16 세였다.
금부도사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사약賜藥 담긴 그릇을 감히 내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구전에 의하면, 단종의 하인인 복득이라는 자가 뒤에서 활줄로 단종의 목을 졸라서 죽였다고 한다. 단종의 이 마지막이 바로 관풍헌에서 있었던 일이다. 단종을 죽인 복득은 마당에 나서자 마자 피를 토하고 즉사했다고 한다.
왕방연이 읊었다는 '천만리 머나먼 길' 이라는 유명한 시조는 왕방연이 청령포를 에돌아 흐르는 西江의 강가에 밤새 앉아서 단종의 유배와 죽음을 슬퍼하며 남긴 것이라고 한다. 왕방연이 남긴 詩는 이러하다.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 님 여의옵고 (千里遠遠道美人別離秋:천리원원도미인별리추) 
내 마음 둘 데 없어 강가애 앉았으니 (此心未所着下馬臨川流:차심미소착하마림천류) 
저 강물도 내 마음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川流亦如我嗚咽去不休(천류역여아오열거불휴)
마지막 줄의 '저 강물도 내 마음과 같아서 밤새 울며 흐른다'고 표현 한 것은 자신의 울음을 강물이 흐르는 소리에 비유하여 애절함이 더크게 느껴진다.
단종의 시신屍身이 東江에 버려졌으나 寧越戶長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미리 마련 된 어머니의 수의를 입혀 지게에 지고 선산으로 향했다. 그가 잠시 쉴 장소를 찾던 중 다행히 언덕 위 소나무 밑에 숨어있던 노루 한 마리가 놀라 달아났는데 그 자리를 보니 눈이 녹아 있었다. 그 자리에 지게를 내려놓은 채 잠시 쉬다가 더 깊은 산골로 가려 하였으나 지게가 움직이지 않자 이곳이 明堂인가 보다 하여 노루가 있던 자리에 시신을 暗葬했다. 그 곳을 동을지冬乙旨라 부른다.(이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설화다.)
위치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방치되었던 단종의 무덤은 70년쯤 지난 중종 36년 (1541년)에 암장된 장소를 영월군수 박충원이 찾아내어 왕릉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120년도 훨씬 넘은 숙종 34년(1698)에 와서 단종은 왕의 지위를 되찾았다.
영월호장 엄흥도에게는 1876년 고종 13년에 충의공忠毅公 이란 칭호가 추서되었다.
세조실록에는 단종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장례를 치뤘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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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1. 청령포 淸冷浦 端宗 어소御所 (강원도영월군 남면 광천리) 端宗의 첫 流配地 端宗이 소나무 가지에 앉아 流配生活의 환을 달랬다는 관음송觀音松 (천연기념물)
2.  西江이 그림처럼 휘돌아 흐르는 청령포淸冷浦: 영월로 유배 온
      단종이 처음 머문 곳이다
3.  淸冷浦 端宗 御所에 걸려있는 宗의 어제시御製詩 현판
4.  자규루子規樓  (매죽루梅竹樓가  단종의 자규시 후로  子規樓로
     바뀌었다)
5.  영월 객사인 관풍헌(觀風軒)  端宗이 이 곳에서 최후를 맞았다
6.  端宗이 잠든 장릉 莊 陵 ( 동을지: 江原道寧越에 所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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